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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Oct 04. 2024

가을이사

흔적 청소

너의 이사 나의 흔적도 지우련다

매번 놀러 오던 집이 이사를 간다. 햇살 따뜻한 늦가을 오전. 밤새 당직을 서고 이사를 한다고 한다. 요즘은 부하라고 해서 이사하는데 부를 수도, 오게 하려고 할 수도 없다.



강요에 의해 휴일에 상급자 이사를 도왔고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이 든다고 기관에라도 넣으면 큰 일 난다.

군 생활 하는 동안 관물 이동부터 부대 이동, 전출입으로 인한 이사 등을 수없이 해 보았다. 언제나 누군가 도와줄 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두 손에 무언가를 들고 손가락에 이리저리 끼우고 팔에 또 끼우고 가다가 뭐라도 흘리면 난감해진다. 이럴 때 살짝 주어 넣어주는 친절은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만난 건 올해 초이니 날짜로 300일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 춥다는 강원도로 오면서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함이나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매 번 새로운 부대로 갈 때면 왠지 모를 두려움이랄까? 걱정이랄까?


뭔지는 정확히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사의 주인공이 떠난 지는 어림잡아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교육 파견, 바로 이어지는 전출, 전임자는 이미 떠나고 없고 밀려있던 당직근무까지 피곤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업무파악을 빠뜨릴 수도 없다. 그런 후배가 휴일을 이용해 이사를 간다는데 어쩌겠는가?

만추의 정취를 느끼고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캐논을 들으며 커피 한 잔을 하는 것은 부하이자 후배의 이사에 대한 도리가 아님을 안다.


 어제 말한 이사 시간에 맞춰 나가 기다렸다. 오지 않아 전화를 했다.

'헬로 썰?'
'Where?'
'가고 있습니다'
'내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김부리 지나고 서낭고개 넘고 있습니다'
'뭐 하다가?'
'차에 실어둔 것 좀 올려두느라 출발이 늦었습니다'
'조심히 오시게'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남는다. 바람도 쐴 겸 산책을 해야겠다. 조금 걷노라니 멀리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부지런히 운동 중이다. 역시 군인들은 대단하다.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 보니 조용하다. 누군가 공을 기계에 넣고 있다.

순간 기분이 급하게 안 좋아진다. 오후에 스크린 하기로 한 지ㅇㅇ대령이다.


얍삽하다. 연습 안 하기로 해 놓고선 혼자 하고 있다. 역시 수방사에서 보던 그 야삽함이 체질화되어 있다. 그래도 어쩌랴?

'나도 연습해야지. 방심하면 안 된다. 호랑이가 토끼 한 마리를 잡으려 해도 최선을 다해야 함을 잠시 잊었다.!'

'헬로! 뭐 하시오?'
'일찍 깨어 심심해서 나왔습니다'
'저도 그렇소'
'어제  사후검토 준비하느라 밥 사주신다고 하셨는데 죄송합니다 '
'오늘은 사생결단이오 쫌, 많지는 않지만 얍삽하오. 아베요?'
'아이~~ 왜 이러십니까?'
'뭘? 요?'
'연습하러 오신 거 아니십니까?'
'당신이 하시니 저도 해야죠'
'그건 맞습니다 오래간만에 옳으신 말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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