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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17. 2024

독일의 반려견 동반 호텔에 가 보았다


하얀 크림색의 순진한 갈색 눈망울과 수시로 쫑긋 거리는 귀요미 귀를 가진 강아지가

훅 하고 우리 삶에 들어온 그날부터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리가 강아지와 함께 하려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독일 친구들은

"일하느라 바쁜데 다시 생각해 봐"라는 조언과 강아지와 함께한 경험들을 나누어 주었고

견종별 강아지에 관한 정보 또한 인터넷 검색으로 두둑이 저장해 두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으로 미리보기 해 보았던 것과 실제 상황은 달랐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와의 일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신경 쓰고 챙기고 양보해야 할 것들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쉽지 않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어딜 마음 놓고 다니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긴 시간 외출 하는 것도 여행도 출장도 우리 시간 에만 맞으면 언제든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강아지 상황을 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전에는 우리가 원하는 곳을 고민 없이 다녔다면 이제는 강아지와 갈 수 있는지를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강아지 천국이라 불리는 독일에서도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없는 곳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웬만한 카페나 식당들에서는 강아지가 동반되는 경우가 자연스러운 곳들이 대부분인데 비해 숙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또 중형견 이상의 강아지 들과 오랜 시간 전차나 기차,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우리 집 나리는 대형견이 많은 이 동네에서는 중형견에 속하지만 상대적으로 소형견이 많은 한국에선 아마도 대형견에 속할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을 간다거나 조금 긴 휴가를 갈 때는 언제나 나리를 강아지 호텔에 데려다주고는 한다.

훈련사님이 훈데슐레(강아지 학교)와 함께 운영하는 강아지 호텔이라 직원들도 모두 훈련사 들이여서 강아지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응급상황일 때 어찌해야 하는지 등의 사전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다.

또 무엇보다 나리가 가면 좋아한다.


요즘은 베이비 시터 못지않게 펫시터들이 늘고 있고 강아지 호텔에 비해 비용도 조금 적게 들지만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객관적인 곳이 우리 경험에는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상황이 나리를 강아지 호텔에 맡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갑자기 가게 되는 번개 여행은 더 이상 꿈꿀 수 없게 되었고 휴가 계획도 늘 나리의 상황을 고려해 세우게 된다.


가족들과 수영장이나 영화관을 갈 때도 집에 혼자 있는 나리를 위해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한다.

또 혹여라도 변수가 생기거나 갑자기 장거리를 다녀와야 할 경우 들은 일단

나리와 함께 자동차로 당일 치기를 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루 숙박을 하는 것으로 하자고 남편이 말했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딸내미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보통은 큰아들이나 딸내미나 공항에서 기차 타고 집으로 오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딸내미가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 하다 보니 경유지에서 기다리다

환승을 해야 해서 집으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배는  들게 생긴거다

  시간 기다림과 비행시간도 지칠 테고.  가까이 지내다 귀국하는 거라 짐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그래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겠는데 도착 예정 시간도 이른 시간이고 이제는

당일치기가 힘에 부치더라는 거다.


우리 집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A7을 타고 쉬지 않고 달리면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그런데 이건 자동차 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도로가 뻥뻥 뚫려 있으며 중간에 화장실 한번 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다.

보통은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나리와 함께라 중간에 나리 산책도 시켜 줘야 한다.

또 아우토반에서 공사 구간 나오고 교통체증 안에 들어가면 사실 시간은 무의미하다.

매번은 아니지만 아우토반 위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 본 적도 있다.


그리고 모든 경우의 수가 좋았다 해도 왕복 6시간 운전은 남편에게도 힘들고

내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하루 미리 가서 자고 그다음 날 아침에 공항에서 딸내미를 픽업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강아지 동반 할 수 있는 호텔이 7군데가 있었다.

찾아보면 에어 비엔비 또는 민박집 들도 있겠지만 그 또한 공간이나 공항과의 거리 등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일단 호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복잡한 시내가 아닌 아우토반에서 가깝고 근처에 공원이나

숲이 있어 나리와 산책이 가능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독일에서 산책이라 하면 가장 큰 이유가 야외 배변 이기 때문에 하루 세 번 이상은 해 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나리는 조금 큰 도시를 가면 배변하는데 조금 애를 먹는 편이다.

강아지 들은 소리와 냄새에 예민하다 보니 조용한 편인 시골 도시에서 접할 수 없는 소리들과

냄새들에 꽤나 민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고른 곳이 프랑크푸르트 H4 호텔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공항 갈 때, 또는 한인마트가 크게 있어서 자주 들리는 도시 중에 하나다.

또 언젠가 며칠 휴가를 보낸 적도 있어서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도시 중에 하나인 셈이다.

그런데 나리와 함께 호텔에서 1박을 한다고 하니 왠지 처음 가는 도시처럼 설레기도 하고

괜찮으려나 걱정스럽기도 했다.

마치 새로운 도전 을 하듯..


우리는 그렇게 미션 하러 가듯 두근 거리며 아우토반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나리와 호텔 문을 열고 들어 가니 로비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호텔은 강아지 들뿐만이 아니라 박람회 관람 또는

워크숍 등으로 오는 단체 손님들이 많은 호텔이었다.)

호텔을 예약할 때 강아지 동반이라고 미리 입력해 두었고 요금은 체크인할 때 하라고 되어

있어 (아마도 견종 크기등을 확인하기 위함이지 싶다)

강아지 요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고 온 터라 내심 요금도 궁금했고

강아지 동반 입실하는 호텔 방은 어떻게 생겼나도 궁금했다.


집과는 다르게 미끈덕 거리고 반짝이는 넓은 로비를 보자 나리는 잠시 긴장한 듯 보이더니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어머나 예뻐라 하고 웃어주니 천연덕 스레 주저앉아서

셀카 포즈를 취해 주는 게 아닌가 밥 잘 주는 아줌마(나리에게 나는 밥 잘 주는 아줌마다 ㅎㅎ)

닮아 은근? 관종이지 싶다.

강아지 요금은 일박에 15유로 를 내라고 했다.

한화로 하면 약 2만 원 정도니 그 정도면 착하지 않은가?(매번 환율에 따라 일이천 원 차이가 있습니다)

강아지가 묵고 가는 방은 아무래도 청소도 더 해야 할 테니 말이다.


두리번거리는 나리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집에는 엘베가 없지만 내가 일하는 문화센터 등에 데리고 다니며 연습을 많이 시켜 둔 터라 나리는 엘베를 두려움 없이 잘 탄다)

방에 올라가서 보니 생각 보다 방도 넓고 깨끗했다.

보통 대도시에 호텔 방들은 침대 주르미 있고 끝인 경우가

많은데 강아지와 함께 여서 그런지 여유 공간 들이 많았다

또 매번 강아지 동반용 방들은 정해져 있을 테지만 위생 관리를 철저히 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발코니에서 숲이 내려다 보여 더 좋았다.


나리도 여기저기 냄새를 킁킁 거리며 다니고는 편안해했다

어디선가 우리는 맡을 수 없지만 강아지들에게는 맡아지는..

언젠가 묵고 간 다른 강아지들의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호텔방 감상을 끝내고 집에서 가져온 가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챙겨 온 것들에는 나리 담요 물그릇 밥그릇 사료, 간식 배변봉투 등등도 있던 터라 일박이일이지만

짐이 단촐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똑똑하고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여니 친절하게 생긴 호텔 직원 아저씨가 "이 방에 강아지 있지요?"

라고 물었고 문틈 새로 낯선 이의 방문에 귀를 쫑긋 거리는 나리를 보며

"오 너로구나!" 하고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

유니폼 입은 아저씨 들을 세상 좋아라 하는 나리는 꼬리가 헬기 프로펠러가 되어 문 앞으로

날듯이 다가갔고...

직원 아저씨는 그런 나리가 귀여운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들고 온 선물 보따리를 내려 주었다.


직원 아저씨가 주고 간 선물 보따리에는 갈색의 강아지 침대 그 위에 하얀색 쟁반 그 위에 반짝반짝한 은색의 강아지 물그릇 밥그릇 노란색 그릇 받침대 두 가지 강아지 간식 그리고 파란색 담요가 얹어져

있었다

용품들 사이에 문 앞에 끼울 수 있게 만들어진 방안에 강아지 있어요 표시 도 귀엽게 올라가 있었다.


물론 가져가라는 선물은 아니지만 하루 15유로 강아지 방값에 침대와 담요 밥그릇 물그릇등의

강아지 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 이용권이 들어 있는 셈이다.

여러 번 사용되었을 텐데도 새것처럼 침대도 그릇들도 우리 집 나리 것 보다 깨끗해 보였다

이런 ,,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바리바리 싸가지고 오지 않는 건데..

이런 작은 서비스와 배려가 고맙기도 하고 묻지도 않고 이고 지고 온 우리가 웃기기도 해서

웃음이 터졌다.


나리도 하루짜리 이기는 하지만 새침대가 맘에 들었던지 옆으로 누웠다

뒤집어 누웠다 난리를 직이고 있었다 그런 나리에게

"나리 맘에 들어?"라고 했더니

침대 위에 앉아서 포즈를 취하며 "그 손에 든 핸드폰으로 얼른 사진 한 장 찍고 다른 손에 있는

그거 간식 하나 주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그 표정이 너무 알겠어서 웃음이 또 터졌다.

미션 클리어 ~~!

나리와 호텔에서 하루 묵기는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고 재미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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