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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Oct 17. 2017

다시 육아휴직을 한다면,
하지 않을 말 3가지

웅이를 임신했을 때, 남산만한 배를 안고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이 녀석, 태동을 참 열심히 했습니다. 여기 불룩 저기 불룩, 손을 내미는 건지 발차기를 하는 건지, 간지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열심히 움직이는 웅이에게 ‘엄마 일 좀 하자. 가만히 좀 있어’ 슬며시 웃으며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걱정도 컸습니다. 30살에 결혼해 32살에 엄마가 되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계획대로’ 31살에 임신을 했는데, 막상 임신을 하니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내가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나?’는 마음이 절반, ‘아이를 낳고도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나머지 절반.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한 다음 날, 남편은 출근해서 팀원들에게 한 턱 냈다는데 저는 ‘언제 알려야하지?’부터 걱정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고민은 

‘일을 계속해야 할까, 말아야할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 일단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아직 시간이 있으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답이 나올 거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일단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자’ 다짐했습니다. 


웅이가 태어났고, 정신없이 엄마가 됐습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했습니다. 출산 예정일까지 가쁜 숨 참아가며 출근한 건 웅이가 태어났을 때 하루라도 더 늦게 복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내가 일을 계속 하게 된다면 육아휴직은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테니까요. 이 시간만큼은 엄마 노릇 ‘제대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웅이가 6살인 지금, 육아휴직기간을 돌아보면 아쉽습니다. 그중에서도 ‘제대로 엄마노릇’하겠다던 그 마음이 가장 아쉽습니다. 


웅이가 태어나고, 남편은 출산휴가 일주일을 받았습니다. ‘휴가 더 낼까?’ 묻는 남편에게 ‘괜찮아. 내가 해볼게’라며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당분간 남편 혼자 버니까, 남편의 회사 일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엄마인 내가 돌보면 되니까요. 그게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아휴직 내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가 육아와 살림을 책임질게. 당신은 경제적으로 우리 식구를 책임져’ 그렇게 역할을 나눴습니다. 책 『아내가뭄』에 따르면 “아이가 생기면 직장 생활을 하던 76%의 엄마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직장 생활 패턴을 바꿉”니다. 하지만 “아빠들은 첫아이가 태어나면 주당 근무시간이 4시간 정도 더 늘어”납니다. 우리 가족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 때문에 복직한 뒤 

웅이도, 저도, 남편도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복직을 하니 하루 종일 찰싹 붙어있던 엄마가 갑자기 아침에 나갔다 깜깜한 밤이 되어야 돌아옵니다. 웅이가 힘들어 합니다. 저는 제가 오롯히 감당하던 ‘엄마 역할’을 나눌 사람이 없어 힘듭니다. 집안일에 신경쓰지 않던 남편은 제가 복직한 뒤에야 갑자기 급하게, 본격적으로 육아에 뛰어들려니 우왕좌왕합니다. 온가족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만약 육아휴직을 ‘내가 엄마가 되는 기간’이 아닌 ‘남편과 같이 부모가 되어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땠을까요. ‘휴가 더 낼까?’ 남편이 물었을 때 ‘그래. 우리 같이 해보자’ 대답했다면 아마 꽤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 


“당신 바쁘잖아”라고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게 아니라, 부모가 같이 키우는 겁니다. 나 또한 아이를 낳자마자 모성애 샘솟는 엄마로 변한 게 아닙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남편 또한 아빠가 될 시간이 필요합니다.


30대 중반, 회사에서 실무를 가장 많이 맡는 연차이고, 그래서 바쁜 시기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연차가 더 많아지고 승진을 하면, 앞으로는 더 바빠질 겁니다. '지금은 바쁘니까…' 미루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아이는 바쁜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쑥쑥 자랍니다. 


'엄마라는 게 이런 건 줄 알았으면 내가 애 안 낳았지' 한숨이 나는 순간도, '내가 엄마가 아니었으면 이 순간을 못 봤겠네' 가슴 벅찬 순간도 같이 부모가 된 남편과 누리고 나눴어야 합니다. 다시 육아휴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빠도 30분만 일찍 퇴근하자" 어떻게든 남편의 하루에 아이를 자리잡게 했을 겁니다. 


#2.


“내가 할게”라는 말은 덜 했을 겁니다. 엄마가 되니 알겠습니다. 엄마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제법 엄마티나게 된 건 기저귀를 갈다 오줌세례를 (한 번 아니고 여러번!) 맞고, 행여 생채기 날까봐 내복 하나도 조심조심 (거북이처럼!) 갈아입힌 뒤였습니다. 


그리고 '초보 엄마'티를 벗으니 남편이 어설퍼 보였습니다. 남편이 우는 웅이를 달래고 있으면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어느새 달려가 '웅이 줘' 했습니다. 나보다 가끔 기저귀를 갈고, 더 가끔 아이를 목욕시키니 남편이 어설픈 건 당연한데 남편이 허둥지둥할 때면 애쓰고 있는 남편보다 불편해보이는 웅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하는데 낫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웅이 돌보는 일에 더 익숙해졌고, 남편은 더 멀어졌습니다. 남편이 웅이와 가까워지려면, 엄마인 내가 한 발짝 물러나 여유있게 바라봤어야 합니다. 다시 육아휴직을 한다면 '내가 하는 게 낫지' 생각이 들 때 웅이를 낳고 우왕좌왕하던 내 모습을 떠올릴 겁니다. 그리고 "나도 처음엔 그랬어" 라며 남편을 응원할 겁니다.



#3.


“혼자 있고 싶다” 이야기만 하지 않고 당당히 외출하겠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세요.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라고 해도 그 집엔 보통 엄마도 있습니다. 엄마-아빠-아이, 셋이 같이 있죠. 나는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많지만, 남편은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빠도 할 수 있습니다. 나 또한 아이를 돌봐야 하니 돌보며 육아에 익숙해졌습니다. 남편이라고 다를 것 없습니다. 기댈 사람(=아내!)이 없을 때, 아이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때 남편도 몰랐던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개인시간'은 복직을 해도 안해도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게 엄마의 일 아니냐고요? 그 일이 하루 24시간 자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적어도 '쉬는 시간'은 주어져야 합니다. 풀타임 근로자에게도 1시간의 점심시간은 주어집니다. 온전한 '내 시간'이 있어야 엄마노릇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육아휴직을 한다면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라도, "나 친구 좀 만나고 올게" 외출을 하겠습니다. 아이와 단 둘이 남겨진 남편도 더 좋은 아빠가 되어 있을 겁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요. 육아휴직이 끝나면 '제대로 된 엄마노릇'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손으로 아이 키우지 못하는데, 나는 반쪽짜리 엄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겁이 나고 더 불안했습니다. 복직을 하면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복직이 또 다른 세상인 건 맞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은 아니었고, 조금 더 감당해야 하는 일이 많은 세상일 뿐입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이고, 직장인이고, 사람입니다. 베티 프리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과 가정을 결합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 여자의 일생을 고려한 새로운 인생 계획을 요할 뿐이다." 육아휴직을 앞두고 계시다면, 육아휴직 중이시라면, 복직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내가 출근하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가 아닌 "내가 출근하면 우리 가족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를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꼭 남편과 하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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