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Sep 18. 2024

롤러코스터 같은 독일 날씨

그런데 누구세요?


어느새 집 앞 도토리나무에 파란 도토리가 조롱조롱 열렸다

갈색으로 익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

꽃과 나무들은 어찌나 때를 정확하게 맞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여름인지 가을 인지 헛갈리는 우리에게 이제 가을이 온다고 알려 주기

라도 하려는 듯이 탐스럽게도 달렸다.


독일도 올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온도가 30도가 넘게 올라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삐질 삐질 나게 덥고

입은 것 같지 않게 얇게 걸치고 있어도 더위가 가시지를 않던 날들이 많았다.

집안, 병원 건물 할 것 없이 몇 날 며칠 달아올랐던 열기로 꽉 차서 들어오나 나가나

덥던 것이 무색하게 온도가 쭉쭉 내려가 이른 아침 기온 9도를 찍고 있다.

이제는 긴팔을 입고도 쌀쌀하다 못해 춥다.

옷장문을 열면 엊그제 빨아 말린 반팔 반바지와 얇디얇은 원피스가 아직 고개를 내밀고 

있건만 여름옷을 정리해 두어야 될 때가 되었나 보다.


옷장 구석에 밀어 두었던 묵직한 겨울 외투를 꺼내 든다.

얇은 원피스 입고 긴 머리 똥머리로 틀어 올리고 출근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이른 아침 출근 시간이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다.

샬랄라 한 여름 원피스 입고 나갔다가는 모양내다 얼어 죽겄네 싶으니 말이다.

게다가 해가 떴나 말았나 싶게 어두침침한 날이면 불어오는 바람마저 시리다.

외투 없이 나갔다가는 한없이 움츠려 든다.


일기예보 엡을 열어 보면 이번주 낮기온 23도 24도까지 올라간다고 되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한낮에 볕이 퍼질 때로 퍼져 온도가 실컷 올라가고 바람조차 불지 않는

오후 4시나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해가 뜰까? 말까? 하는 아침은 잠이 번쩍 깨게 9도와 13도 사이에서 시작한다.

들쑥날쑥 일교차도 10도를 웃돌고 있으니 롤러코스트도 이런 롤러코스트가 없지 뭔가.


체감 온도는 예보에 적힌 숫자보다 늘 올라가거나 내려가기 마련이니

몸이 느끼는 온도는 이미 가을이 아니라 초겨울에 접어든 듯하다

더운 것에 몸이 적응되자마자 이렇듯 급 추워지니 이웃집 할매들은 벌써부터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지난주 내내 동네 골목 에는 매캐한 탄내가 진동을 했다.

봄, 여름 내내 비워 두었던 벽난로에 집집마다 다시 불을 지피니 그 연기가 빠져나오느라고 말이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옷 조금 더 걸쳐 입는 것으로 버티던 나도 엊그제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무 가져다 불을 땠다.

하얀 그을음을 뒤로한 채 빨간 불길이 올라오자 때아닌 온기를 만난 멍뭉이 나리도 차갑게 굳어 있던 근육들도 노곤하게 늘어졌다.


추석 명절을 보내고 있는 식구들에게 인사를 나누니 모두 너무 덥다고들 하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 중부는 시간차가 있을 뿐 온도나 계절변화가 서울과 엇비슷하게 맞닿아 있을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극명하게 다를 때도 더러 있다.

우리 동네는 이미 가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섰고 서울은 아직 한여름 끝자락에 서 있으니 말이다.



내친김에 친구에게 정원에서 가을겆이 한 풍성한 호박 사진을 넣고 

추석 인사와 함께 톡을 보냈다.

아침에 친구가 답톡을 보냈다. 놀라운 사진들과 함께..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보고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나조차 잊고 살았던 시간...

친구의 톡 안에는 자그마치 30년도 넘은 옛날옛적 사진이 어제인양

들어가 있었다.


친구가 친정집에서 용케도 찾아낸 사진 안에는 익숙한 듯 낯선 여인네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지금과는 엄청나게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하~~! 이거야 말로 롤러코스트가 아닌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 30년 세월을 정통으로 맞고 선 지금을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변화무쌍한 모습이라니...

사진을 빤히 쳐다보다 불현듯 묻고 싶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To. 애정하는 독자님들

추석 명절 잘 보내고 계신가요?

독일은 추석연휴가 없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날씨보다 더 놀라운 사진을 보고

안부 인사겸 글 하나 올립니다.

30년 세월인데 변하지 않았음 그게 이상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 그 세월이 어찌나 빠르게 흘러 갔던지..

마치 얼마 전 이였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ㅎㅎ


우리 독자님들 건강하고 평안한 연휴 보내시고요.

소중한 하루하루 행복하고 어여쁜 일들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에서 김중희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트램 타고 출근하는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