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냉방완비
새벽녘이었다. 자다가 비몽사몽 간에 오른쪽 옆으로 돌아 누웠다.
늘 그렇듯 멀쩡히 똑바로 자다가도 어느새 한쪽 옆으로 돌아 눕는다.
그것은 나의 오래된 나쁜 잠버릇 중에 하나다.
이대로 아침까지 자다가는 체중에 눌린 오른쪽 어깨 또는 팔이 저려올 것이고
그도 아니면 옆구리가 결려 올지도 모른다.
아직 잠에 취해 있지만 이불 밖으로 왼팔을 빼내어 애써 자세를 고쳐 잡는다.
그때였다.
얼떨결에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나온 팔에 냉기가 서렸다.
이런.. 그제야 집에 더 이상 난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이일의 시작은 이러했다. 얼마 전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 중부에는 밤사이
새하얀 첫눈이 내렸다.
딸내미가 집으로 오던 주말이었다.
그 주말에 아이들 방이 있는 3층에 난방이 되지 않는 거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독일은 도심에서도 100년 넘은 집들을 자주 만난다)
해마다 이것저것 고쳐야 할 것들이 앞을 다투어 나온다.
그중에 하나가 보일러 관련 된 것들이라 그저 또야? 했지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단지 타이밍이 참으로 거시기했다.
날도 추운데 하필이면 딸내미 생일날 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침대에 한국에서 들고 온 전기장판 깔아주고 전기난로 틀어 주고 해도
문만 열면 썰렁한 딸내미 방에서 자라고 하려니 영 마음이 쓰였다.
안 그래도 걱정이 취미이고 후회가 만렙인 나는…그냥 베를린에서 생일 지내라고 할걸,,… 미리 점검을 해 둘걸...
상황을 바꿀 수 없음에도 때늦은 이럴걸 저럴걸 메들리를 쉴 새 없이 읊조렸다.
그러나 그때 까지도 우리는 그게 문제의 시작일줄 몰랐다.
늘 그렇듯 보일러 관련된 문제들은 우리의 친절한 친구 헬빙 아저씨가
뚝딱 하고 해결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집 지하실을 다녀온 아저씨는 대략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어쩌지 문제가 큰데요! “
평소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아저씨는
"벌써 그 걱정 미리 할 필요 없어 그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아!"
라는 말을 자주 해 왔다. 그런 헬빙이 문제가 크다고 했다. 이거 뭔 일인가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제 멈춰도 이상할 게 없다던 쓸데까지 쓰다 버리는 게 상책 이라던
우리 집의 50년 된 가스보일러가 급기야 말썽 인가?
당장, 가스보일러 문제라면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공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든 빠르게 되는 게 없는 동네에서 그것도 엄동설한 12월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보일러 공사에 들어간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온갖 걱정거리들을 갈무리하며 헬빙 아저씨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물었다.
다행히 아직? 가스보일러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보일러에서 데워진 난방수가 순환하는 배관에 문제가 생겼다.
집안 전체적으로 골고루 따뜻한 온도를 퍼다 나를 배관이 녹슬고 구멍이 나서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그지경이 될 때까지 알 수 없었던 것은 가을 까지는 난방을 하지 않아 큰 문제가 없었을 테고 조금씩 파생되던 문제들이 배관을 감싸고 있던 하얀색의 단열재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러다가 헬빙 아저씨가 난방수를 그득 채워 넣으니 본격적으로 문제를 드러 내기 시작한 거다.
가스보일러는 이상 없이 돌아가고 있고 난방수는 가득 있는데 3층까지 난방이 되지 않는 게 이상 하다 싶었던 헬빙 아저씨는 단열재를 벗겨 보았고 그 안에는 배관들이 그 모양이 되어 있었던 거다.
한마디로 난방의 핵심 중에 하나인 온수가 오가는 배관들을
몽땅 갈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그런데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고 있는 헬빙 아저씨는 자신은 그 공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우선은 거기에 맞는 자재를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오래된 가스보일러만큼이나 연식이 된 배관들은
우리로 하자면 육이오 때나 사용하던 것쯤 되겠다.
요즘은 이런 재료들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고 거기에 맞는 자재들은 더 이상 생산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공사가 커서 혼자 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지금 해 줄 수 있는 일은 지하실에 물난리가 나지 않게
더 이상 배관에서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것과
화재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보일러를 잠가 주는 것이라 했다.
이 겨울에 난방을 끈다니?
놀란 나는 토끼눈이 되어 다급한 목소리로 "그러면 우리 냉방에 있어야 해요?"라는 말과
"뜨거운 물은요?"라고 연거푸 되물었다.
자기 잘못도 아니건만 한가득 미안한 얼굴이 된 헬빙 아저씨는
"내가 바로 그 말을 하려고 했어요 당분간 난방도 온수도 사용할 수 없어요"
라고 했다.
이런 쓋뜨
한겨울에 우리더러 보일러 끄고 냉방완비로 살라는 말인가?
거기다 뜨거운 물도 없이? 그럼 씻는 건?
맘속 가득 “나 다시 돌아 갈래 ~~~! ”소리가 메아리 치고 있었다.
다음 편 계속....
to 애정하는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울 독자님들 다음 편 계속의 명인 김자까
인사드립니다 ㅎㅎㅎ
오랜만이지요? 그동안 병원 일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세금 결산에다가 독감 예방 접종, RSV 예방 접종으로
양로원으로 집으로 왕진도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냈지요
그러다 보니 벌써 12월이 되었고 크리스마스가 코앞이지
뭡니까!
거기다 보일러 문제가 까지 터져서 심심할 새가 없습니다
집에서도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하는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앞으로도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두세 편
더 나오지 싶습니다.
추운 겨울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바라며
다음 편들고 빨리 오겠습니다
독일에서 김중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