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유진 Aug 31. 2024

단순한 목표

20대에는 늘상 분주했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방황의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미술대학에 다녔던 나는 복학해서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뭔가 의미가 있고 쓸모도 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만든 것을 내다 팔아서 수익을 내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이런저런 시도는 했지만, 결국 변변한 대책 없이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방끈만 긴 백수가 된 내게, 부모님은 장래 계획을 묻는 대신 안식년 삼아 한 해 쉬라고 권했다. 그러나 어쩐지 속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손에 잡히는 일이나 정해진 방향이 없다는 사실이 불안했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도 부담감이 있었다. 그 무렵 집에는 나 말고도 놀고먹는 고양이가 두 마리나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은 길고양이 유비를 거둬들인 이듬해에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조조)를 더 데려와 둘을 형제처럼 돌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시절처럼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만 해서는 나 자신과 고양이들만 간신히 먹여 살릴 처지였다. 저축을 하려면 더 많은 수입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 대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무렵에는 한동안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정말 회사만 다니자는 게 스스로의 행동 지침이었다. 새로운 일과 환경에 적응하는데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집과 회사만 간신히 오고 갔다. 그리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이 터지는 바람에, 정말로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그 당시 품었던 또 하나의 막연한 생각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억을 모으기 전까지는 퇴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강남의 신축급 원룸 오피스텔 전세가가 약 2억이었기 때문이다. 현금 2억 정도 있으면 대한민국 어디로든 이직 걱정은 없겠다고 판단했었다. 물론 그 이후에 집값도 가파르게 올라버려서, 그런 논리라면 이제 2억 5천은 있어야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점차 직장 생활에도 적응하면서 처음 세웠던 계획들은 달라졌다. 퇴근 후에도 제법 에너지를 쏟는 생산적인 일들을 하게 되었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갚기도 하면서 금전적인 계획도 완전히 다시 세우게 되었다.


만족스러운 한 해를 보내기 위해 매년 한두 가지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물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을 수준을 목표로 수영을 배웠다. 2023년에는 몸져눕지만 말자는 목표로 피트니스센터에 다니기 시작했고, 주제와 분량을 정해서 글을 썼다. 2024년에는 독립하여 나만의 공간을 가지기로 했고, 그래서 살아보고 싶었던 동네 중 한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스스로에게 어느덧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을 주었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가 뿌듯한 기분을 안기는 보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 당장 실천하고 싶은 계획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한 시절을 보내다가도, 어떤 날에는 잠시 그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번 달에는 무얼 하고 올해는 무얼 하겠다는 일련의 기간제 목표들이, 단지 그만큼의 물리적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그리고 그게 뭔가 충분하지 않다는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잘 살고 있으면서도 이게 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사치스러운 푸념을 한다. 이러나저러나 왜 사는지만 반문하려는 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살아갈 계획에는 이유가 아니라 방법이 필요한 것 같다. 오늘은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