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디가 더 좋은지 둘 중에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남편은 산 나는 바다 쪽이다
수영을 물고기처럼 잘하고 서핑을 즐긴다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물멍을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으니
나는 분명 바다를 좋아한다.
남편은 암벽등반을 한적도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을 오른 적도
없지만 동네 뒷동산 이어도 산기슭 비슷 한 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하니 산을 좋아하는 셈이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남편은 주로 학회에 참석하느라 많이 다니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그 시간 동안 나는 혼행하듯 돌아다녔고 주로 해변
산책로 위주로 다녔다.
저녁이 되어 남편과 함께 다닐 때도 전통시장과 바닷가 쪽이었다.
그러다 보니 왠지 남편을 대신해 혼자라도 한라산 까지는 아니어도
오름은 한번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선택된 곳은 금오름이었다.
제주도의 많고 많은 오름 중에 숙소에서 가까운 편이고 아이들도 갈 수 있는 난이도라 했다.
때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잘 다닌 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택시를 타고 기사님께 금오름 가려고 한다고 말씀드리며 “여기서 금방 이라면서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기사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시며 "15분에서 20분 걸리죠
제주도가 작은 섬이 아니에요 어디를 가나 짧게 걸리면 20분 이죠"라고 하셨다.
맞다 자꾸 잊는다 제주도는 옆으로 길게 놓인 섬이라 생각보다 오가며 이동하는데 시간이 꽤 든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금오름에 도착했다. 순간 당황했다.
알려진 관광 명소라 그 앞에 뭐가 많이 있을것이라 예상했던 것 과는 다른 느낌이 였기
때문이다.
자동차들을 세워 두는 들판 주차장을 제외하고는 그 앞에 귤주스 등을 판매하는
간이매점 같이 보이는 곳 두 곳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오름 은 산을 지칭하는 제주도 방언이라 했다.
독일에서는 산이나 산책로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늘 당연했다.
그런데 내 어린 시절 기억에 동네 산에만 가도 근처에 슈퍼에 식당, 카페, 등등
뭐가 많았던 기억 을 하고 있던 나는 제주도는 다르구나 했다.
주말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지 않고 오름은 고즈넉했다.
입구에 해충 기피제가 구비되어 있어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여 ! 공짜 화장실도 도처에 있는데 이런것도 있다니!‘ 하며 놀랐다
독일 에서는 어디를 가나 돈내고 가는 유료 화장실이 대부분이고 나무 울창한 숲이던 산이던 간에 기피제는 각자 알아서 뿌리고 가야지 깜빡 하고 온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친절하게 마련해 준 곳은
만나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실감 나는 진드기 모기가 모델로 나온 사진 안내 표지판을
보고는 월매나 많길래..라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으스스 해 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나마 숙소에서 진드기 모기 기피제를 미리 뿌리고 왔고 얇고 긴 여름용
카디건을 걸쳐 입고 왔으니 괜찮겠지 하면서 조심조심
금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름의 공기는 맑았고 조금 덥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날씨도 좋았다.
그래도 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날씨가 아닌 게 어딘가 28도 29도 정도면
걸을 만 하지 게다가 이렇게 나무 그늘도 있으니 상쾌하구먼 이라며
호기롭게 걷고 있을 때였다.
저 앞쪽에서 뭔가 팔짝하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깜짝 놀라 뒷걸음치던 나는
잠잠해진 앞을 내다보며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또 뭣이 앞에서 폴짝하고 뛰어올랐다
마치 춤을 출 때 서로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듯 내가 한 발짝 가면
무언가 폴짝 뛰어오르고 내가 멈추면 멈춰 섰다.
가까이 가서 보니 뻥 조금 보태 애기 주먹만 한 두꺼비 또는 맹꽁이나 개구리였다
어쨌거나 꽤나 큰 양서류였다.
엊그제 뱀을 만난것도 모자라 이제 주먹만 한 개구리 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주먹 만한 것이 어찌나 높이 뛰어오르는지 저러다 내 얼굴에 안착하겠네 싶어
나는 속으로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를 외치며 미친 듯이 뛰어 그 구간을 빠져나갔다
개구리를 피해 야반도주하는 사람처럼
간간이 뒤돌아 보며 빠르게 오름을 오르던 나는 헐떡이는 내숨 소리에
내가 놀랄 지경이었다.
아무리 오름 이라지만 진짜 계속 오르막 길이었다.
서서히 옆길에 보이던 주변의 농장들이 멀리 나즈막 하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올라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건만...
어쩐지 계속 무한 반복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땀은 쉼 없이 흐르고 숨은 차고 걸쳐 입은 카디건은 당장 벗어 버리고 싶은데
진드기 모기 무서워 벗지도 못하고 쌩으로 하는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 할머니 엄마 아이들.. 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쳐 나는 아이들은 콩알만 한 입을 재잘거리며 뛰고 있었고
쪼그마한 아이들보다 못 다닌다 싶어 쪽팔렸지만 헉헉 숨을 몰아 쉬고는
"저기요 여기서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주마이들 그 느낌 우리도 알아요라고 말하듯 까르르 웃으며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시면 돼요!"
라고 했다.
그런데 늘 그러하듯 산에서 조금만은 조금이 아니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도 아니고 계속 진격의 오르막길만 있다 보니
땀은 비 오듯 하고 주뎅이 에선 후회송이 저절로 읊조려졌다.
에구 내가 미쳤지 뭔 먹고 살일 있다고 혼자 산에는 기어 와서는..
바닷가 디저트 카페에 앉아 파도치는 것 보며 시원한
아이스커피에 케이크이나 먹고 있을 것을...
땀으로 젖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미친뇬 꽃다발이 되어 갈 때즈음
금오름이 보였다.
검색에서는 금방 갔다 온다고 되어 있었는데 나처럼 평지 걷는 것도 아끼던
사람은 후딱 하니 다녀올 수 있는 오름은 없나 보다.
기진맥진해서는 인터넷에서 보았던 사진처럼 생긴 금오름이 보이자
히말라야에 깃발이라도 꽂은 기세로 다 왔다 라며 환호했다.
발아래로 펼쳐진 제주도의 전경을 감상하며..
역시 올해 운동을 시작하기를 잘했어 그러니 이렇게 오름 도 올라오잖아
해가며 샐프 칭찬을 바리바리 했다.
남들이 보면 올림픽이라도 출전한 줄 알 지경으로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힘들게 올라간 금오름에서의 해프닝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