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존중받지 못한 존재였다.
가족이라는 허울만으로 얽힌 그들은 누구도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능한 가장의 아내로서는 물론이고, 애초에 버려지듯 그 집안에 굴러들어온 막일꾼을 맏며느리로 인정할 턱이 없었다.
힘들고 고달파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견딜 수 있는 경우란,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자식을 셋이나 낳았어도 어머니는 늘 외로웠다.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 어머니 역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자신의 삶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잘못 꿰인 단춧구멍처럼 어긋난 인생을 다시 고쳐 끼우고만 싶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좌절과 낙담의 우물 속에서도 제 속으로 낳은 자식들이 있음에도 벗어나고만 싶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자식들 때문에라도 스스로 터득한 한복 기술을 삶의 방편 삼아 두 눈 질끈 감고 견디어 보아도 더 이상 어떤 희망도 생의 의미도 발견할 수 없었다.
탈출을 꿈꾸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수없이 많은 말[馬]을 움직여가며 진정 자신이 해야 할 가장 바른 선택을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정 붙이고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처음부터 제 손으로 선택한 적 없는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이제라도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싶었다.
이후로 그 결정이 어떤 운명으로 전개될지 한 치 앞도 짐작할 수 없음에도, 이보다는 나으리라, 적어도 이보다는 나으리라는 간절한 믿음으로.
휘몰아치는 폭풍의 한가운데 뒤웅박 같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미처 자식들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애비가 있으니, 제자식들이니 굶기기야 하랴, 하는 생각에 어머니는 어린 딸과 더 어린 형제를 쓸쓸히 버려두고 떠났다.
훗날 어머니는 회고했다.
그 어린것에게 재봉틀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내가...
그리고 회한 가득한 한숨을 토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짓는지도 그 당시의 어머니는 알지 못했다.
지옥 같은 그 집구석에서 탈출하는 것만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만이 당장의 절체절명의 과제였을 뿐, 하물며 자식일지라도 이미 내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평생의 한이 되었다.
애초에 그 자신이 열여섯 어린 나이에 남의 집에 버려졌다는 지울 수 없는 사실만이 평생의 고통이요, 좌절이었던 어머니에게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실수했다.
1930년대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 농부의 첫째 딸로 태어난 것이 최초의 실수였다.
딸은 소용없다며 '입 하나 덜어보려는' 부모에 의해 가난한 남의 집으로 열여섯 나이에 고민 없이 버려진 것이 또한 운명적인 실수다.
좌절과 절망감 속에서도 세 아이를 낳으며 운명에 순응하려 애썼던 시간들이 실수였다.
그 모든 실수를, 어머니는 뒤집어엎어 모조리 처음으로 되돌리고만 싶었다.
생각 같아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자기부정,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그 모든 실수를 한 번은 바로잡아야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때껏 뒤엉켜있던 운명의 고리를 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쿨-하게 제게 필요한 것 하나만 짊어지고 자신의 빛나는 인생을 향해 확고한 걸음을 옮겼을까.
이 이야기들은 어머니의 입을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한탄스레 한 번씩 토해진 응어리들의 채집이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핏빛 선명하고 도무지 풀어질 수 없을 것처럼 단단히 뭉쳐진 채 어머니의 가슴속에 깊이 박힌 회한의 덩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