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여행 경로가 바뀌었다
우리의 제주도 여행 이튿날이 시작되었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우리는 밤중에 배불리 먹고 쿨쿨 잠을 자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독일에서 한국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시차적응 될 틈도 없이 짧은 구간이지만
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왔지 않은가.
덕분에 다음날이 되어도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이른 아침 몽롱한 가운데 일단 어디 가서 진한 커피 라도 한잔 마셔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든 미리 계획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한 계획형 인간인 남편과 먼저 학회 장소를 둘러보고 돌아 나오다 스타벅스 속칭 별다방을 만났다.
우리 동네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은 그 별다방을 숙소 안에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독일에서 중소도시에 속하는 우리 동네는 회사들도 꽤 있고 대학도 있는 도시라
물티 컬처 적인 구석도 있고 젊은이들도 많지만 예전부터 검소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독일 사람들 원래가 소박하고 검소한데 그중에서도 아껴 아껴하는 곳으로 유명했으니 얼마나 짠순이 짠돌이가 많은 동네 이겠는가.
그런 그들이 볼 때 그 동네 수두룩 빽빽한 빵가게 보다 커피값이 비쌀 때는 원두와 커피맛이 매우 스페셜하다던가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비쌀 때는 외면받게 되어 있다.
어찌 보면 스타벅스가 버티지 못한 것은 그 동네 정서상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껄끄러운 입안으로 입맛에 맞는 심심한 아메리카노에 치즈가 말랑하게 녹아든 따끈한 샌드위치가 들어오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독일에서는 빵가게나 카페에 가도 아메리카노 없는 곳도 많고 있어도 한약 다려 놓은 것 마냥 맛이 세다.
그래서 주로 라테 마끼아또 나 카푸치노를 마신다.
사실, 뭐 아메리카노가 별 건가 원두커피 내린 것에 물 탄 것 아닌가
그러나 독일 사람들의 커피 취향이 워낙 진한 맛이 많다 보니 물을 탔어도 엄청 쓴맛이 돈다.
물론 이탈리아 또는 그리스, 튀르키예를 가면 독일 커피는 연하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말이다.
그렇게 스벅에서 아침을 먹고 학회가 시작된 남편을 학회 장소로 보내고 일단 호텔 방으로 올라갔다.
나름 세워온 여행 계획을 전면 수정 해야 했기 때문이다. 들고 간 노트북을 켜고 숙소
근처 갈만 한 곳들을 검색했다.
원래의 계획 대로 라면 제주도에서 독립서점 탐방을 할 예정이었다.
섬 전체에 거쳐 육십여 곳이 된다는 독립서점을 4박 5일에 다 둘러볼 수야 없었을 테다.
그중에 꼭 가보고 싶었던 서점들만 골라
찾아 가 보고 난 후에 독일의 독립서점 들과
비교해 보면 재밌는 글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새로운 브런치북을 기획했었는데…
대부분의 독립 서점들은 느지막한 시간에 문을 열었다
또 어딜 간다 해도 남편 점심시간에 맞춰 돌아와야 하고 점심 함께 먹고 다시 나갔다가 다섯 시쯤 맞춰 들어와야 하니 왔다 갔다 하다 날 새게 생긴 거다.
왜 점심시간에 굳이 숙소로 다시 돌아와야
했는가 하면..
남편의 학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라고 했다.
그 시간 동안 나 홀로 꽤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겠구나 싶어 여기저기 검색해 보고 나름 빡빡한 계획을 세워 놓았더랬다.
그런데 변수가 생겨 버렸다.
남편은 독일에서 미리 등록을 하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현장 등록을 한 사람 중에 한 명이라 참가 비용도
그에 비해 조금 더 비쌌고 점심도 따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함께 먹지 않으면 남편은 숙소 어딘가에서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한다
요즘에는 혼밥이다 혼술이다 혼자 여행하는 혼행이다 혼자 하는 것이 유행 이라지만.
한국 그것도 제주도 까지 와서..
워터파크와 테마파크가 들어 있는 가족 중심 리조트 안에서 혼자 뻘쭘히 앉아 점심을 먹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까지 해 가며 전투 적으로 여행해야 할 이유가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점심도 함께 먹어 주고 여유 있게 짬짬이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면 그걸로 되는 거다.
점심시간에 남편과 만나 뜨끈한 돌솥비빔밥과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아~좋구나! 아~맛나다! 를 연발했다
워터파크에서 아직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에어컨이 켜져 있지 않은 곳이 없는 여름의 끝자락이었지만 뜨끈한 국물요리 들과 돌솥비빔은 언제나 진리다.
더운 날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마음까지 가득해지는 점심을 먹으며 남편이 전해 주는 학회 이야기도 듣고 내가 방에서 미리 리스트업 시켜둔 바뀐 여행 일정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며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학회로 돌아가며 “어디 갈 거야?”라고 묻는 남편에게
“어디로 갈지 아직 확정은 안 했지만
다녀와서 이야기해 줄게!" 라며 잘 안 되는 윙크를 날려 주었다.
그때까지 애월 해변 산책로 쪽으로 갈지
오설록 티뮤지엄으로 갈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밥을 먹었으니 다시 방에 가서 이 닦고 가방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하기로 했다.
욕실 거울을 보며 어디를 가던 한낮이라 햇빛 이 강하니 다시 꼼꼼히 선크림을
바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띵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던 거다.
그때 알았다 방 밖에 초인종이 붙어 있었는지..
당황한 나는 "누구세요?"라고 물었고 문밖에서 청소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중년의 여성 목소리였지만 뭔가 조금 이상했다
말이 짧기도 했고 청소라는 단어를 말할 때 말꼬리가 올라갔다
마치 "청소?"라고 묻는 것처럼..
뭔 일이지? 싶어 문을 여니 문밖에는 아주 순박한 웃음을 머금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주머니 한분이 수건과 휴지 등이 잔뜩 담긴 헹거를 밀고 서 계셨다
아~방 청소 하러 오셨나 보다 싶던 나는 조금 뜬금없이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듯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했다
아직 나갈 준비가 다 되지 못했던 나는
“저기 십 분만 있다 다시 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급 당황한 표정의 아주머니는 한국말 몰라!라고 답했다.
거기에 찐 당황한 나는 얼결에 “텐 미닛 애프터 플리즈 “라고 했고
그래도 모르겠노라는 표정의 아주머니를 보고는 손짓 발짓으로 10분 후에 다시 와 달라고 했다
다행히 바디랭귀지가 통했던지 고개를 끄덕이던 청소 아주머니가 가시고
나는 정말 눈썹이 휘날리게 가방을 챙겨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선글라스만
머리에 꽂은 체 헐래 벌떡 방을 탈출하듯 빠져나갔다
그렇게 얼떨결에 오설록 티 뮤지엄으로 향했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