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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05. 2024

지옥철 탑승 티켓이 도착했다.

면접을 보고 돌아왔다. 짧은 20분 동안 쉼 없이 질문을 받았고, 쉼 없이 대답했다. 면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6명이 면접을 보았으니 경쟁률은 6:1. 합격보단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사람을 가득 실은 지하철에 피곤한 얼굴로 집과 회사를 오갈 미래를 생각하면 차라리 떨어지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남편은 꼭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 말이 내게는 너도 지옥철에 탑승하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면접을 본 지 이틀이 지났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접속한 참이었다. 드르르륵. 옆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면접을 본 회사에서 온 전화였다. 탈락 소식을 전하기 위해 굳이 전화를 걸진 않았을 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안녕님, OOOO입니다. 면접에 합격하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설 연휴 지나고 바로 출근 가능하실까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메일로 필요한 서류 요청드렸으니 확인해 보시고, 2월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났다. 서류 준비와 면접에 최선을 다했고 결과도 합격인데 어째 기쁘지가 않았다. 준비과정과 결과만 보면 분명 좋은 소식인데.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남편의 축하를 들으면 기운이 날까 싶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합격했어...

“진짜? 축하해! 잘 됐네!


나보다 훨씬 더 기쁜 목소리였다. 음악만 틀면 당장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과연 잘 된 일일까. 매일 숨 막히는 지하철 속에 피곤한 몸을 실어 나르느라 읽고, 쓰고, 공부할 시간과 체력을 잃게 될 텐데. 나의 취업은 정녕 누구에게 잘 된 일일까. 아이들이 취업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뒷바라지하고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직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신 포기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자꾸만 울적해졌다.




나는 규율에 약한 사람이다. 외부에서 강제하고 억압하는 틀이 있으면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용수철처럼 밖으로 튕겨나가려고 한다. 억압에 대한 회피 성향이 강한 탓이다. 자의식이 강해서 남의 말도 잘 듣지 않는다. 흥미를 느끼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지만 내가 끌리지 않으면 주변에서 해보라고 노래를 불러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성격이 이렇다 보니 평범하고 보편적인 것들의 힘을 잘 믿지 않았다. 참고 끝까지 해내는 근기(根氣)도 남들만 못하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도, 4대 보험이 안 되는 프리랜서를 전전한 것도, 적성검사가 귀찮다는 이유로 운전면허가 말소되도록 내버려 둔 것도, 자격증보단 새로운 경험에 목맨 것도. 다 이런 실속 없는 기질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자기 주도성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제 멋대로 살았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운동하고, 밥 먹고, 일 하는 규칙적인 삶은 내가 지금껏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삶이다. 하지만 회사를 나가기 시작하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런 규격화된 틀 안에서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사실 내가 원했던 일자리는 일주일에 3일 정도만 일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오후 네 시나 다섯 시쯤 퇴근할 수 있는 곳. 그러면 5일 내내 여덟 시간씩 일하는 직장보다 수입은 적겠지만, 공부나 프리랜서 일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개인 사정을 고려한 맞춤형 일자리가 어디 흔한가. 하루에 네 시간만 노동하고 네 시간은 지적 활동을 하는 삶에 대한 로망은 저만치 밀어두어야 한다. 합격을 포기하고 원하는 조건을 가진 일자리를 다시 찾아볼까 싶은 마음도 없는 건 아니지만, 우선은 접어두기로 한다. 일을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 치는 건 너무 모양 빠지니까.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는  '나다운 삶'이라는 에고 속에 들어있던 특별하고 소중한 나를 내려놓는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자의식을 떠나보내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나로 살아가는 것. 피하지 말고 그냥 끌어안고 가보는 것. 하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만큼 맹렬하게 부딪혀보는 거다. 정 힘들면 그때 나가떨어지면 될 일. 할 만큼 했다는 말도 그때 쓰기로 하자.


얼마나 다행인가. 지옥철이 지옥행은 아니라서. 불행해지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모두들 행복해지기 위해 일한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자립하기 위해, 꿈꾸는 미래를 위해. 오늘도 일하고, 내일도 일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그 믿음 위에 나도 올라타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잘 된 일, 아닐까.





대문 사진 :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출근 시간 서울지하철 4호선, 객실 의자 없는 열차 시범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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