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1
_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언니는 버려졌다.
국민학교 5학년 즈음이었다. 자신보다 더 어린 남동생 둘과 함께.
집에 두고 미처 들고 나오지 못한, 제가 낳은 자식들보다 소중한 재봉틀의 머리를 눈물 가득 머금은 어린 딸에게 가져다달라고 시켰다. 조그만 여자아이가 힘겹게 가져다주는 그것을 싸들고 어머니는 돌아서 떠났다.
언니는 어쩐지 가슴 한쪽이 아파왔으며 눈물을 삼키는 목구멍이 찢어질 듯 쓰려왔다.
그렇게 언니는 어머니와 이별했다.
그날의 점점 멀어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붙잡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선채 멍하니 바라보며 떨고 있던 그 자신의 모습이 언니에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어머니가 떠난 가정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다. 그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어린 자식들을 희생양 삼아, 떠난 아내에게 앙갚음하는 선택을 했다.
언니는 하루아침에 엄마 없는 아이가 되고 엉성한 기둥만 남은 ‘집’에서 어른답게 살아야만 했다.
겨우 서너 살때 외갓집에 맡겨지며 진작에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던 막내동생은 어머니의 의미나 필요성조차도 알지 못한 생태였다. 어른이 된 뒤,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그래서 그는 서먹서먹했다.
‘어머니’라니까 어머니일 뿐, 자신의 삶에서 어머니의 부재가 어떤 의미이고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에게는 처음부터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떠난 가정에서 3남매는 결코 정상적인 인생을 살 수 없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음은 물론,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아버지는 아이들을 친척집으로 내돌렸다. 아이들은 이집저집으로 떠돌며 천덕꾸러기로 성장했다. 눈치와 구박이 삶의 동력이었다.
그러는 중에 둘째였던 큰아들, 언니의 첫째 동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병을 얻었다.
애초에 너무 어려 어머니의 존재나 의미도 몰랐던 막내와 달리, 어느 정도 사리분별을 하던 시기에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하고 혼란에 사로잡혔던 첫째 동생은 마음의 고통을 느꼈다.
성장할수록, 친척이나 주위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에서 눈치 빠른 그는 속으로만 고통을 삼키고 쇳덩이처럼 소화되지 않는 묵직한 슬픔의 응어리는 우울증의 씨앗이 되었다.
성인이 되었으나 제대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던 세 아이들의 삶은 나아지기 어려웠다.
그나마 중학교까지 간신히 다녔던 언니는, 당시에 양재기술을 익혀 양장점을 시작하던 이모의 영향으로 양재학원에 다니는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 언니는 의상디자인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과정을 마친 뒤에는 이모의 양장점에 취업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인생을 흔들림 없이, 비뚤어짐 없이 신중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훗날 언니는 자신의 힘으로 의상실을 개업하고 훌륭하게 인생을 살아갔다. 그러나 두 남동생들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한편으로 다행스레 머리가 나쁘지 않아서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공부하여 검정고시로 최소한의 지식을 획득하고 생활의 지혜를 학습하기는 했으나 삶 자체가 완전한 사회적응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의 애정과 관심과 손길이 가장 필요한 시기의 결핍이 그 후 생의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슬픈 예가 아닐 수 없다.
언니는 이후, 자수성가한 젊은 사업가와 결혼하여 그전까지의 힘겨웠던 삶을 보상받는 듯하다.
그러나 막내동생은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즈음,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개척하여 간신히 이룬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중, 어느 날이었다.
그날 밤 지인과 함께 공장 근처에서 술 한잔을 마신 뒤, 지인이 버스 타는 것을 함께 기다리며 서 있다가 갑자기 ‘헉!’하고 가슴을 치며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50년 넘게 지독한 외로움과 삶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외마디 단말마의 한숨소리만을 남긴 채 떠나간 것이다. 평소 건강에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던 그였기에 남겨진 이들의 슬픔은 말로 결코 다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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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시작하는 것은, 언젠가는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커다란 과제였기 때문이다.
내가 간여하지 않았으나 어느 틈에 내 생의 한 점이 되어버린 이야기, 결국은 나를 이루는 요소가 된 운명, 수없이 부정하고 외면했으나 눈 떠보면 언제나 내 앞에 얼굴 마주하고 있는 나의 저 쓸쓸한 골목에 숨겨둔 이야기들.
판단이나 평가는 이제 와서 부질없으며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서투른 몸짓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