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풍(광화문 교보 가는 길에서) 241102
늦은 아점을 먹고 산책을 나간다. 어디로 갈까? 아내의 물음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광화문 교보로 간다고 대답했다. 또? 거기가 내 놀이터요 가장 행복한 곳인데... 입 속으로 읊조리기만 했다.
밤늦게까지 무엇인가를 하다 늦잠 자는 딸아이만 남기고 우리 셋은 같은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 와서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아내가 아들에게 물었다. 카드는? 앗! 없어요. 집에 가서 가져와! 기다릴게. 아빠에게 손짓한다. 저쪽으로 가서 기다리라는 건지? 버스가 오면 잡으라는 건지? 엄마와 같이 집에 같이 가자는 건지?
그 싸인에 따라 걸음을 떼었다. 우리 천사가 어쨌든 혼자서 집에 두고 온 카드를 가지고 오라는 말을 이해하고 스스로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한 여름의 신록은 옷을 갈아입고 일 년 내내 같은 색이던 인도와 도로를 마당 삼아 뒹굴고 걷고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미고 있다. 한쪽에는 자전거 한 대가 가지런히 서 있다. 녀석도 이 햇살 따사로운 만추의 기온을 느끼며 신선한 호흡을 즐기는 듯하다. 나도 그렇다.
하나님이 주신 이 가을을 감상하다 보니 반성도 된다. 약간 싸늘한 날씨에 나만 따뜻하게 입고 천사와 아내는 좀 추워 보인다. 지금이야 햇살 덕에 가벼운 차림이 제격이겠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추워질 것이다. 우리 천사가 좀 추워 보인다? 당신도? 괜찮아요. 나는 목도리 있고 태영이는 추우면 옷 하나 사주죠.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적어도 가족들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고 힐링할 수 있는 풍경을 죽은 후에도 무료로 주고 있는 나뭇잎이 부러웠는데...
우리는 지금 같은 버스를 타고 다른 목적지로 가는 중이다. 익선동으로 둘, 광화문 교보로 하나,
같이 다니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듯 우리는 종로에서 같이 내려 방향만 다리 또 걸을 것이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이 어두워지면 천사의 귀가 독촉 콜을 받을 것이고 다시 모일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오늘도 많이 받고 있다. 받기만 하면 안 되는데, 아무리 거저 주시는 거라지만 이건 상도의가 아님을 안다. 얼른 원고 마무리하고 착한 일 단 하나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