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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Aug 21. 2023

고양이

본가에서 지내는 동안 길고양이에게 간택당한 사건이 본가에 눌러앉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17년 11월, 이틀 연속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꽤 오랫동안 들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날은 낮에 혼자 집에 있었는데, 뭔가가 발톱으로 현관문을 박박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우리 집은 1층이었다. 들개나 너구리가 돌아다니는 시골이 아니라 도시의 빌라촌이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할 법도 했는데, 친구들과의 채팅에만 정신이 팔려서 수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귀가하며 나를 불렀다. 방금 들어오면서 이웃을 마주쳤는데 우리 집 앞에 고양이가 있었다면서, 우리가 키우는 거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네가 나가서 한 번 둘러보라는 말과 함께. 집 앞에 고양이가 있다고? 의아함과 호기심에 선뜻 밖을 나섰다. 그런데 정말로 현관문을 열자마자 얌전히 앉아있는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안이 벙벙해서 굳어버린 상태로 몇 초쯤 눈을 마주치고 있었을까. 갑자기 고양이가 현관문 열린 틈을 비집고 호로록 집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고양이는 번개처럼 집안을 한 바퀴 질주하더니, 식탁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앞발로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고양이가 집에 들어왔어! 어떡해?” “뭐라고? 어서 내보내!” 어머니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소독제와 걸레를 찾는 동안, 나는 살을 다 발라먹은 치킨 뼈다귀를 꺼내서 엉거주춤 고양이를 집밖으로 유인했다. 치킨의 흔적이라고는 냄새만 남은 앙상한 뼈다귀를 따라 고양이가 슬금슬금 현관문 밖으로 기어 나오는 동안, 위층에서 이웃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참치캔을 들고 내려왔다. 우리 집이 생전 일면식도 없던 고양이를 밖에 내다 버렸다는 오해를 받을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도 처음 보는 고양이라며 해명을 하고, 문밖에 신문지를 펼쳐서 뼈다귀와 참치캔을 올려두고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소란스러운 집안 소독이 끝나고 난 뒤, 밖을 치우려고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참치캔을 들고 내려왔던 이웃이 나 대신 쓰레기를 치우고 돌아가고 있길래 머쓱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찰나를 틈타 문 뒤편에 있던 고양이가 냉큼 다시 집안으로 침투해서는, 어머니가 방금까지 유난스럽게 닦아 놓았던 집안을 다시 무자비하게 질주했다. 어머니는 또 비명을 질렀다. 새로운 뼈다귀로 녀석을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한 손에는 닭뼈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는 야단스러운 생중계를 관람한 친구들로부터 너희 집이 간택당한 거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어디서 그런 말은 들었는지 야생동물이 집에 들어오면 길조라는 소리도 했다. 나 정말 간택당한 건가?


그날 저녁에도 하필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과의 약속이 있었다. 낮에 있었던 소동을 이야기했더니 그 고양이는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거라는 무서운 예언을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새끼를 낳을 안전한 곳을 찾으러 온 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에 덜컥 동정심이 생겼다. 정말 새끼를 낳을 곳이 없어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 거면 어떡하지?


혼란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 왠지 쫓겨난 어미 고양이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현관문을 쿵 닫자마자 문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몰래 뒤따라 들어오려다가 실패한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택배 상자를 꺼내어 급한 대로 고양이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낡은 옷 한 벌도 상자 바닥에 깔았다. 그러는 동안 고양이는 울음을 멈추고 사라졌다. 조용해진 건물 입구 안쪽에 상자를 두었다.


그날은 정말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일어나 집밖을 살며시 내다보았다. 그 고양이가 상자 안에서 애처롭게 자고 있었다. 어머니와 둘이 라면을 끓여 먹으며 안쓰러우니 그냥 우리가 키우자고 했다. 출장 중이었던 아버지 의사는 묻지도 않고 그렇게 얼렁뚱땅 결정해 버린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같이 동물병원에 데려가주겠다며 아침에 이동장을 들고 오기로 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문을 열고 상자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여전히 그 속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가 나를 보고는 폴짝 나오더니, 기다렸다는 듯 내 다리에 앞발을 올리며 힘껏 몸을 비볐다. 그때 처음으로 고양이가 온몸으로 내는 힘찬 그르렁 소리를 들었다. 한참 정신없이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던 고양이는 나보다 앞장서서 열려 있는 집 안으로 득의양양하게 들어가더니, 내가 편의점에서 사 온 캔을 다 먹어치우고는 내 무릎에 기대어 긴장을 놓은 채 축 늘어져 단잠에 빠져들었다.


불쌍한 어미 고양이일까 봐 걱정했건만, 그냥 잘 얻어먹고 다녀서 배가 통통하게 나온 수컷이었다.


데리고 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친구들이 앞다투어 고양이 사료며 물품을 갖다 주었다. 얼마 뒤 휴일에 본가에 온 남동생은 전후사정을 듣더니 삼고초려해서 들어온 녀석이라며 유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겁도 없이 인간의 집을 침략한 길고양이는 황제의 이름을 얻고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햄스터나 병아리를 잠깐 키워본 것 외에는 동물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동물을 만지거나 안아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처음에는 밥만 주고 멀찍이 내버려 두곤 했다. 집 안에 사람이 아닌 털뭉치 반려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특별한 일처럼 느껴진다. 함께 산지 벌써 5년이 넘었지만 가끔 유비가 거실을 태연히 돌아다니거나 내 침대에서 자고 있는 풍경이 낯설게 느껴져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다니’하는 감탄이 절로 떠오르곤 한다. 운명처럼 받아들인 반려동물은 나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길한 징조라는 친구의 말처럼 좋은 일들도 찾아왔다.


조금은 안정적인 형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고양이 때문이다. 고양이가 나를 의지한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부터다. 유비는 다른 가족들이 있을 때도 내가 집에 돌아오면 현관으로 달려 나와서 반기며 쪼르르 따라다닌다. 평소보다 늦으면 잔뜩 성이 나서 부모님도 하지 않는 잔소리를 시끄럽게 쏘아댄다. 몇 달씩 본가를 거의 떠나 있다시피 했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눈병을 앓기도 했다.


나도 점차 고양이를 의지하게 되었다. 고양이는 먹여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첫 월급으로 캣타워를 샀다. 서로 눈짓 몸짓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늘었다. 하루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다. 귀엽다는 말을 만 번쯤 해도 모자란 고양이. 정말로 나를 삶에 정착시킨 것은 고양이가 아닐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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