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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25. 2023

70만 원 내고 난생처음 5성급 호텔에 묵어보니

생애 최초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셋째 날은 태풍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래도 여행 마지막 날을 흘려보낼 수 없어 비옷을 챙겨 입고 올레길을 걸었다. 장대비가 쏟아질 땐 잠시 나무 아래 몸을 피했다가 빗줄기가 약해지면 걷기를 반복했다.


점심을 먹고 체크인 시간에 맞추어 호텔에 도착했을 무렵, 남편과 나는 완전히 비 맞은 생쥐꼴이었다. 호텔 정문에 렌터카를 세우고 차에서 내리니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빠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갓 직장생활을 시작한 듯한 앳된 얼굴의 여직원이었다. 남편이 차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는데 직원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짐은 저희가 옮겨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지금껏 여행을 다니며 직원에게 가방을 맡겨 본 경험이 없는 데다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짐을 옮겨주겠다는 직원이 너무나 젊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멈칫한 사이 그녀가 능숙하게 캐리어를 손에서 빼갔다. 남편이 배낭을 차 뒷좌석에서 꺼내자 그것마저 재빨리 낚아채갔다.


남편의 배낭은 여행용이 아니라 노트북과 온갖 회의문건으로 꽉 찬 업무용이다. 출장이 잦은 남편이 달팽이껍데기처럼 어디든 메고 다니는 가방이라 여기까지 들고 온 것이다. 캐리어는 몰라도 배낭까지 직원에게 맡기는 것이 신경 쓰여 내가 들겠다고 하자,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무거운 배낭을 캐리어 위에 올리고 꽉 움켜잡았다. 이건 자신의 일이니 더 이상 참견하지 말라는 듯한 태도였다. 을 단단히 움켜쥔 그녀의 두 손을 보자니 배낭을 달라는 말을 더 이상 꺼내기가 어려웠다. 짐을 들어주겠다는 직원에게 가방을 내어놓으라고 호텔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이상한 일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짐을 맡긴 채 로비로 들어섰다.


카운터가 있는 호텔 로비/ 예약한 객실이 있는 숙소동의 로비층


호텔 로비는 넓고 깨끗했다. 수영장을 이용하느라 슬리퍼를 신은 사람들이 간혹 오갔지만 번잡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카운터에서 객실 카드를 받은 뒤 주차를 하러 간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다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걸어가던 다른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갔는데 다른 손님과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저렇게까지 인사를 해야 할까.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 직원의 친절이야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지나가는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매번 인사를 한다는 건 조금 과도하지 않나 하는 생각. 손님을 응대하는 게 일과인 호텔 종사자들에겐 당연한 일인지 몰라도 난생처음 5성급 호텔을 방문한 내게는 어쩐지 불필요한 행위처럼 보였다. 직원들이 괜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마저 들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호텔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고, 직원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빨리 객실로 올라가고 싶었다.


다행히 짐을 옮겨주겠다던 직원이 방까지 따라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우리를 안내한 뒤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가방을 건네주었다.


테라스에서 바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객실이었지만, 비가 계속 내리는 탓에 밖으로 나가볼 수는 없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캐리어를 한 곳에 밀어 두고 쇼핑백에 구겨 넣은 비옷부터 꺼냈다. 올레길 근처 편의점에서 개당 3천 원에 산 일회용이지만 다음 날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버리긴 아까웠다. 말려서 내일도 입을 생각에 비옷을 책상 위에 펼쳤다. 수영장에서 신으려고 챙겼다가 올레길을 걷느라 젖어버린 아쿠아 슈즈도 화장대 위에 꺼내놓았다. 깔끔하던 방이 금세 너저분해졌다.


짐을 어질러놓고 나선 곳은 국내 최대 인피니티풀이라고 광고하던 호텔 수영장이었다. 수영은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가보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집에서부터 챙겨 온 낡은 수영복을 꺼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축축한 아쿠아슈즈를 다시 챙겨 들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개구리헤엄도 못 치는 내겐 그림의 떡.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인피니티풀도 내겐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수영장 물을 두 팔로 헤쳐가며 모서리까지 힘겹게 걸어간 뒤, 얼굴을 때리는 비를 맞으며 기념사진 한 장을 겨우 찍었을 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물놀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동네 마트에서 샀던 투피스 형태의 수영복은 너무 낡아서 허리 쪽 고무가 다 삭은 상태였고, 별생각 없이 아쿠아슈즈를 신고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직원으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오래전 아이들과 다녀온 워터파크만 생각하고 아쿠아슈즈를 풀장 안에까지 신고 들어간 것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쩐지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소풍 때였다. 전교생이 모두 수영복을 입고 물이 허리까지 오는 수영장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데 나만 무릎까지 오는 낮은 풀에서 혼자 놀았던 적이 있다. 수영을 하지 못하니 손바닥으로 바닥을 기어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물놀이의 전부였다. 그것도 수영복이 아닌 러닝과 팬티를 입고. 내가 나고 자란 시골에서는 수영복 없이도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았기 때문에 서울 학교에서도 그런 줄 알고 아무 준비 없이 간 탓이었다. 더 넓은 세상에서 살라고 나를 서울로 유학 보낸 가난한 촌부였던 엄마의 생각과 달리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세계에서 혼자 허우적거렸다.


일자리를 위해 도시로 상경한 오빠들이 어쩌다 남산타워 케이블카도 태워주고, 롯데월드에도 데려가고, 명동에서 돈가스도 사주었지만 나는 그 도시에 녹아들지 못했다. 땟국물 흐르는 옷에 숙제며 준비물도 빠뜨리기 일쑤였던 나는 그저 대도시 서울의 어린 이방인이었을 뿐이다. 그 낯설고 불편하던 느낌이 제주의 5성급 호텔에서 되살아났다.


때로는 불편함을 넘어 세계가 나를 거부하는 듯한 불쾌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그 이유는 '아비투스(Habitus)'때문이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7가지 자본으로 정리하여 쓴 도리스 메르틴 박사는 자신의 저서 [아비투스]에서 아비투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


저자는 '아비투스'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사례를 예로 드는데 그중 프랑스 작가 벨지니 데스펀트(Virginie Despents)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그녀는 아카데미 콩쿠르 회원으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지위에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파리 부르주아의 대표적 인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파리 부르주아에는 오직 그렇게 태어난 사람만 속할 수 있어요. 나는 그곳에서 영원히 이방인으로 머물 겁니다... 나는 책으로 성공했고, 흥미롭고 매력적인 사람이죠. 하지만 '원래'의 나는 우체국 직원 부부의 딸이에요."


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꼭 맞는 예는 아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아무리 도시에 살고 표준어를 구사하고 대학원에 다닌다 해도 '원래'의 나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가난한 농부의 딸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아비투스'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남들처럼 똑같은 돈을 내고 5성급 호텔에 하루 묵을 수는 있어도 어릴 때부터, 혹은 자주 그곳을 다니는 사람들만이 지닌 아비투스와는 구별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옷을 입고 호텔 로비로 들어설 때 바로 앞에서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걸어가던 여자와 몸에 꼭 맞는 민트색 꽃무늬가 그려진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자쿠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여자는 나와 다른 아비투스를 지닌 이들일 것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취향, 습관,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결국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사회문화적 배경이자, 습관보다 강하다는 아비투스 때문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물론 상류층이 자신들의 자녀를 타인과 구별 짓기 위해 사립학교를 다니게 하고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승마나 바이올린을 가르치거나 오페라를 관람하고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문화적 경험의 기회가 적은 서민들의 자녀는 아비투스로 설명되는 문화자본이 빈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아비투스를 지닌 무리나 공간 속에 들어가는 행위가 원래 이질감과 배제되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이기에 내가 느낀 낯설고 불편함은 당연한 셈이다. 이러한 낯섦이 익숙해지려면 지속적으로 반복하거나(주기적으로 5성급 호텔에 묵거나) 다양한 경험의 확장을 포기하고 원래의 익숙한 방식(게스트하우스나 에어비엔비)으로 돌아가면 된다. 나는 새로운 모험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지만,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니까. 이처럼 피곤한 일을 하려면 때로는 예민한 감수성의 더듬이를 잠시 내려놓고, 조금은 무던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어제와 같은 내일을 살게 될 테니까.     

 



지난 화에 남편이 숙소에서 사라진 이야기는 다음 편을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하게 될 줄 모르고 분량상 끊었었는데ㅜㅜ... 뒤늦게 그 편에 추가하여 발행하였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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