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앞접시 Aug 20. 2022

편의점 백야


16. 07. 12.


심야의 편의점을 지킨 지도 벌써 몇 달 됐다. 시급 6500원, 밤 10시 출근 아침 8시 퇴근이다.


출근하고 2-3시간쯤 지나면 편의점 앞으로 거대한 탑차가 도착한다. 기사님과 함께 물류 박스들을 내린다. 매장이 커서 물류가 엄청 들어온다. 정말 허리 나갈 것 같다. 탑차가 떠나고 매장에 쌓인 물류 박스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과연 이게 나 혼자 정리할 수 있는 양인가 싶다. 근데 하다 보면 또 다 해낸다. 곱씹어보면 무서운 일이다.


새벽의 끼니는 폐기 식품이나 식대로 해결한다. 식대가 없는 곳도 많다던데 운이 좋은 편이다. 폐기로 도시락 정도가 나오면 그날의 식대로는 집에 가는 길에 먹을 간단한 음식과 하루야채 음료를 산다. 그거 하나면 야채 안 먹어도 된다니까. 건강하고 싶긴 한데 야채가 싫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폐기로 나온 도시락이나 김밥 같은 걸 한두 개 챙겨 집으로 향한다. 그것들로 점심과 저녁을 때운다. 집에 도착해 냉장고에 음식들을 넣어놓곤 서둘러 1교시를 들으러 떠난다. 친구가 종종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야간 근무 중에는 왠지 눈이 아리다. 딱히 피곤하진 않아도 그렇다. 눈이 감긴다기보다는 눈을 감고 싶어진다. 그래서 눈을 꼭 감아보면 눈알이 따끔따끔 뜨겁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눈앞은 여전히 환하다.


편의점 천장에 달린 형광등을 세어보니 총 72개였다. 형광등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끌 일도 없다.


매장 내 스피커에선 흡사 멜론 top100, 그리고 중간중간 팝카드의 혜택을 알리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각종 냉각 장치의 모터 소리도 우우웅 울린다. 그러다 그 두 소리가 동시에 잠시 멎을 때면, 가려져 있던 형광등 소리가 들린다. 지이이잉. 이 소리야 말로 진정 쉼 없다.


꺼져본 적 없는 72개의 형광등이 이곳의 모든 것들에 불면을 명한다. 깨어 있으라고. 잘 보이게 서 있으라고. 서로의 그림자에 묻히지 말라고. 카운터의 하리보가, 신선식품 매대의 삼각김밥이, 냉장실의 데자와가, 불면을 향해 눈을 부릅뜬다.


딸랑, 출입문에 달린 종이 울린다. 72개의 형광등이 종소리를 듣곤 더 강경하게 내리쬔다. 하리보에겐 더 쫄깃해 보이라고, 삼각김밥에겐 더 든든해 보이라고, 데자와에겐 더 오묘해 보이라고, 그렇게 다그쳐댄다.


핏발 선 눈의 손님이 잔뜩 충혈된 도시락을 들고 계산대로 다가온다. 아린 눈의 알바가 손님의 카드를 받아 리더기에 긁는다. 결제 완료를 알리는 효과음과 함께, 마침내 도시락의 영면이 허가된다. 상주가 렌지터에서 도시락을 데워 테이블에 앉는다. 식(食)장이랄까. 호상이다.


치사량의 불면을 들이킨 삼각김밥이 신선식품 매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나는 유통 기한을 넘긴 삼각김밥을 폐기로 찍곤 전자렌지에 데운다.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된 생선이 있다고 했다. 그 생선을 먹으면 그게 몸에 쌓인다고. 카운터 구석에서 삼각김밥을 오물대며 생각해본다. 이 삼각김밥의 피로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게 될까? 음.. 모르겠다.


카운터에 놓인 작은 거울에 약간 충혈된 내 눈동자가 비친다. 종소리가 울린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건네고 손님을 바라본다. 머릿속에 에쎄 라이트, 라는 생각이 스친다. 손님이 말한다. 에쎄 라이트 하나요. 손님이 나가고, 다시 거울을 본다. 붉어져가는 눈을 부릅뜬 채 홀로 중얼댄다. 이건 편의점 사륜안이라는 거다. 무슨 담배를 말할지 미리 알 수 있지. 그러다 재미없어서 관둔다.


치도리, 를 외치며 쓰레기통으로 달려간다. 일반쓰레기 칸에 처박혀 있는 도시락 용기를 플라스틱 칸으로 옮긴다. 우리나라 문맹률이 1프로도 안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게 걱정이 된다.


편의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바깥의 어둠과 고요함을 마주하니 비로소 한밤중인 게 실감된다. 새삼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뻗는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다. 심야의 사거리엔 종종 차도 다니지 않는다. 편의점 불빛을 등진 채 텅 빈 사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전설일까? 담배 냄새를 빼보려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필터만 남은 꽁초를 챙겨 다시 국지성 백야 속으로 들어선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 72개의 형광등 불빛이 밤새 눈을 찌른다. 눈을 감아봐도 예리하게 밀고 들어와 눈꺼풀이 닫힌 채로도 환하기만 하다. 그러는 본인마저 피곤했는지 음료 매대 쪽 형광등 하나가 멍이라도 든 것처럼 보랏빛이 됐다. 내일 출근하면 새 걸로 갈려 있겠지. 불면해내지 못한 것들은 폐기된다. 그것은 형광등에게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마 나에게도.


여기는 잠들어선 안 될 것들이 모여 있는 곳. 너무 한낮에 나온 산책처럼 눈이 아리다.

작가의 이전글 금연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