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모자란 부부와 비상구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다시 짐을 꾸렸다.
남편은 학회 참석차 나는 덩달아 여행을 위해..
제주행 밤비행기를 타러 가기 위함이었다.
그전날 10시간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온 것도 모자라 또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려니
땅에 발 디딜 틈이 없구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목포나 부산까지 기차 타고 가서 배 타고 가는 것은 더 빡셀것 같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작은 가방에 4박 5일 갈아입을 옷가지 들과 세면도구들을 챙겨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이번 제주행을 한 문장으로 줄여 말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처음 하는 우리끼리 여행,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우리끼리 여행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대하듯이 각자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마저도 남편은 혼자 학회를 다녀온다거나 나는 요리 전수받으러 또는 급한 볼일을 보기 위해서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삼십 년 통틀어 각각 두세 번쯤 되려나?
그렇다 보니 여행 초반부터 우리끼리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작년 여름 온 가족이 한국에서 전주, 부산, 포항을 다녀왔을 때도 아이 셋 함께였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있어 빠리빠리 한 아이들의 도움이 지대 했다.
어느 곳에 예약을 하고 어디론가 길을 찾고 교통편을 이용하고 등등
여행에 관한 크고 작은 일들을 아이들이 도맡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야무지고 또리또리한 아이들 없이 어리바리 한 우리 부부 가
모든 걸 다 알아서 해야 하니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어리바리한 우리는 어머니 께는 잘 다녀오겠다며 호기롭게 집을 나섰지만
공항철도를 타러 가는 것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우선 제주도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는 김포 공항으로 가야 한다.
택시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밤 비행기라 시간도 많이 남았고 우리 때는 없었던
공항까지 연결된 공항철도가 있다 했다.
우리도 세련되게 한번 이용해 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우리 때는 없던 노선과 낯선 역 이름들이 주야장천 나온다.
그중에서도 공항철도는 말로만 들어 보았지 처음 타러 가는 것이라 지하철 역에서 내릴 때는 잘 보고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때문에 구간 환승을 할 때 잘 보고 내려야 걷는 길을 줄일 수도 있고 급기야 잘못 나가는 실수를 면할 수 있다.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기까지는 순조로왔는데 어느새 갔던 그 길로 되돌아가 있었다.
애써서 엘리베이터까지 타고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도착하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공항철도로 갈아타는 곳으로 나가는 길은 보이지 않고 사전거리 내에는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누군가 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앞에는 세상 조용한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속삭이며 두리번거리며 캐리어를 밀고 있던 일본 처자들과 뒤쪽에는 저세상 데시벨로 떠들어 대는 중국 가족들로 보이는 팀이 있었다
모르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던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일본 처자들을 보고는 우리도 그들을 따라갈까? 하고 몇 초 망설였다.
길을 모르니 외국인이나 우리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다 우리는 일단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고 무턱대고 교통카드를 찍고 나오니
차라리 공항철도로 가는 길이 또렷이 보였다.
아까 나왔던 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었다.
아마도 그 안에서도 앞쪽이나 뒤쪽에 분명 연결된 길이 있었을 텐데
어중 띄게 중간 어디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웃대다 보니 공항철도로 갈아타는 곳 방향이 보이지 않았던가 보다
나왔던 곳에서 또다시 들어가기 위해 교통카드를 올려놓으니 환승입니다 하는 아낙네의 낭랑한 목소리가 자동으로 울려 퍼졌다.
아까 우리처럼 헤매고 있던 그 일본 처자들이 분명 왔던 길 되돌아가며 무한 반복 중일지도 모른다 싶어 조금 안쓰러워졌다.
어딘가 큰 글씨로 방향 표시만 되어 있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막상 그 역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길 표시들이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니 곳곳에 커다랗고 명확하게 보였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로 김포공항까지 무사히 찾아갔다.
인천공항이 생겨 나고부터 그동안 갈 일이 별로 없었던 곳이지만 예전에는 독일에 나갈 때도 한국에 들어올 때도 김포공항을 통해서였다.
그 당시 우리에게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만남의 설렘과 이별의 아쉬움이 교차하던 곳이다.
지하로 깔끔하게 잘 연결되어 있던 공항철도를 타고 무사히 김포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그동안 쌓은 마일리지를 확인하고
이 번 것을 합산하기 위해 창구로 갔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회원 카드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좌석도 미리 받을 수 있었고 요즘은 플라스틱 카드가 제발급 되는 것이 아니라 여권에 붙여 주는 번호표에 스캔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일석 이조였다 물론 남은 좌석이 몇 개 없어 선택지가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직원분이 "비상구 쪽도 괜찮으시죠? " 하길래 우리는 “네, 그럼요!"
라며 미리 좌석 예약도 하지 못했는데 함께 앉아 갈 수 있어 다행이다 했다.
비행 내내 불안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체 말이다
비상구.. 일반 적으로 자리가 조금 넓은 곳이 아니던가
비행기를 탈 때 까지도 그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독일에서 타고 온 비행기에 비해
아담하다는 생각을 하며 금방 자리를 찾아 앉았다
우리 자리는 오른쪽 비상구의 세 자리 중에 창가 자리를 제외한 나란히 두 자리였다.
창가자리에는 운동복을 입은 앳된
청년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핸드폰 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청년은 왜인지 어딘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무언가 매우 불안정해 보였다.
혼자 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은 겉보기에는 동네 오가다가도 만날 법하게 평범했다
단지, 지나치게 불안해 보였다.
원래 얼굴이 붉은 편인지 아니면 긴장을 해서 붉어진 건지 붉은 얼굴에 갈 곳 잃은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저러지? 싶을 만큼 핸드폰 들고 있던 손과 다리를 박자 맞추듯 덜덜 떨어가며 이쪽저쪽 두리번 대며 멍해진 얼굴..
안경 속에서도 수시로 빠르게 오가는 눈동자가 옆에 앉은 사람도 괜스레 초조하게 만들었다.
조금 있으려니 승무원이 비상구 쪽 앉은 승객들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다름 아닌 운항 중에 (별도의 안내방송이 없는 상황에서는 ) 절대로 비상구 문에 손을 대면 안 되고 등등...
설명을 들으며 비상구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옆 자리 청년의 모습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비행기가 이륙하며 움직일 때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나 내릴래 소리치며 문을 연다 해도하나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순간 무서웠다. 비상구문 손잡이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청년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손잡이를 잡고 돌릴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저 청년이 돌발 행동을 한다면? 어쩌지?
그런데 나만 그런 발칙한 상상을 하며 불안에 떨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남편은 누구 들으라는 듯이 출처도 불분명한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예전에 기사에서 봤는데 누가 운행 중인 비행기 비상구 문에 손댔다가 10억 인가하는 어마어마한 벌금 내고 감옥 갔데!"
라며 청년 쪽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그렇게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그나마
비행시간이 짧아 다행이다! 를 되뇌고 있을 때였다.
저 앞쪽에서 승무원들이 바퀴 달린 밀대를 밀고 다니며 음료수들을 나눠 주며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남편은 그전날 기내에서 두 번의 식사와 중간중간에 커피, 차 음료를 위해 수시로
펴 들었던 앞 좌석에 연결된 테이블을 습관적으로 찾았다.
그런데 우리 자리는 비상구라 앞 좌석 쪽이 아니라 안전벨트처럼 옆구리
쪽에서 꺼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은..
끙끙거리며 잘 나오지 않는 작은 선반 같은 테이블을 굳이 꺼내어 펼쳐 들었다
그런데 그 테이블이 남편 것이 아닌 옆에 앉은 청년의 것이었다.
당황한 남편은 테이블을 청년 쪽으로 돌려 밀어주며
"여기 음료수 올려 두시라고 미리 꺼내 드렸어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음료수 한잔 마시자고 낑낑거리고 테이블을 꺼내 든 것도 웃겼는데…
그거이 남의 테이블이고 그걸 또 생각해서 챙겨 준 것 마냥 이야기하는 남편의
위트 어린 우스꽝 스런 모습에 누구랄 것 없이 웃음이 터져 킥킥 거리며 웃었다.
굳어 있던 청년도 “네~감사합니다!” 라며
해맑은 얼굴로 웃어넘겼다 시트콤을 다큐로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남편의 아재개그가 통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훨씬 부드러워진 분위속에서 토마토주스, 감귤 주스, 콜라를 받아서 각각 마셨다.
그때부터였다 조금 모자란 듯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그 청년을 안심되게 했는지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청년은 훨씬 편해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덕분에 우리도 덩달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몇 분 남지 않은 비행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때로는 우리의 부족한 모습이 다른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미소 지으며 우리는 야자수가 가로수인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어리바리한 부부의 제주 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