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엎친데 덮치다. 내 팔꿈치이이이이이!!!
강도 당한 정신적 충격이 가실 무렵, 콜롬비아에 있는 롱보더들과 보드를 타기로 했다. 사람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해야한다는 말대로. 콜롬비아는 특히나 다운힐 쪽으로 유명하기에, 내가 평소에 하지 않는 장르인 프리라이딩과 다운힐을 하는 스팟에서 모였다.
경사가 있는 내리막. 세계여행하면서 혹시나 싶어서 챙겼던 보호대를 드디어 써볼 기회였다. 맨 꼭대기에서 내려오지는 않고, 탈 만하다고 생각한 중간에서부터 몸을 풀고, 조심히 타기 시작했다. 다운힐 프리라이딩을 하는 스팟에서, 프리스타일 댄싱을 하면서 내려오니 로컬 보더들이 신기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사실은 내가 프리라이딩 슬라이드류를 거의 못하기에 어쩔수없이 평지기술들을 했다. 로컬보더들과 친해지고, 간만에 보드를 타니 신났다.
너무 신났던 게 문제였을까?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하는 내리막인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레이디 킬러라는 슬라이드 기술을 하던 중 몸과 팔이 꼬인 채로 허공을 날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자세가 이상한 채로 넘어져서 팔꿈치에 충격이 더 심하게 왔다.
평소에도 보드 타다가 많이 넘어졌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큰일이다 싶었다. 스팟에 있던 보더들이 보호대 벗기는 것을 도와주고, 아이싱을 주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서서히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팔을 굽히기가 힘들었다. 강도를 당한지 며칠이 됐다고, 보드 탄 이후로 가장 크게 다치기까지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꼭 안좋은 일이 생기면, 이어서 안좋은 일이 생긴다. 이것은 여행을 하는 중에도 불변하는 진리인가보다.
집에서 카롤리나가 나를 걱정스레 보더니, 아파도 움직일 수 있으면 부러진 건 아닐거라고 냉찜질할 거리들을 주었다. 팔도 고정시켜줬다. 며칠간 냉찜질을 했지만, 생각처럼 낫지를 않았다. 해외는 병원비도 비싸고, 특히 콜롬비아는 원래 예정된 나라가 아니었기에, 여행자 보험이 적용되지도 않았다. 며칠 참고서 페루에 다시 갔다.
페루 리마에서 친구 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밥이 병원 멀지 않다고 걱정말라면서 날 데리고 갔다. 리마에서 처음 갔던 병원은 내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병원은 2층에 있고,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접수를 받는다. 허름했고, 무너질듯한 건물을 보고선 여기는 아니다 싶었다. 밥에게 다시 말해서, 큰 병원으로 데려달라고 했다. 대중교통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큰 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까지 찍어봤는데, 의사는 크게 다친 게 아니라고 했다. 4~5일 약 먹으면서 쉬면 괜찮아질 거라 했다.
핵.돌.팔.이.였.다.
4~5일은 개뿔. 몇 주간이나 불편한 팔꿈치를 참아가며, 미국여행, 홍콩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처음처럼 아프진않지만, 걱정이 되어 병원에 찾아갔다. MRI 찍기 전 X-ray 만 찍어봤는데도 내 팔꿈치는 부.러.진. 거.였.다. 어쩐지 아프더라니, 1주면 낫는다는 팔이 한 달이 훌쩍 넘어도 낫지 않더라니, 페루 의료는 믿어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지금껏 수도 없이 겪었지만, 대체 왜 안좋은 일은 겹쳐오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겹경사보다는, 첩첩산중이, 설상가상이 더 많이 찾아온다. 아직 인생을 알지 못하는 나이이지만, 세상이 내게 배우게 강요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세상은 내게 작은 행복에 감탄하고, 기뻐하고, 크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것를 통해 잦고 큰 불행과 고통을 견뎌내게 한다는 것이다. 치사하고 짜증나지만, 다양한 아픔이 내게 찾아오고, 그건 때때로 겹쳐서 찾아온다. 그 이유는 우리는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겨야하고, 잘될 때일수록 더 겸손해지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