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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이 아빠 Oct 16. 2019

아빠의 육아휴직 #식샤를 합시다.

그대는 중불의 위대함을 알고 있는가?

앞서 말한 계획서에 쓰여 있듯이 내 육아휴직 첫 번째 가장 쉬운 목표는 외식을 줄이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계란과 라면 외에는 요리의 ㅇ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계란과 라면에 대해서는 백종원 선생님이 오셔도 부끄럽지 않다. 계란은 감으로 삶아도 반숙과 완숙을 구분했고 라면은 자타공인 셰프급, 마에스트로랄까...ㅋㅋ...


그러나 삼시세끼 계란으로 때울 수는 없고 역시 라면으로 모든 걸 할 수 없었을뿐더러 아이가 편식에 살짝 변비끼까지 있어 채소 위주의 반찬이 필요했다. 할머니 찬스를 쓰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빠가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저 빛


그리고 내 특기가 계획(만) 세우기라서 기본 밑반찬 2개 / 아침은 밑반찬 + 계란 저녁은 일주일 중 3일은 육류, 3일은 생선, 1일은 간소화로 정해놓고 계획표를 짰다. 이러니 장보기도 편하고 점차 확장해나가기도 좋았다.


1. 밑반찬은 생각보다 쉽다.


이 포스트에서 밑반찬 만드는 법을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점차 요리 실력이 늘고 (아직은 허섭쓰레기..) 사진도 많아지면 쓰려고 하는데, 그전에 요리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아빠에게 하고 싶은 글을 쓰려고 한다.


요리를 할 때 나도 냉장고를 부탁해나 요즘 많이 나오는 셰프 선생님들 요리하는 방송을 많이 봐서 그런지 그저 한 폭의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가만 앉아 하나하나 뜯어보니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진 마늘 + 간장 + 소금 혹은 설탕 조합이면 일단 기본 맛은 난다. 진짜 레알 신기방기함.


자고로 한국인은 장비빨이라고 시작할 때 통돌이나 여러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옵션에 있었지만 누누이 말하듯 우리 집이 금수저는 아니라서 초반부터 장비 세팅을 모두 갖추기는 좀 어려웠다. 다만 타이머나 저울 등의 기본 장비는 좀 필요하나 모두 몇 천원대로 구매 가능하니 아깝다 생각치 말고 질러보자.


나의 완벽한 장비들 특히 타이머는 뭔가 구울 때 필수적이다


일단 어려우면 식용유에 양파, 당근 등을 손질하고 먼저 프라이팬에 넣어 볶은 뒤 다진 마늘 넣고 간장 살짝 섞은 뒤 메인 재료를 투하하자. (버섯, 햄, 맛살 등등) 그러면 얼추 된다. 한 두어 번 짜거나 싱겁거나 so terrible 한 맛을 몇 번 거치면 양도 대~충 감이 온다. 진짜로


2. 저녁은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하면 쉽다.


그리고 나는 불조절에 있어 약불 아니면 강불이었는데 중불이라는 위대한 마법이 숨어있었다. 중불은 주로 생선을 구울 때 특효하다. 더군다나 이젠 편리하게 생선은 뼈를 제거하고 바로 구울 수 있도록 손질된 냉동이 존재한다. 정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생선은 껍질 쪽부터 넣고 뒤집어 가면서 엄마가 해줬던 생선 색이 나올 때까지 구우면 구워진다. 레알 트루임. 한 두어 번 태워보면 감이 온다.


육류는 마트에서 알아서 다 손봐준다. 역시 축복받은 세상이다. 그리고 갈비도 이미 양념이 다 있어서 피 빼는 작업만 하고 쪽갈비를 재운 뒤 앞에 말한 생선과 함께 냉동시켜버리면 일주일은 거뜬하다. 옛날 엄마가 했던 마법을 나도 부릴 수 있다.


생선과 고기라면 언제나 든든하다

정말 편리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하면 고기 19,000원 + 양념 값 생선은 17,000원 내외로 약 40,000원 안팎에 매일 저녁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설거지는 좀 힘들다. 기름... 그게 좀 거시기하다. 이것도 저것도 귀찮을 땐 일요일이고 나발이고 짜파게티 요리사로 빙의하면 된다. 나는 진짜 일요일엔 짜파게티 요리사가 된다. 농심 만세..


3. 어머니, 이제 알겠어요 왜 그렇게 곰탕을 좋아했는지...


처음에 소고기 뭇국을 하는데 재료 제대로 다 넣고 맛을 보는데 맛이 전혀 이상한 저기 안드로메다 전통 국 같은 맛이 났다. 결국 불을 끄고 와이프한테 수습을 부탁했는데 그냥 계속 끓이면 된다 했다. 국은 무같이 우릴 수 있는 국을 만들면 오~래 끓일수록 맛이 난다.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다.


엄마가 옛날에 곰탕을 많이 하셨던 이유는 그냥 디립다 끓이면 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려서 만들 수 있는 국이 가장 쉽다. 그리고 저것도 귀찮으면 어묵 팩을 사면 2팩에 3,500원 정도 하는데 저걸로 3~4끼는 때울 수 있다. 여차할 땐 어묵탕을 끓이자.


된장은 보유만 하고 있다면 멸치 및 다시마 육수를 낸 뒤 마트표 된장 좀 풀어서 끓이면 맛있다. 백종원 레시피 부럽지 않다.


4. 외식을 줄이니 좋은 점


가장 먼저 아이 식습관을 바꾸기 좋았다. 밖에서 먹다 보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유튜브를 보여주거나 장난감을 쥐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집에서 먹으면 그런 눈치 볼 필요 없이 식습관을 바꿔버릴 수 있다. 그리고 채소 위주 반찬을 섞어서 반찬투정할 때 혼낼 수도 있다. 밖에서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유튜브 금지다. 이 놈 시키야.


두 번째는 아빠표 식사에 대한 자부심이다. 아빠도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자부심. 이제는 아이가 맛있는 반찬 정도 하나 해줄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었다는 기쁨이.. 생각보다 크다. 진짜 좋다. 이건 믿어도 좋다. 아이가 맛있다고 하면 예전엔 엄마만 바라봤는데 이제는 나도 번갈아보며 누가 만들었어? 하고 물어볼 때. 아 좋다.


마지막 세 번째는 당연히 카드 고지서다. 한 달에 수십 번씩 카드 고지서에 3~4만 원 혹은 5만 원 이상 찍혀있던 식당 이름들이 사라졌다. 대신 1주에 한 번 마트가 보이는데 그건 뭔가 오히려 뿌듯하다. 카드 다이어트는 내 몸과 다르게 엄청 쉽다. 근데 내 몸은 어쩌나...


5. 단점


단점은 미칠듯한 설거지. 빠르게 줄어들어가는 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냉장고 내용물 정도가 있다.


설거지는 정말.. 악의 축.. 식기 세척기 사고 싶다 여보야.. 왜 와이프들이 밥을 해주면 설거지는 네가 해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너무 힘들다.. 식기 세척기는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쌀이 정말 눈에 띄게 줄어든다. 아이가 있다 보니 그냥 흰밥은 먹이기 싫고 밀키퀸이나 좀 좋은 쌀로 먹이고 있는데 쌀 값이 좀 많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총외식비보다는 적게 드니까 만족한다.


마지막으로는 냉장고가 비대해진다. 안의 내용물이 점차 많아져서 냉장고 정리가 절실해진달까.. 왜 우리 엄마가 큰 냉장고에 그리 집착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6. 소회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요리를 해준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물론 이게 직업이라면 힘들겠지만 내가 해준 요리를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볼 땐 기특하기도 하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내가 잘 못해도 뒷수습을 해줄 와이프도 있고 (ㅋㅋㅋ..) 가끔 운 빨로 정말 맛있게 되었을 때 내 요리를 먹는 내 가족을 보면 정말 흐뭇하다.


곧 우리 엄마와 아빠에게도 된장찌개나 끓여줘야겠다. 돌아오는 건 잔소리겠지만 (애비야 맛이 싱겁구나..)


아침부터 갈치 구워주기


바쁘더라도 사랑한다면 한 끼 정도는 챙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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