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가 건네는 위로
세상은 너무 많은 '사람 구실'을 요구한다. 살림 잘하는 아내, 효도하는 자식, 무엇보다 늘 평온해 보이는 멀쩡한 어른이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들. 그래서 아침마다 습관처럼 가면을 쓴다. 속은 엉망이어도 겉으로는 매끄러운 미소를 짓는다. 행여나 나의 우울이나 불안이 틈새로 새어 나올까 봐 마음을 졸이며.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 실격》에서 말했던 '익살'이 아마 이런 것이었으리라. 타인에게 공포를 느끼면서도 끝내 도망칠 수는 없어 선택한, 필사적인 연기 같은 것. 긴 하루의 의무를 마치고 비로소 혼자가 되는 순간, 참았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웃고 있던 낮의 얼굴과 너무나 다르다. 가면이 벗겨진 자리에는 그저 불안하고 나약한 사람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나는 자주 괜찮지 않았다. 예민한 신경 탓에 남들이 흘려듣는 말에도 쉽게 베였고, 사소한 실수에도 세상이 무너진 듯 절망했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다자이의 첫 문장은 마치 나를 향한 선고 같았다. 이 불안정한 내면을 들키는 순간, 사람 구실 못하는 존재로 낙인찍힐 것만 같았다. 우리는 늘 강해져야 한다고,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우울은 질병이고 불안은 고쳐야 할 오작동처럼 취급받는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미워했다. 왜 나는 쿨하지 못할까, 왜 나는 이렇게나 질척거리는 감정을 안고 살까.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들을, 그 위태로운 삶의 흔적들을 더듬다 보면 묘한 문장에 당도하게 된다.
"나는 괜찮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것은 긍정이 아니다. "내일은 해가 뜰 거야" 같은 희망 고문도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체념'에 가깝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인 수용이다. 나의 나약함을, 찌질함을, 비겁함을 부정하지 않고 그냥 둔다는 뜻이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은 원래 늘 흐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망가진 채로, 상처 입은 채로, 괜찮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선언이다.
억지로 강해질 필요는 없다. 무던한 척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인간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는 나의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우울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미래가 불안하다. 나는 괜찮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모순적인 문장 하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