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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Aug 10. 2023

우연

20대에는 여행을 항상 혼자 다녔다. 어디에 갈지, 무엇을 먹을지, 그런 것들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거나 배려할 필요 없이 혼자 생각하고 정하는 게 편했다. 무엇보다도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는 계획을 언제든 쉽게 수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 덕분에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여러 우연한 사건들을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도쿄에서 후지산이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갔을 때의 일이다. 거기에 있던 사람은 나 말고는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들고 있던 일본인 신사 한 명뿐이었다. 그에게 후지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마디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대학생이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는 선뜻 배낭에서 전시회 무료 입장권 한 장을 꺼내어 선물로 건네주며 시간이 되면 가보라고 했다.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렸던 히라야마 이쿠오라는 타계한 작가의 회고전이었다. 작가가 생전에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예술품과 그 풍경을 그린 거대한 그림들이 있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보게 된 전시로는 너무나 완벽했다.


물론 이상하거나 위험한 일도 있었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는 어떤 백인 신사가 먼저 말을 걸어오더니 손을 부여잡으며 명랑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작품들을 해설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미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라인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의 휴대폰 화면 속 친구 목록에 나 같은 젊은 동양계 여성들이 빼곡하게 저장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 삼아 도망갔다.


좋은 사람이든 이상한 사람이든 나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 금세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비행기 옆 자리에 앉은 사람과, 식당이나 잡화점에서 넉살 좋은 주인이나 종업원과, 같은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들과, 어느 때는 짧은 몇 마디, 어느 때는 자정이 넘도록 허물없는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여행지에서의 며칠의 우연이 빚어낸 인연은 10년이 넘는 우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만약 여행과 일상이 엄연히 다르다면, 여행이 일상보다 더 가벼운 찰나의 순간이라면, 가끔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우연한 사건들에 나는 응당 여행이 가져야 할 무게 그 이상의 마음을 싣기도 했고, 마치 도깨비바늘처럼 갈고리가 달린 작고 가벼운 풀씨가 되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성큼 달라붙기도 했다.


2018년 초 부다페스트,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에 조금 뒤 다가올 멋진 야경을 기다리며 혼자 부다 성을 거닐고 있었을 때 누군가 영어로 “실례합니다”라며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피부가 하얗고 까만 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가 서있었다. 그는 내게 대뜸 일본인이냐고 물어보았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기에 이번엔 맞춰보라고 했더니 그는 더 크게 당황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일본어에 관심이 있었던 그리스 여행객이었고, 내 외양을 보고 일본인일 거라 짐작해서 말을 건 것이었다. 나는 능청스럽게도 일본어를 약간 할 줄 아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물론 그가 궁금해했던 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고급 문법이었던 터라, 그가 기대하는 수준의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의 체격이 나와 별반 차이가 없기도 했고, 일본인에게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을 예시로 들며 일본어 문법에 대해 질문하려던 그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 아니면 내가 플라스틱 생수병에 담아서 보리차처럼 남몰래 홀짝홀짝 마시고 버렸던 토카이 와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가만히 서서 계속 그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불현듯 그의 일행이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그에게 일행을 찾으러 가자고 했다. 얼마쯤 걷다 보니, 벤치에 쪼르르 일렬로 앉아 이 상황을 몹시 기이하다는 듯 지켜보고 있는 젊은 백인 남자 세 명이 더 있었다.


나는 그날 그리스 남자 대학생 네 명과 높은 성벽에서 다뉴브 강의 전설적인 야경을 내려다보고, 그들이 묵고 있었던 친척집(그들 중 한 명의 사촌누이가 우리를 맞이했다)에 가서 저녁 식사와 맥주를 얻어먹고, 그것도 모자라서 Peaches and Cream이라는 이름의 클럽까지 따라가서 새벽까지 함께 춤을 추고 놀았다. 나에게 맨 처음 말을 걸었던 그가 친히 나를 숙소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여자 혼자서 처음 만난 남자 네 명을 따라간 일은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짓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만 놓고 보면 그렇다. 후일 그들조차도 내가 선뜻 그들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들인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었다고 말해주었으니까. 나는 죽기 말고 더 했겠냐는 싱거운 대꾸로 응수했지만, 실은 그날 그들을 보건대 걱정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강한 직감이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따라간 것이었다. 물론 내 직감이 틀렸었다면, 이후로 그들을 더 이상 그리워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다음 행선지는 베를린이었다. 나는 며칠 더 부다페스트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이 추천해 주었던 빈에 하루 정도 다녀와보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부다페스트에서도, 빈에서도, 혼자 숙소를 향해 걷는 객지의 거리가 부쩍 무섭게 느껴졌다.


빈에서 깨어난 이튿날 아침, 여행을 떠나오기 직전 한국에서 마쳤던 채용 전제형 인턴십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에 선발되지 못했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여행 이후의 선택지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갑자기 그들을 따라 베를린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물론 이번에는 그냥 조용히 부다페스트로 돌아갔다.


어쩌면 나는 아무 곳으로나 가고 싶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기분은 아직 인생에 정해진 게 없다고 여겨질 때, 또는 정말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 지가 불현듯 모호하고 막연하게 느껴질 때마다 찾아왔다. 그런 시기에 찾아오는 우연과 인연은 단지 잠깐의 여행이 아닌, 어쩌면 인생의 중대한 다음 행로를 손쉽게 결정할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살면서 나는 어디로나 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를 늘 부적처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인생에 정해진 것은 없다고, 언제든지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수 있고 또 관심이 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봐도 괜찮다고 믿음으로써, 스스로 선택의 무게를 덜고 숨구멍을 만드는 일을 반복해 왔던 것이다.


아마도 내게 중요했던 것은 기존의 계획을 따르느냐 아니면 전부 내팽개치고 미지의 모험을 떠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열망하는 것이 무엇이냐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그때 마음이 향하는 대로 나아가는 일. 그것이 과거에 예상하지 못했던 미래라면 흥미로워서, 미래에서 돌이켜 보게 될 과거라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내딛곤 했었다.


그렇게 가끔 예기치 않게 무언가에 끌리는 순간, 얽매이고 싶은 순간들이 나를 계속 삶에 붙잡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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