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한다. 꽤 많이 좋아한다. 한때 작은 커피 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나 특별히 원두의 산지와 차이점을 기억한다거나 물의 온도와 양을 섬세하게 따져가며 마시는 그런 수준은 아니다. 그냥 맛있는 커피는 언제나 처음 마주하는 기분으로 음미하며 희희낙락하기만 한다.
아주 오랫동안 따뜻한 아메리카노나 드립 커피를 마시는 일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루틴이었다. 친구로부터 커피 마시기가 루틴이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루틴은 아닌데 맨날 마신다고 대답했다가 그게 루틴이라는 걸 깨달았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매일 한 잔씩 마셨다. 그랬더니 어쩌다 안 마시는 날이면 늦은 오후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너 그거 커피 중독이네, 줄여라. 커피 못 마셔서 머리 아프다는 말을 하자 엄마가 대꾸했다. 아빠는 끊으라고 했다. 뭐야. 다들 커피 매일 마시잖아. 왜 나만 먹지 말라고 그래. 나는 대놓고 귓등으로 들었다. 어떻게 커피를 안 마셔. 커피 없이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가족의 잔소리에는 툴툴거리며 반항했지만, 무언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립, 독립, 뭐 그런 걸 평소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지도 모른다. 언젠가 전쟁이나 기후변화로 스리라차 소스처럼 커피도 구하기 어려운 물자가 되면 어떡하나. 타이레놀을 까먹으며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날 아침은 사무실에서 동료에게 커피를 좀 참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커피에 의존하는 것 같다는 자조적인 염려와 함께. 그러자 내가 평소 흠모해 왔던 그 직장 동료는 매우 쿨한 말투로 그 정도는 의존하고 살아도 되지 않냐고 반문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쉽게 커피와의 거리 두기를 접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향 때문이다. 겨울 아침, 회사 앞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우뚝 솟은 건물이나 지나가는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손에 쥔 텀블러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하고 고소한 원두 내음이 차가운 공기 사이로 모락모락 코 끝을 스칠 때, 비로소 그날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이 된다. 뻗친 머리를 대충 만지고 집을 나선 시간도, 만원 지하철에서 꼼짝없이 버틴 시간도 그날의 아침이 아니었던 양, 진정한 아침은 갓 내린 커피 향기와 함께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저런 건강 상의 이유로 정말 커피를 자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에는 딱 일주일만 커피를 참아보기로 했다. 커피를 즐겨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생애 제일 오래 참은 기록이 일주일이기 때문이었다.
첫날은 완전히 끊기는 싫어서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했다. 그런데 맛이 없었다. 커피의 영혼이 카페인과 함께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디카페인만 마신 이틀은 내내 시무룩해졌다. 삶의 낙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커피 없는 인생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안개 낀 듯 뿌옇게 된 머릿속으로 외쳤다.
디카페인 커피만 입에 댄 지 나흘이 지나자 드디어 신기하게도 커피 생각이 안 났다. 아니 사실 그날은 그럴만하게 바쁜 날이었다. 닷새가 되자 다시 진짜 커피가 마시고 싶어 졌고, 오늘은 디카페인을 마시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작은 찻잔에 연한 드립 커피를 만들었다. 그런데 하필 또 맛이 없었다.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삶의 즐거움을 커피가 아닌 다른 데에서도 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커피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그냥 좋아하고만 싶다. 만약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남겨진 의존의 대상은 전기, 상수도, 인터넷 뭐 이런 것들일까. 두통은 없어졌으니까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 같다. 커피가 없더라도 의연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내일은 괜찮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