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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Mar 06. 2021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한강, 소년이 온다

 (이 글에는 소설의 줄거리가 모두 나와있습니다!!)

 5.18 광주 민주 항쟁을 다룬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는 당시 시신을 임시로 안치했던 상무관에서 자원해서 시신을 수습하거나 계엄군이 전남 도청을 진압한 밤에 그 곳에 끝까지 남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호, 은숙, 진우, 선주. 전남도청 맞은편에 상무관이 있다)

1장. 어린 새

 1980년 광주, 상무관에 한 소년이 있다. 이름은 동호. 중학교 3학년이고 하늘색 체육복 바지 위에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있다. 소년은 친구 정대와 함께 시위 현장에 있다가 친구의 손을 놓쳤는데 친구가 군인이 쏜 총에 맞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정대는 소년의 집에 누나와 단 둘이 세들어 살고 있다. 자신은 무사히 도망쳐서 집으로 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는다. 견디다 못해 소년은 친구를 찾아나섰다가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이들의 시신을 임시로 안치해 놓은 상무관까지 가게 된다. 시신을 관리할 일손이 부족한 그곳에서 소년은 일을 돕게 된다. 시신은 너무나 처참하고 끔찍하지만 동호는 침착하게 선주 누나, 은숙 누나, 진수 형을 돕는다. 고등학생, 대학생,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인 그들은 키가 작고 어려 보이는 동호를 걱정하며 집으로 가라고 하지만 동호는 말을 듣지 않는다. 나중에 어머니까지 찾아와서 집에 가자고 하지만 동호는 따라가지 않고 여섯시에 문 닫으면 가겠다고 한다.

2장. 검은 숨

 희생자들의 시체는 열심자로 겹겹이 포개어져 있고 한 소년의 혼이 자신의 시신 근처에 머물고 있다. 동호가 그렇게도 찾던 정대이다. 정대는 그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정대의 영혼은 시신 근처를 맴돌며 자신의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정대는 누나 역시 자신처럼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대의 영혼은 생각한다. 왜 나를 죽였지.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정대의 영혼은 회상한다. 동호의 집에서 살았을 때의 즐거운 기억을. 그 때 품었던 꿈을.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그들이 악몽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정대의 영혼은 군인들이 겹겹이 포개어진 시체에 기름을 붓고 불로 태우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먼 곳에서 폭약 소리와 비명 소리를 듣는다. 정대는 깨닫는다. 너, 즉 동호가 죽었다는 것을.


3장. 일곱개의 뺨

 상무관에서 동호와 함께 있던, 당시 고 3이었던 은숙은 계엄군이 몰려오던 최후의 밤, 새벽 한 시에 도청을 나왔다. 동호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동호는 날쌔게 달아나서 못 데리고 나왔다.

 그녀는 무사히 대피했고 이후 대학에 진학했으나 집안 형편상 계속 다니지 못하고 출판사에 취직한다. 현재 수배당하는 사람의 번역본을 출판하려 한 것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당하다가 뺨 7대를 맞게 된다. 그녀는 하루에 한 대씩 7일동안 7대의 뺨을 맞은 것을 다 잊겠다고 결심한다.

 그녀는 광주를 떠올린다. 그 해 유월 분수대가 물줄기를 뿜는 것을 보고 그녀는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했었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그녀는 출판을 앞둔 희곡집을 가지고 시청 검열과에 간다. 검열과 직원은 많은 부분을 까맣게 칠해 누더기를 만들어놓았다. 작가는 이 희곡집을 출판하고 이 희곡집으로 만든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고 했는데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작가는 무대 공연을 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공연을 보러 간다. 그리고 배우들이 검은칠된 부분을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말하는 것을 본다. 그녀는 편집자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사원이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사찰을 의미할 때 쓰는 사원은 아닌 것 같았다. 국어 사전을 찾아보고  '사사로운 원한' 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시체도 찾지 못해 장례식을 못 치르고 그 후부터 봄이 와도 꽃도 버드나무도 빗방울과 눈송이도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원한을 일으키는 존재들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 6장 꽃 핀 쪽으로와 함께 읽으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와닿는다. 그녀는 동호의 이름을 소리 없이 부른다.


4장. 쇠와 피

​ 상무관에서 동호와 함께 있던 진수는 최후까지 투쟁하다가 극렬분자로 분류되어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서 진수와 같은 조였던 남자가 인터뷰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스물세살의 교대생이었다. 그는 시위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양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와 김진수를 비롯한 극렬분자로 분류되어 감옥에 갇히고 이들은 온갖 고문을 당하고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 구타보다 정교하게 고통을 주는 방식의 잔혹한 고문들이 이어진다.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고통스러운 고문의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 석방된 후에도 그 때의 고통은 트라우마로 남아 한 순간도 맘 편히 잘 수 없었다. 그와 김진수는 가끔 만나 술을 마시며 서로의 상태를 확인한다. 김진수는 말한다.

"꼭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 형. 언제가 됐던 내가 죽을 땐, 그 사람들까지 꼭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 그런데 이젠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아. 지쳤어.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그 이후에 김진수는 결국 자살한다. 그리고 유서와 함께 죽은 동호가 찍힌 사진이 있었다.

 그의 입을 통해 동호가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된다. 도청은 계엄군들에게 점령당했다. 동호를 비롯한 어린 학생들은 김진수가 시켰던대로 항복의 뜻으로 손을 들고 계단을 내려온다. 유난히 폭력적이고 흥분한 상태였던 장교가 총을 들어 그들을 조준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긴 그는 부하들을 향해 영화 같지 않냐고 말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5장. 밤의 눈동자

​ 상무관에서 동호와 함께 있던 은숙은 계엄군이 몰려오는 최후의 밤, 도청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거리를 다니며 시민들에게 참여를 독려하던 트럭에서 방송하던 여대생이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하자 그녀가 대신 메가폰을 잡았다. 그들은 체포되었고 끌려간 그녀는 이름 대신 빨갱이년으로 불리며 극도의 성고문을 당한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다. 이전에 여공으로 일할 때 노조 운동을 했던 그녀는 지금은 시민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시민군 중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논문을 쓰는 윤이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증언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녀는 망설인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 동호에게 집에 가라고 했다면 동호가 죽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자책한다. 그리고 동호의 영혼이 새벽에 자신을 찾아오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버스에서 터져나오는 여자애들의 쨍쨍한 노래에 이끌려 광장으로, 총을 든 군대가 지키는 광장으로 걸었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럼.

6장. 꽃 핀 쪽으로

​ 6장은 동호의 어머니가 죽은 동호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도청에 있는 동호를 찾으러 간 밤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서술된다. 그날 동호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가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렇게 쉽게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계엄이라 7시가 통금인데 그 때가 되어도 동호가 오지 않자 그녀는 작은형과 함께 다시 도청으로 간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총을 든 어린 시민군들은 금방 계엄군이 탱크를 몰고 올 거라고 위험하니 어서 집으로 가라고 한다. 작은형이 직접 들어가서 동생을 찾겠다고 하자 시민군이 "지금 들어가면 못 나옵니다. 저 안에는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라고 한다. 결국 동호 어머니는 작은 아들을 달래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 아그가 기회를 봐서 제 발로 나올라는 것이여...분명히 나한테 약속을 했단게. 사방이 너무 캄캄해서 내가 그렇게 말을 했다이. 금방이라도 어둠속에서 군인들이 나타날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이라다가 남은 아들까장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동호를 먼저 보낸 유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가 나온다. 동호 어머니는 유가족 모임의 어머니들과 함께 시위도 여러 번 다녔다. 그러나 동호 아버지가 병에 걸려 돌아가신다. 그녀는 이 지옥에 자신만 남겨놓고 가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저 겨울이 지나간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먼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먼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쳐다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동호야.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절절한 독백으로 이루어진 6장은 3장의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라는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독백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동호 어머니로 대표되는 수많은 유가족들의 독백일 것이다. 동호의 아기 적부터 소년 시절까지 어머니가 회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6장은 너무 슬프다. 김애란 작가의 '입동' 과 함께 한국 현대 소설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에필로그에서는 작가가 '나'로 등장하여 어린 소녀였던 80년, 어른들의 낮은 목소리를 통해 광주 민주 항쟁을 알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어른이 된 그녀는 광주 민주 항쟁을 소설로 쓰기 위해 광주에 취재를 하러 간다. 동호가 다닌 ㄷ중학교에 가서 학생기록부용 사진으로 동호를 본다. 그리고 "너무 평범해 누구와도 혼동될 듯한 얼굴, 눈을 떼는 순간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것 같은 얼굴" 이라고 생각한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읽는다는 원칙으로 두 달 동안 자료를 읽었으나 악몽을 꾸게 된다.

 자료 속 고문 생존자는 고문에 관하여 방사능 피폭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방사능 피폭은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앞의 내용에서 김진우와 그의 감옥 동료가 겪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김진우는 자살한다.

 작가는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작가는 동호의 무덤에 간다. 그의 오른편과 왼편 무덤은 모두 고등학생들의 것이었다. 가지고 온 초들을 소년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놓고 불을 붙여 그 불을 바라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 로 2016년 맨부커 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지만 이 소설은 그 전인 2014년에 출판되었다. 몇 년 전 이 책을 읽자마자 이 책은 소장해야 될 책이라는 생각에 서점에서 바로 구입했다. 이번에 한 번 더 읽어보니 명작의 가치를 더욱 알 수 있었다. 구성과 문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작가가 왜 천재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그 시대를 직접 겪지 않고도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라는 문장이 등장 인물들의 말과 생각을 통해 여러 번 등장한다. 3장에서 은숙이 벽에 붙은 전두환의 사진을 보다가 그 사진 아래의 문을 바라보며 "살인자의 사진 액자 아래 반투명한 간유리가 끼워진 문이 있다." 이렇게 설명한다. 그 부분을 보며 약간의 통쾌함을 느꼈다.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자가 살인마이고 학살자라고.

 광주 민주화 운동은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의 일이라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만 접했다. 접할 때마다 의문이었다.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소설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섬세하고도 사실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시민군들을 눈에 보일 듯 생생하게 재현한다. 참으로 무섭고도 안타까웠다. 만약 그 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광주가 그렇게까지 고립되었을까? 어쩌면 더욱 많은 시민들이 도청에 모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촛불 혁명처럼 성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광주 시민 전체를 죽일 수 있는 탄환의 수 2배가 군인들에게 지급되었다는데 정말로 광주 시민들을 다 죽여버렸을 수도 있다. 4장 쇠와 피 서술자의 진술처럼, 만약 그날 전남도청에서의 저항이 없었다면 정말로 다 죽였을 수도 있다. 무서운 일이다.

  요 근래에도 뉴스에서 전두환의 안하무인격의 행태가 보도되어 본 기억이 있다. 아무 관련 없는 제3자가 봐도 이렇게 분통이 터지는데 유가족들의 울분과 한은 어떠할까. 이런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자를 석방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해서 석방했다는데 도대체 통합이라는 말을 왜 아무 데나 쓰는지 이해가 안간다.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는 것이 더 건강한 사회가 되는 길일텐데 그게 진정한 통합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그 엄청난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처벌도 받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사회 구성원들이 뻔히 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더 나쁜 사회를 만들게 되는 것 아닐까.

 4년 전 학교에서 '독서 조감도 대회' 를 실시했었는데 내가 담당자였다. 지정 도서 중 한 권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감도처럼 그리는 대회였다. 그 때 이 책이 지정도서 중 한 권이었다. 나는 심사를 맡았었는데 생각보다 학생들의 솜씨가 뛰어나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수상 작품 중에 '소년이 온다' 가 있었다. 출판사에서 안다면 탐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책의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오게 잘 그린 그림이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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