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Nov 18. 2024

생각의 전환이 필요해

그 덕분에 가 주는 긍정의 에너지


독일은 1년 12달 흐리고 비 오고 날씨가 안 좋은 날이 많다.

그중에서도 4월은 하루에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화무쌍한 날씨로 11월은 줄곧 침침한 회색 하늘에 비 내리는 어두컴컴한 시간으로 유명하다.


둘 중에 더 나쁜 달을 고르기도 힘들게 날씨 안 좋기로 쌍두마차 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벌써 11월 하고도 중순이다.

어제나 그제나 별차이 없는 일상도 다시 주말을 맞이한다.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은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주말이면 남편과 운동 가방을 챙겨 들고 어김없이 헬스장으로 향한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날씨가 좋은 날이면 헬스장 안에 비교적 사람들이 적고

오늘처럼 비 주룩주룩 내리는 날엔 사람들이 많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저기 텅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여름휴가철 때처럼....


사람들이 평소보다 적다 보니 러닝머신도 골라 잡아 원하는 곳에서 했고

늘 붐비는 E-gym 도 널널 했다.

핸드폰 보며 다리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 언제나 기다리기 일쑤인 허벅지 근육 강화 하는 운동 도 기다림 없이 바로 할 수 있었다.


날씨가 안 좋아 늦잠을 자고 아예 점심 먹고 오는 사람들이 오후에 많으려나?.

우쨌거나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며 우리는 텅 빈 헬스장에서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가뿐히 하고자 하는 운동을 모두 끝낸 후에 씻고 휴게실 쪽으로 나오니 아직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머리가 길고 숱이 많아 말리는데 시간이 걸리는 나보다는 툭툭 털면 마르는 짧은 머리의 남편이 늘 먼저 끝나고는 했다.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카페 소파 같은 휴게실 의자에 기대앉아 신문을 읽던가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는 했다


나는 가방을 의자에 올려 두고 남편이 올 때까지 카푸치노 한잔 마시며 기다려야겠다 싶어 회원 카드만 들고 커피 머신 쪽으로 갔다.


헬스장 회원 카드에 미리 일정 금액을 넣어 두면 커피나 또는 자판기 간식 등을

결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회원 카드를 기계 앞쪽에 대고 찍으니 늘 그러하듯 커피를 선택하라는 문구가 떴다.

들고 다니는 컵을 가져다 대고 화면에서 카푸치노를 누르니 2유로 80센트가 카드에서 결제되었다.


윙하는 소리가 나더니 푸치지 직 하는 소리를 내며 컵 안으로 허여멀건  뜨거운 물만

내려오다 멈추고는 커피머신 화면에 우유가 비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런 된장! 또야? 하며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몽글몽글한 카푸치노를 기다리다 커피머신이 뜨거운 물 주기를 물총 쏘듯 몇 번 내뱉고 우유가 떨어졌다는 메시지와 함께 기계가 멈춰 서는 걸 종종 본다.


그게 하필이면 내가 커피를 마시려고 할 때마다 자주 그런다.

벌써 몇 번째 인지 모른다.

사실 헬스장 커피는 원두커피 이기는 하지만 커피 맛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거기다 아래층 빵집 커피 보다 조금 비싸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하고 나서 카페 분위기에서 바로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가끔 마신다


이렇게 결제는 됐는데 번번이 우유가 없어서 사람을 부르러 가야 하고 우유 넣고 기계가 한 바퀴 돌아 시스템이 가동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번거롭고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왜 매번 나야!라고 구시렁거리며 앞쪽에 트레이너가 있나 두리번거렸다.

트레이너 들은 출입구 쪽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체크하는 일도 하지만

새로운 회원이 오면 헬스장 안을 돌아다니며 안내도 하고 퍼스널 트레이닝이 있거나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여기저기 오가기 때문에 서너 명 정도의 트레이너가 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커피머신에 우유를 넣고 정상 가동 시킬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운이 좋게도 2층에서 트레이너 한 명이 내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큰 키에 금발 머리를 높이 올려 묶고 온몸에 탄탄한 근육을 장착한 건강미 넘치는 트레이너!


아 ~레일라 다!

그녀는 내가 처음 헬스장에 등록을 하고 처음 인바디체크를 할 때 해 주었던 트레이너다

레일라에게 바로 가서 웃으며 부탁을 했다.

"안녕 레일라 도움이 필요해~ 카푸치노 눌렀는데 또 우유가 없어!"

지난번에도 그녀가 몇 번 우유를 채워 넣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 결제는 되었어도 우유가 없어 카푸치노는 나오지 않았고 빈우유통 헹군 뜨거운 물만 쏟아졌으니 그걸 마실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때면 트레이너들 카드로 커피를 다시 결제해 준다.

복스러운 웃음을 짓던 레일라는 빈우유통을 접어 버리고 우유를 들고 와서 통에 넣고 커피머신에 연결을 해준후에 트레이너 카드로 다시 결제를 해 주었다.


나는 들고 있던 컵을 물에 한번 헹군 후에 다시 커피 머신 위에 컵을 얹었다

그사이 손 빠른 레일라가 다시 카푸치노를 준비해 주었고 나는 웃으며

"고마워 레일라 근데 왜 매번 내 차례만 되면 우유가 똑 떨어지나 몰라?"

라며 투정반 너스레반 섞어 말했다.


헬스장에서 커피를 마실 때 진짜로 세 번 중에 두 번이 이랬으니 말 다했지 뭔가.

나중엔 커피 머신이 사람을 알아 보나? 짜식이!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 이었으니 말이다.


나의 왜 매번 나만 타령에 레일라는 그녀의 인상만큼이나 깔끔하고 쌈빡한 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그 덕분에 너는 매번 새로운 우유를 처음으로 마시는 사람이잖아!"

나는 "맞네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 했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의 한 끗 차이 이건만 평소 불평불만이 조금? 많은 편인

나는 그 순간 "아이씨 왜 매번 나만 이렇게 번거롭게!"라는 단점부터 떠올렸다면  

밝고 긍정적인 레일라는 "그 덕분에 매번 새우유 까서 젤일 처음 먹는 사람이니 좋잖아!:" 란 장점을 먼저 생각한 거다.


상황은 바뀐게 없는데 순간 다른 느낌이 들었다

생각의 전환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어 박수가 절로 나왔다.

레일라 덕분에 만난 뽀얗고 몽글몽글한 주말 오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