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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접시 Oct 30. 2023

난로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부쩍 쌀쌀해졌다. 내가 살고 있는 방은 반지하라 그런지 벌써부터 밤이 되면 발이 좀 시릴 정도가 돼서, 자기 전 한두 시간 동안은 전기난로를 켜놓는다. 세워 놓으면 종아리 높이쯤 오는 작은 난로인데, 작은 거라면 내 방도 못지않게 작아 금방 온기가 퍼진다. 이렇게 난로로 공간을 덥히는 생활은 초등학교 이후로 십몇 년 만인 것 같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땐 겨울이면 교실마다 커다란 등유 난로가 놓여졌다. 매일 아침 기름을 가지러 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각 반의 학생들이 등유가 담긴 하얀 기름통을 창고에서 교실로 날랐다. 난로에 등유를 주입하고 작동시키는 건 담임 선생님이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위험한 일이니까(교실에 등유 난로가 있다는 것부터가 그렇지만). 음.. 그러면 선생님이 오기 전에 교실에 도착한 애들은 각자 자리에서 그냥 오들오들 떨고 있었던 건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난로의 마개를 열고 등유를 채워 넣을 때, 그리고 꺼져 있던 난로가 켜질 때마다 교실에서 주유소 냄새가 맴돌았다. 겨울임에도 자주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야 했다.


교실에서 붉게 타오르던 그 등유 난로를 생각하면, 언제나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린 시절 기억이 많이 없지만, 왠지 그날의 기억만큼은 무척 선명하게 불러낼 수 있다.


당시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체육 교사였다. 그 선생님은 뭐랄까, 아무나 붙잡고 이분이 무슨 교사일 것 같나요? 라고 물으면 모두가 체육? 하고 답할 것만 같은 분이었다. 덩치가 크고 츄리닝이 잘 어울리며 뭔가 체육 선생님다운 거대한 검은색 픽업트럭을 끌고 다녔다. 무섭기도 했지만 애들을 좋아하고 장난도 많이 쳐서, 담임이 배정된 날 우리 반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성함은 김성곤, 이었는데, 그 강인한 이미지 때문에 우리끼리는 메탈(metal)곤, 이나 탈곤이형, 정도로 불렀다. 남자애들에게 멸칭이 아닌 형, 이 들어간 별명을 얻었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꽤 극찬이었다. 그들은 웬만큼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면 결코 형, 이라고 이름 지어주지 않으니까. 대학생 때 친구들과 한두 번 찾아뵀다. 여전히 멋진 체육 교사셨다.


그날의 운동장은 전날에 내린 함박눈이 쌓여 온통 새하얬다. 그런 날은 보통 체육 시간이라도 운동장까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담임 선생님은 체육 교사로서 겨울에도 춥다고 움츠려 있지만 말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우리 반은 그날 체육 시간에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운동장에 나가 남자애 여자애 할 거 없이 신나게 축구를 했다. 물론 선생님도 같이 뛰었다. 선생님은 옷을 붙잡고 늘어지는 꼬맹이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눈밭을 달렸다. 우리들은 메탈곤의 질주에 튕겨져 나가 눈밭을 구르면서도 깔깔대며 웃었다. 나중엔 골을 넣기보다는 모두가 선생님을 넘어뜨리는 데 필사적이 되었다. 정말 즐거운 축구였다. 


체육 시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우리는 온몸에 붙은 눈을 털어내며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축축해진 장갑 같은 걸 말려보겠다며 하나둘 난로 곁에 모여들었다.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쬐는 동안 미처 털어내지 못한 눈들이 물방울이 되어 옷이나 머리에서 똑똑 떨어졌다. 나는 어쩌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 옆에 자리 잡게 돼서 그 애가 난로 주위를 떠날 때까지 오랫동안 거기 머물러 있었다. 우리 사이로 다른 친구가 끼어들기 애매한 간격을 유지해내면서. 그때의 따뜻한 온기와, 얼어 있다 녹은 손이 간질간질하던 느낌과, 등유 냄새와, 설레던 마음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나는 어쩌다 보니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 옆에 자리 잡게 돼서, 그 사이로 누가 끼어들지 못할 간격을 유지해내며 그 애가 난로 주위를 떠날 때까지 오래오래 거기 머물러 있었다. 그때의 따뜻한 온기와, 얼어 있다 녹은 손이 간질간질하던 느낌과, 등유 냄새와, 설레던 마음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앞서 말한 그 애와 나는 실제로 사귀게 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이 가까워졌을 무렵, 둘 중 누군가가 버디버디 쪽지를 통해 좋아한다고 말했고, 상대 쪽에서도 사실 나도 너 좋아해.. 뭐 이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래버리고 나니 우리 사이는 왠지 잔뜩 애매해져버렸다. 마음을 숨긴 채 짓궂게 걸어대던 장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쉬는 시간마다 옆자리로 옮겨가 연인다운 얘기를 소곤대보자니 친구들이 놀려댈 게 뻔했다. 초등학교 교실이라는 곳은 이성 친구의 이름을 성을 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얼레리꼴레리 난리가 나던 공간이었다. 그 애와 사귀게 됐다는 건 너무 기뻤지만,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우물쭈물 대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뭔가를 감행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 좀 더 자주 눈이 마주치게 된 일, 그리고 집에 돌아와 버디버디 쪽지를 주고받는 일이 그 사귐의 최고치였다. 둘만 있을 기회가 좀 있었다면, 혹은 놀림을 감내해내기로 했다면, 일이 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애와 나는 각각 다른 중학교에 배정됐다. 그리고 곧바로 겨울 방학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그 애와의 사귐은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그냥 흐지부지돼버렸다. 당시엔 그런 바보 같은 내가 참 싫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날, 학원에서 돌아와 버디버디에 접속하니 처음 보는 닉네임으로부터 쪽지가 날아왔다. 그 쪽지엔 니가 정웅비냐?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누구냐고 물었다. 잠시 후 녀석은 답장 대신 대화방에 나를 초대했다. 나는 친구인가 하고 별생각 없이 대화방에 입장했다.


내가 입장하자, 녀석은 다짜고짜 자기가 그 애의 남자친구라고 말했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이며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싶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녀석은 자기가 그 애가 다니는 중학교의 2학년 생이라고 밝혔다. 그 메세지를 읽고 나는 겁을 집어 먹었다. 그 애가 다니는 중학교는 무서운 형들이 우글거린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그 애에게 뭔가 잘못했던 게 있었나 생각해봤다. 뭐라도 있어서 이 형이 날 잡으러 온다면 이거야 큰일이었다. 우리 학교는 신생 학교였고 내겐 도움을 청할 선배도 없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무슨 일이시냐고 여쭸다. 키보드에 얹은 손이 덜덜 떨렸다.


그 형은 내게 초등학교 때 그 애랑 사귀었냐고 물었다. 나는 (애매하긴 했지만) 네, 라고 대답했다. 왠지 죽을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이어서 그 형은 그 애랑 뽀뽀도 했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손은 잡았냐고 물었다. 나는 안 잡았다고. 손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했다고 대답했다. 그 형은 말이 되냐고 구라 치면 뒤진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이라고 믿어달라고 대답했다.


그 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내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공부 열심히 하고 이제 가보라고 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곤 후다닥 대화방을 나왔다. 어느새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당시에 아무것도 못했던 내가 참 고마웠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보면 황당한 일이다. 그 형은 대체 왜 그런 걸 물어봤던 걸까? 내가 손도 잡고 뽀뽀도 했으면 뭘 어쩌려고. 뭐 뽀뽀까지 했단 말이야? 우씨 나는 아직 손밖에 못 잡았는데. 안 되겠어 저 자식을 두들겨 패주고 와야겠어. 뭐 이런 생각이었을까? 음.. 부디 그 애에게 뻥 차였길 바라본다. 혹시 그 애와 둘이서 킥킥대며 벌인 일이라면.. 이건 좀 슬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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