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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이 아빠 Mar 07. 2016

첫 동거, 그리고 육아의 50일이란.

남자 그리고 육아의 시작 #7

이때 아마 나를 포함한 모든 엄마 아빠가 가장 많은 사진을 찍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사진은 남의 아이 사진과 남의 고양이 사진이라고 했다.


이 말은 본인은 예쁘고 귀엽지만 남이 볼 땐 그냥 일반 애기 or 고양이 일 뿐이라는 것이지. 이 말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나는 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 뿐인가 나는 내 아이의 외모를 100%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못 생겼다고 생각하면 성형 적금이라도 들어야지 하고. 


내 아이의 사진은 대충 찍어도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이리라' 믿어진다. 내 시선에 내 아이의 외모는 '대한민국 상위 10%' 안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남에게 그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해달라고 할 용기도 나지 않고 그렇게 할 필요도 못 느낀다. 내 아이는 뭐든 조금 빠른 것 같고 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덩치도 큰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서 나 역시 일반적인 XX 바보 아빠가 되어간다.


문득 두려워지는 것이 생겼다. 내 아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무개념 아빠가 되진 않을까 싶었다. 해달라는 것은 해주고 거절하지 못하는 아빠가 되면 어떻게 하나 싶다. 아이의 치부나 허물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아이의 외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성격도 그 무게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지금의 이러한 나의 행보는 향후 나의 모습을 반추하기 좋은 것 같아 그것을 경계해본다.


아이의 치부를, 아이의 마음을 사심 없이 오해 없이 바라보고 뭐든 잘 될 것이라고, 너는 머리는 좋은데 왜 노력을 안 해서 이 모양이냐고 말하는 아빠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가장 잘 파악해주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어 줘야겠다. 오늘도 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중에 너는 외모보다 말로써 여자를 낚는 남자애가 되어라 라고 말해야겠다.




기간: 출생 후 50일까지

필요했던 것들: 이때까지는 딱히 별다른 아이템은 필요 없었다. 가끔 초점책을 보여주고 모빌만 달아주었다. 

했던 것들: 시간 별로 아기 상태 체크, 아이에게 엄마 옷 덮어주기 등 


첫 동거를 할 때는 그야말로 체력전이었다. 일단 조리원에서 시간대 별로 소변/대변/수유/열을 체크하는 표를 줘서 정말 시간 대 별로 체크했다. 예방 접종을 위해 몇 번 정도만 밖에 나갔다. 그 외엔 아무 외출도 하지 않았다. BCG였나 그 팔에 점 9개 생기는 거, 그게 신기해서 요리조리 둘러봤던 기억이 있다. 


- 이때 아기는 밥 먹을 때 자주 토한다. 아빠(엄마)의 어깨 부분도 함께 더러워질 테니
  옷을 자주 갈아입거나 손수건을 항상 챙겨두자. 

- 아기 옷은 하루에도 4~5번씩은 갈아줬다. 세탁은 1일/1회 

- 잠을 틈틈이 많이 자두자. 


이때의 최악은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것과 아이가 너무 작아서 어쩔 줄 모른다는 거다. 와이프가 조리를 위해 처가에 도우미 아주머니와 1달가량 있었다. 겨울이었는데 처가까진 멀어서 솔직히 주말밖에 내려가지 못했고 평일은 우리 집에 나 홀로 있었다. 많이 미안하면서도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내가 출근했을 때 혼자 있음 어쩌나 싶었으니까. 처가에 있던 와이프는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서로 상의해서 모유 수유는 중단했다. 무엇보다 와이프의 체력이 중요했다. 밤엔 아기 때문에 잠을 아예 못 자니 낮에 처남과 아주머니가 애를 잠깐 보고 그 사이에 와이프는 잠을 잤다. 다행히 이때 처남이 방학이었다. 


처가에서는 아이를 위해 가장 큰 방을 내주 셨었다. 그 후 계속 우리 방이 되고 있는 건 함정.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참 복 받았다. 처가에서 이렇게 아기를 챙겨주시고 예뻐해 주시니. 이 무렵에는 장인어른이 그야말로 갑 오브 갑이었다. 이상하게 우리 아기는 장인어른 품에서 잘 잤다. 이때는 아기띠도 어렵고 슬링은 모르고 있었고 포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쌩으로 들고 재워야 했는데, 장인어른 품에만 안기면 잘 잤다. 할아버지가 포근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우리 아기는 장인어른을 참 잘 따르고 아이로부터 낯가림 방어권을 획득하셨다. 이때까지는 하기스 네이처 메이드를 썼다. 그래도 기저귀를 늦게 갈아주면 빨갛게 되곤 했다. 그때는 스테로이드가 안 들어간 피부약을 처방받았는데 그걸 발라줄 때면 참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아기가 낮잠을 하도 안 자서 몇 가지 방법을 취했었었는데 엄마가 입던 옷을 아이에게 덮어줬다. (엄마 냄새가 계속 나라고)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고 그냥 버티는 게 상책 이었다.


엄마 옷 덮고 자기

1달가량이 지나고 우리 집으로 왔다. 이때부턴 정말 헬게이트였다. 물론 낮엔 여전히 아주머니가 오셨다.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낮 하루 종일은 아니었고 와이프가 잘 시간에만 잠깐 오셨다. 이때까지 씻기는 건 지금에 비하면 매우 쉬웠다. 고개만 안 꺾이게 하는 것이 포인트. 그래서 한 명이 그냥 고개만 잡고 있어주면 되었다. 잘 때는 안겨서 잤다. 뭐 손 타면 안 된다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안 겨서 1시간 자는 거 누우면 30분 잤는데 차라리 30분 더 재우고 안아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안아서 재웠다. 아이를 재우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만 줄곧 봤다. 이때 B TV에게 상 줘야 할 듯. 밤부터는 조금씩 자기 시작했다. 이때는 8시에 자서 7시쯤 기상하는데, 밤에 2번 정도만 깨고 (밥 먹으러) 쭉 잤던 걸로 기억한다. 수면 교육은 50일 이후로 시켰다. 


- 밤에는 조그만 무드등을 키고 잤다. 

- 코딱지가 생길 수 있어서 가습기는 항상 켜뒀고, 2일에 한 번 씩 식초로 소독을 했다.

- 이때는 물티슈 대신 건티슈를 쓰거나 손수건을 썼다. 

- 모빌은 솔직히 달아주긴 했는데 잘 안 썼다. 4~50일이 돼서야 타이니러브 모빌을 보며 놀았다. 

- 밤 중에 기저귀 갈아주다가 오줌을 맞으면 멘붕 온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잘 만들어 보자.


그리고 집에 온 이후로 베이비 슬링이라는 것을 썼다. 캥거루 케어에서 따온 도구인데 도구라기 보단 천에 가깝다. 몸에 완전히 밀착을 시켜주는 도구인데 가격이 후들후들한 것을 제외하면 아이에게도 좋은 것 같고 무엇보다 아기 띠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손이 자유로운 것은 혁명에 가까웠다. 조금씩 아이가 꿈틀 거릴 땐 안아줘도 자꾸 뒤척여서 자세가 바뀌는데 슬링 같은 걸로 하면 좋다. 수영도 가끔씩 시켰다. 따뜻한 물을 욕조에 받아서 시키면 잘한다. 개구리 마냥 폴짝폴짝거린다. 


목튜브와 신생아 수영


우리 아기만의 특징으로는 공갈을 안 물었다. 그리고 낮잠은 많이 안 자고 밤잠을 많이 자는 편이었다. 밥은 진짜 많이 먹었다. 지금도 많이 먹는다. 똥 색은 항상 체크했다. 삐뽀삐뽀 119는 틈틈이 읽었는데 이 책은 2살 이후의 내용은 좀 괜찮을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딱히 쓸모가 없다. 왜냐면 이 때는 그냥 증세 발견!! > 침착한다. > 병원에 간다. 순이다. 이 책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나와있다. 이 책도 매년 개편되니 1돌 이후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행히도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50일이 되었을 때 50일 사진을 찍었다. 이때까지는 아직 자세를 취하는 게 쉽지도 않고 표정도 다양하진 않아서, 부모의 만족감을 위해서는 좋을 것 같지만 아이에겐 안 좋을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써보니 50일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스펙터클하고 가장 힘들 때이기도 한지라 와이프랑도 자주 말다툼을 했다. 왜 와이프가 이렇게 짜증을 낼까 궁금하다면 주말에 상큼하게 와이프를 밖에 보내고 혼자서 애를 봐보자. 와이프가 집에 들어올 때쯤 힘듦 + 왜 늦게 들어는 가! 하는 짜증이 폭발할 것이다. 그런 마음을 항상 되새기며 와이프에게 감사한 마음과 이해심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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