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빗물 고인 웅덩이만 찾아다닌다. 비옷을 입었든 우산을 썼든, 장화를 신었든 운동화를 신었든, 세 살이든 열세 살이든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땡볕 속에서 살갗 타는 일도, 맹추위 속에서 땀범벅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늘 한결같았다. 편견, 아집, 두려움 따윈 남의 일. 재고 따질 줄 모른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밖에 없는 걸까.
억누르고 금지하는 일에 길들여 살아온 나는, 아이로 인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유과 가능성을 자각했다. 그리고 아이를 허용하는 편협한 제 기준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허용의 기준은 나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확장되었으니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만나게 된다. 나의 시선이라면 지나쳤거나 놓쳤을, 경이로운 것들을.
이후로, 아이의 작은 세상을 통해 답을 찾기 시작했다. 반백년 남은 나의 날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