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유부남이었다.
아내와 자식이 하나.. 둘... 셋.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을 버렸다.
그 외...
‘아버지의 과거’에 관한 정보에는 빈칸이 많이 존재한다.
그는 이미 20여 년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세상에 살아 있을 때도 그는 결코 자신의 '특별한' 과거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이기적인 사람인가.
아버지는 기타를 잘 쳤고 손재주가 좋았으며 영어실력이 괜찮았다. 그리고 병역기피자*였다.
기타를 잘 치는 것은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종종 보았던 희미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며, 병역기피자라는 사실은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지적인 사람이었다. 한자에 능하고 어떤 사회현상에 대해 자신의 논리를 설파說破하는 데 있어 해박함이 넘쳤다. 어린 시절 한학漢學를 했으며 고향이기도 한 그 지방의 어느 대학에도 입학했었다고 했다.
아마도 군대에 가야 할 무렵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것이고, 강제징집이든 아니든 어떤 식으로든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비겁하게 살아남았다.
그런 그에게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원치 않는 배우자와 집안끼리 혼사 시켜 가정을 이루게 되었으며, 자녀들이 셋이나 태어났음에도 그 역시 그 가정에 안주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을 떠났다.
아내와 자식 셋이 어디선가, 여전히 호적상의 가족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도 어머니가 알려준 정보에 다름 아니다.
그 자신이 원치 않는 배우자를 맞았었다는 점에서 어머니와 닮아 있다.
그럼에도,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무책임하게 최초의 가정을 저버렸는 사실은 영원히 움직일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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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골목 어귀에 어린 딸을 버려두고, 어린 딸에게 전해 받은 재봉틀을 지고 어머니가 자신의 새로운 운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떠나기 위해 가족과 가문을 버린 아버지가 흙먼지 날리는 길을 가고 있었다.
한 사람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혹은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저 멀리 새로운 이정표가 나타나기를 희망하며 걸어갔다. 또 한 사람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혹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근심과 기대가 뒤섞인 심란한 심정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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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서로 교차하는 한 지점에서 두 사람이 마주쳤다.
고단한 걸음이 멈추었다.
아마도, 운명이라고 해야겠다.
무작정 자신들의 현실로부터 달아나는 것만이 생의 목표였던 두 사람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과거에 발이 묶인 채 운명적으로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의 열정으로 선택한 최초의 사랑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불륜.
그러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자발적인 선택과 결정에 의해 첫사랑을 마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사람은 행복했으리라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자식이 각자 셋씩이나 되는 데도 두 사람의 나이 서른 무렵이었다.
동병상련, 측은지심으로 서로의 처지가 너무나 이해되었던 두 사람은 방 하나를 잡았다.
머지않아 새로운 가족이 탄생할 여건이 마련되었다.
아버지의 병역기피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과거 유신시절 병역기피자*에 대한 혹독한 사회적 낙인과 불이익 때문이었다. 현재라고 해서 사회적 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라도 당시에는 더욱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건강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병역의무를 회피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는 평생 동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특히 유신 체제하에서 그와 같은 행위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비국민적인 범법행위로 치부되었으므로 자신의 병역기피 사실이 탄로 날 수 있는 공개적인 취업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병역기피 사실이 밝혀지면, 중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병역기피자였다는 사실은 가정경제를 위한 가장 역할의 박탈 혹은 기피로 이어지며, 그 후 새로 일구어낸 가족들과 그 자신의 생애 전반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무게로 짓눌렀던 것이다.
분명 아버지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더없이 나약한 영혼임에 틀림없었다.
1973년 1월 10일 ‘병역법 위반 등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병역기피자나 이와 관련된 부정행위를 한 자를 병역법이나 형법에 정한 처벌보다 무겁게 처벌하려는 목적에서 제정되었다....(중략)이 보다 더 강력하며 구체적인 대응으로, 같은 해 2월 26일 작성되어 3월 10일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대통령령 제34호 ‘병무행정 쇄신 지침’에서는 ‘병무비리자’와 ‘병역기피자’를 ‘유신과업과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비국민적인 행위자’로 규정하여 ‘일체의 사회활동을 제한하고 단호히 색출 엄단하여 국가의 법질서와 사회기강을 확립한다’고 표방했다. 관련자 국외여행 제한, 국가공무원 채용 시 병역필한 자를 우선 채용하고 병역기피자 들에 대해서는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다.(중략) 박정희는 1974년 국방부 연두순시에서 병무행정의 발전을 독려하며 “병역의무는 우리나라 남자로서 오히려 영예스러운 일인데도 이를 기피하는 사람은 국가 장래를 위해 단연코 우리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며 “당사자와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는 사회기풍을 만들도록”하라고 지시했다.
발췌 출처-박정희 시대의 군대와 군사문화 - 노영기(조선대) _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