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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접시 Aug 15. 2022

금연 이야기


17. 09. 18.


동아 아파트 101동 702호, 우리집이다. 공동 현관에서 출발해 오른쪽으로 1분쯤 걸으면 아파트 쪽문이 나온다.


쪽문 바깥쪽엔 이차선 도로를 경계로 아파트만큼이나 오래된 상가가 있다. 그 상가의 1층 가장 구석진 자리에, 카레짱이라는 조그만 일식 카레집이 영업 중이다. 생긴 지는 얼마 안 됐다. 이제 1년쯤 됐을까.


카레짱은 박보영을 닮은 누나가 친오빠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나는 카레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자주 카레짱에 간다. 누나를 짱 좋아하기 때문이다. 카레든 짜장이든 알 게 뭐람.


누나는 언젠가부터 주문한 음식을 갖다주곤 그대로 내 앞에 앉는다. 그리곤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한다. 그럼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 카레우동을 먹으며 누나와 나홀로 두근두근한 대화를 나눈다. 처음 누나가 말을 걸어왔을 때는 혹시 누나도 나를? 이란 생각도 있었지만, 누나는 그냥 심심한 것 같다. 이 시간엔 손님도 거의 없고, 누나 말을 빌리자면 한가한 휴학생만큼 좋은 대화 상대도 없다니까. 어쨌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식당 바깥엔 낮은 울타리가 쳐진 조그만 테라스가 붙어 있다. 예전엔 야외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지금은 누나가 키우는 개가 테라스를 차지하고 있다. 이름은 살구다. 덩치는 꽤 크지만 순하고 동글동글 귀엽게 생겼다. 살구는 긴 목줄을 차고 뒷마당과 테라스를 오가며 놀다가, 손님이나 아파트 주민이 지나가면 울타리 안쪽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댄다.


나도 개를 키운다. 이름은 시루. 작고 하얗다. 시루를 테라스 안쪽으로 넣어주면 살구랑 잘 논다. 애견카페에서는 못 어울리고 내 옆에만 있더니, 동그란 살구는 성격도 동글동글한 모양이다.


식사를 마친 나는 시루와 살구를 데리고 짧은 산책을 간다. 쪽문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놀이터로 쭉 이어지는 보도블록 길이 있다. 그 길을 넓은 풀밭과 나무들이 감싸고 있는데, 그곳이 산책 코스다. 시루와 살구는 의문의 냄새를 쫓아 풀밭을 헤집고 다닌다. 나는 그런 개들을 따라 노래를 흥얼대며 천천히 거닌다. 그러다 산책 시간이 끝나면 풀밭 옆쪽에 난 샛길로 녀석들을 이끈다.


시루는 아직도 산책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매번 샛길 초입에 있는 나무를 물고 완강히 버틴다. 정말이지 제 발로 샛길에 들어서준 적이 없다. 이 길이 집에 가는 길이라는 걸 알긴 아나 보다. 나는 그 모습이 좀 귀여워서 산책이 끝나면 일부러 항상 샛길을 통해 집에 간다. 우리집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니까. 식당에 살구를 데려다놓고는 시루와 나도 집으로 향한다.


*


하늘이 맑은 수요일, 늦은 점심쯤이었다. 나는 놀이터로 가는 길 초입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산책을 나와 신난 시루는 주변에 마킹을 해대느라 분주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역시 휴학하고 집에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 쪽에서 남학생 세 명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학생들 중 한 명은 덩치가 굉장히 컸다. 또 한 명은 멀리서 봐도 잘생겼는데, 앞장서 걷는 걸 보니 무리의 리더인 듯했다. 나머지 한 명은 핸드폰 게임을 하는 중인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셋 다 교복 바지를 쫙 줄여 입은 게 어째 좀 불량해 보였다. 하지만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선 안 될 일이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학생들을 멍하니 응시하며 담배를 피우던 중,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학생들은 나를 잠시 보더니 지들끼리 뭔가 쑥덕대고는 다시 보도블록을 따라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뭐지? 싶으면서도 그냥 그렇게 지나쳐 쪽문 쪽으로 빠지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어랍쇼, 녀석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엄습해오는 불안감과 함께, 리더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강아지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강아지였군. 괜히 쫄았다. 아, 예. 그러세요. 내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얘 이름이 뭐예요? 리더가 물었다. 말하는 걸 보니 뭐 나쁜 친구들은 아닌 것 같았다. 시루예요. 나는 편견에 가득 차 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깟 바지통이 뭐라고. 통 정도야 나도 줄이고 다녔다. 저 정도는 아니었지만.


쪼그려 앉은 리더가 시루에게 손을 뻗었다. 시루는 다가온 손을 몇 번 킁킁대더니 쌩 피해버렸다. 아.. 리더가 아쉬워했다. 쪼끄만 강아지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왠지 귀엽게 보였다. 리더는 시루를 조금 더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예의 친절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형, 담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아뿔싸.


나는 이제부터 편견을 지혜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 학생 아니에요? 내가 황당해서 물었다. 맞아요. 리더가 뭐가 문제냐는 듯 대답했다. 그럼 안 되죠. 나는 단호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리곤 상대하기 싫다는 표시로 그들을 등지고 앉았다. 아 씨발. 리더 뒤편에 서 있던 덩치가 작게, 하지만 다 들리게 읊조렸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저놈과 싸우면 무조건 내가 졌다. 그 옆에 있는 겜보이 정도는 이길지도 몰랐다.


녀석들은 무슨 꿍꿍이인지 내 맞은편 벤치로 가 앉았다. 덩치가 계속 날 야려댔지만, 나는 놈의 시선을 무시한 채 보란듯이 담배를 피웠다. 여기는 아파트 흡연 구역이고 녀석들은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윤리적으로 꿇릴 게 없었다. 맞은편 벤치에 앉아 카톡을 하고 있던 리더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었다. 왜 웃고 난리야? 역시 속으로만 생각했다.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놓인 업소용 참치 깡통에 꽁초를 버렸다. 이 새끼들 설마 따라오진 않겠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내 속은 불안감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얼마쯤 걸어가다 시루를 들고 집으로 달릴 작정이었다. 산책줄을 당기며 말했다. 시루야 가자. 하지만 집 방향으로 이끄는 걸 알아챈 시루는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시루는 이럴 때만 귀신같이 똑똑해지곤 했다.


갑자기 리더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흠칫 놀랐다. 리더는 내 뒤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얼떨결에 나도 뒤를 돌아봤더니.. 녀석들과 같은 교복의 남학생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바지통이 소멸 직전인 게 딱 봐도 놈들과 한패였다. 좆됐다. 순간 굳어버린 손에서 산책줄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산책에 미친 시루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풀밭으로 튀어나갔다.


억 시루! 다급히 시루를 쫓아가려는 나를 덩치가 막아섰다. 리더가 말했다. 형 어디 가요? 내가 대답했다. 예..? 아니 개가.. 덩치가 내 어깨를 퍽 밀쳤다. 읍엑. 나는 민망한 소리를 내며 벤치에 착석당했다. 어느새 새로운 무리가 합류했고, 이제 여섯 명이 된 녀석들이 반원 대형으로 나를 둘러쌌다. 따뜻한 햇살이 사라지고 그들의 그림자가 내 얼굴을 덮었다. 시루는 위기에 빠진 친구를 나 몰라라 한 채 풀밭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얘야? 합류한 녀석들 중 하나가 리더에게 물었다. 풀어헤친 와이셔츠 안쪽에 큼직한 슈프림 로고가 보였다. 보면 모르냐? 리더가 대답했다. 나를 둘러싼 녀석들이 쑥덕대는 걸 듣고 있자니 영화에서 본 학교 폭력 장면들이 스쳤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뺨도 맞고.. 막 밟히고..


문득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무서운 형 누나에게 피시방 갈 돈을 죄다 뺏겼던 일이 떠올랐다. 놀랍게도 그 형 누나는, 당시 나랑 사귀던 우리 반 다솜이의 언니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그 형은 초면이었다 쳐도 누나는 나와 안면도 있었다. 다솜이네 집에 놀러갔을 때 누나가 라면도 끓여줬으면서.. 힘 앞에 굴복해 주머니 속 동전들을 죄다 내줬던 그날의 치욕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다솜이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웬 날라리 형이랑 바람이 나버렸다. 내가 러브장도 만들어줬는데.. 나쁜 놈..


맞기도 싫고 그렇다고 녀석들에게 굴복하고 싶지도 않았던 나는, 어떻게든 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쪽으로는 승산이 없었지만 뒤쪽은 뚫려 있었다. 그래, 순간적으로 벤치 뒤로 빠져나가서 뛰자.. 달리기라면 자신 있으니까.. 시루는 내가 뛰면 신나서 쫓아올 거고.. 사람 있는 데까지만 가면.. 나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마지막 숨을 고르고선, 놈들의 뒤편을 응시하며 외쳤다.


아저씨!


녀석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나는 단숨에 일어나 몸을 돌려.. 


..내지 못했다. 반쯤 일어선 순간 덩치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걸 안 돌아보네.. 의외로 침착한 녀석이었다. 놈은 그대로 내 어깨를 꾹 눌러 나를 다시 자리에 착석시켰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녀석들이 벙찐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별안간 리더가 빵터졌고 그제서야 허락이라도 받은 듯 모두가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왜 이러세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러세요오오? 한참 웃던 리더가 내 말을 따라 했다. 녀석들이 다시 킥킥댔다. 아 웃겼다 웃겼다~ 리더가 내게 박수를 쳐줬다. 어찌나 신나게 쳐주던지 순간 좀 뿌듯해질 정도였다. 형 ㅋㅋ, 웃겼으니까 한번 봐줄게요. 조용히 담배 주고 가세요. 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는 왜 친절할수록 무서울까.


나는 반항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이게 최선이다.. 교육부 장관도 이 상황에선 담배고 뭐고 바로 내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의 담뱃갑을 잡았다. 그때였다. ㅋㅋ 븅신새끼. 여전히 핸드폰만 보고 있던 겜보이가 읊조렸다. 뭐?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나이의 마지막 자존심이 불타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니들 고등학생이잖아! 교복 보니까 이리고네! 나도 이리고 나왔거든? 학교에 싹 다 말한다 진짜!


실실대던 리더의 표정이 빠르게 일그러졌다. 아.. 하지 말걸.. 나도 빠르게 후회했다. 웃음기를 싹 지운 리더가 내게 다가왔다. 야, 내가 웃어주니까 씨발 장난 같지? 녀석이 내 가슴팍을 밀쳤다. 어? 장난 같냐고! 나는 녀석의 밀침에 다시 벤치에 착석당했다. 벌써 세 번째 착석이였다.


멍!


드디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시루가 달려와 짖었다. 시루는 나름대로 꽤 진지한 듯했지만, 녀석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엔 너무 작고 귀여웠다.


리더가 가소롭다는 듯 시루를 쳐다봤다. 그리곤 슈프림에게 명했다. 야, 씨발 저 개 잡아. 그 말을 들은 내가 벌떡 일어났다. 개를 왜 잡아! 그러자 곧바로 덩치와 겜보이가 내 양팔을 붙들었다. 리더가 붙잡혀 있는 내게 말했다. 주인이 잘못했으면 개도 같이 벌을 받아야죠. 리더의 명을 받든 슈프림이 우쮸쮸 소리를 내며 시루에게 다가갔다. 멍! 멍! 시루는 물러서지 않고 짖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풀려나려 안간힘을 써대며 말했다. 아니 줄게요! 담배 준다고! 씨발 우리 개 만지지 마! 슈프림이 시루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갔다. 다급해진 나는 시루에게 외쳤다.


시루야 집에 가!


시루가 나를 보며 갸웃했다. 이제 슈프림은 산책줄을 낚아채기 직전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외쳤다.


집! 집! 산책 끝! 가라고 인마!


간발의 차로 시루가 몸을 돌려 풀밭으로 튀었다. 그리곤 잠깐 망설이더니 풀밭 옆쪽의 샛길을 향해 달렸다. 평소 그렇게 싫어하던 길에 제 발로 들어선 걸 보면 집에 가라는 말을 알아듣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마냥 확신할 순 없는, 그야말로 기도의 영역이었다.


멍! 샛길 너머에서 시루가 한 차례 짖었다. 타다다닥. 시루의 작은 발톱이 보도블록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시루가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덩치와 겜보이에게 붙들려 있었다. 리더가 개를 놓친 슈프림을 한참 갈궈대더니 내게 다가와 말했다. 형, 내가 진짜 기회 줬잖아요. 그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씨발 줬냐고 안 줬냐고! 리더가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나도 참지 않았다. 뭐 씨발새끼야! 너 나한테 담배 맡겨놨냐? 너 씨발 집 앞에 우리 개 없으면 가만 안 둬 씨발!


얼굴이 벌게진 리더가 슈프림에게 말했다. 야, 저 새끼 안경 벗겨. 당황한 슈프림이 리더를 말렸다. 야.. 너 진짜 때리게? 그러다 우리 좆돼.. 리더가 말했다. 아 닥치고 안경이나 벗기라고 씨발! 리더의 강압에 꼬리를 내린 슈프림이 머리를 긁적대며 다가왔다. 그리곤 안경을 벗겨 내 손에 쥐어줬다.


내 생에 고삐리들에게 붙잡혀 처맞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분하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찔끔 흘렀다. 리더가 교복 소매를 걷었다. 그리곤 씨익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씨발새끼..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놈의 주먹을 기다리던.. 그때였다.


월! 월!


갑자기 사나운 짖음이 들리고,


으악 시발 뭐야!


다급한 발소리가 이어졌다.


붙들려 있던 팔이 풀렸다. 응?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난시와 눈물이 겹쳐 내 앞의 어떤 형체들만이 흐릿하게 보였다.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안경을 썼다. 도망갔던 시루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엔, 커다란 개가 끊어진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으르렁대고 있었다.


어.. 살구..?


뒷걸음질치는 녀석들 사이로 살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매서운 눈을 한 살구가 미친개처럼 짖어대더니,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뛰어다니며 겁에 질린 녀석들을 몰아댔다. 당황해 얼어붙어 있던 내 앞으로 리더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뒹굴었다. 혼비백산한 녀석들이 정신없이 놀이터 쪽으로 달아났다.


놈들을 얼마쯤 쫓아가는가 싶던 살구는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자빠져 있는 리더에게 접근해왔다. 그러다 약간 거리를 두고 멈춰 서서는, 나를 보며 표정을 푼 채 헥헥대다가, 다시 매서운 눈이 되어 리더를 향해 으르렁댔다. 발라당 넘어져 있던 리더가 내 다리를 붙잡았다. 형형형형! 나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 씨발새끼야. 담배 줘? 리더가 겁에 질려 대답했다. 아뇨아뇨아뇨! 개 좀! 형 제발요! 내가 물었다. 내가 왜? 살구가 한 발 한 발 접근해왔다. 형! 진짜 잘못했어요! 형 제발!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살구를 멈춰 세웠다. 살구는 제자리에서 계속 리더를 주시했다. 리더의 얼굴을 보니 놈은 거의 울고 있었다. 녀석의 교복 마이에 붙어 있는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김성진? 순간 머릿속에서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얼굴이 스쳤다. 나는 리더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봤다. 야 너 어디 사냐? 내가 물었다. (훌쩍) 어.. (훌쩍) 저 푸른솔 아파트.. 리더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나는 제발 맞아라, 라고 생각하며 니네 형 아직도 무파마만 먹냐? 라고 물었다. 예..? (훌쩍) 그.. 런데요.. 리더가 어리둥절 대답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씨발.. 너 성모 동생이구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훌쩍) 어.. 네.. 근데 저희 형은.. (훌쩍) 어떻게.. 녀석이 당황스러운 듯 되물었다. 참나.. 니네 형한테 물어보든가. 아니다, 물어보면 너 맞아 죽겠구나.


나는 흡연구역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저기 씨씨티비 있는 거 보이지? 니네 허튼짓 하지 마. 영상 따놨다가 바로 신고해버릴라니까. 리더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대답 안 해? 내가 말했다. 네..! 리더가 대답했다.


알았어, 가 이제. 내 말에 리더가 살구를 주시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리더가 말했다. 형.. 개 안 따라오게 잘 좀.. 내가 짜증을 냈다. 아, 알았으니까 빨리 가라고. 녀석은 살구를 보며 한참 뒷걸음질치다가, 살구가 매섭게 짖자 그대로 몸을 돌려 놀이터로 달아났다. 먼저 도망가 있던 녀석들이 놀이터에 모여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리더가 합류하자 놈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으어..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벤치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마를 짚으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시루가 꼬리를 흔들며 벤치로 다가왔다. 나는 시루를 안아 올려 무릎 위에 놓곤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찰싹) 야, 너 집에 가 있으라고 했잖아! (찰싹) 혼자 길 건너다 큰일 나면 어쩔 뻔했냐고! 그러다 미안한 마음에 배를 긁어줬다. 니가 살구 불러왔어? 너 천재 개야? 너 내 말 알아듣지? 꼬리 멈춰봐. 시루가 꼬리를 더 세차게 흔들었다.


눈빛이 매서웠던 살구는 어느새 순한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까지 각이 잡혀 있던 몸도 다시 동글동글해졌다. 야.. 너 되게 무서운 개였구나.. 근데 이건 어떻게 끊었냐.. 끊긴 목줄을 살피다 보니 살구의 목에 상처가 보였다. 헐.. 너 목줄 끊느라 이렇게 된 거야? 살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헥헥댔다. 나는 살구를 한참 동안 쓰다듬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쏘세지들을 전부 꺼내 시루와 살구에게 나눠줬다. 그리곤 구석으로 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갑자기 눈앞이 뿌예졌다. 하.. 저 씨씨티비 되나 모르겠네.. 눈물과 연기를 내뿜으며 중얼댔다. 담배를 다 피운 나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리곤 남아 있던 담배들을 죄다 버렸다.


시루 살구 이리 와. 나는 시루의 산책줄을 손목에 끼우고 살구를 들어 올려 안았다. 살구는 굉장히 무거웠다. 살구야 너 오늘 누나한테 엄청 혼나겠다. 어떡하냐. 살구가 안긴 채로 내 얼굴을 핥아댔다. 어어 그래, 내가 말은 잘해줄게. 우리는 다 같이 카레짱으로 향했다.


나는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


지어낸 이야기다. 이번엔 진짜 끊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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