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1

_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by somehow

열여섯 살이었다.


4남매의 첫째였던 어머니는 그해, 버려졌다.

어머니를 버린 존재 역시 어머니, 혹은 가족.


초등학교만 간신히 다니게 하고는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며 집안 살림꾼으로 부려먹던 큰 딸을, 어머니의 어머니는 어느 날 곤궁한 살림살이에서 ‘큰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


‘입 하나 덜기’ 위해, 그 어머니는 열여섯 어린 딸을 어느 집으로 보내버렸다.

하기 좋은 말로는 시집보낸 것이었으나, 그것은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부모와 형제들의 울타리가 필요한 어린 핏줄을, 아무런 저항능력도 용기도 없었던 순박한 딸내미를 제 이름자밖에 쓸 줄 몰랐던 부모는 가난을 빙자하여 매정하게 떼어버렸다.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했던 바보 같은 계집아이... 나는 가끔 그 당시 그 어린 여자아이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도망쳤어야 했다. 죽어도 싫다고 몸부림치고 저항했어야 했다.

심지어는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간 것과 뭐가 다른가.

부모의 자격은 예나 지금이나 어느 경우에도 제멋대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너라도 잘 먹고살라며, 제 살림의 부담을 덜어보겠다며 가여운 딸내미를 떼어 보낼 때 그 어머니의 심정도 흔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니까, 절대로 그리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그런 고통과 삶의 좌절을 안겨주는 행동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굶어 죽더라도 가족이 함께 끌어안고 살아내야 했다.


철없이 무한 신뢰했던 부모에게서 버려지는 배신의 고통을 안고 하루아침에 남의 집으로 시집보내진 뒤, 열여섯 여자 아이는 결코 행복해지거나 배부르지 않았다. 자식이 예닐곱이나 되는 가난한 집안이었던 것은 물론, 그중에서도 장남의 아내가 된 것이다.

여자아이는 절망하고 낙담했다.

자신을 헌신짝처럼 그런 집구석에 갖다 버린 부모가 미웠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면 차라리 부잣집에라도 보낼 것이지..


어린 여자아이는 그날부터 그 집안의 막일꾼으로 전락했다.

명색이 맏며느리라, 낮에는 집안의 온갖 힘든 일을 도맡아 해야 했고 밤이면 남편이라는 이름의 어른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너무 어려서 참고 견디는 수밖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며 가장 예쁘고 생기발랄할 나이에, 그렇게 무기력하게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집안에서 밤낮으로 휘둘리면서도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갔다. 어쩔 수 없이 몇 년 후에는 아이들도 태어났다.

아이 낳을 무렵에 대해 어머니는 이렇게 회고했다.

아이를 방에서 낳은 게 아니고 외양간에서 낳았다.

왜?

소도 새끼는 외양간에서 낳으니까 사람 새끼도 거기서 낳으라고, 지푸라기를 깔아주대...


원하든 원치 않았든, 3남매까지 낳고 나니 어머니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힘든 살림에 특별한 경제력도 없는 남편과 줄줄이 매달린 시동생들과 시부모 등.... 어머니는 맏며느리였기에 천형과도 같은 운명의 굴레에 얽힌 채 오랫동안 그렇게 허우적거렸다.



자식 하나를 뚝 떼어 남의 집에 보내버린 뒤, 가부장적 사고에 젖은,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연하게 끄트머리 두 아들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

딸은 필요 없고 아들만 있으면 된다며, 똘똘했던 두 아들은 일찌감치 서울로 올려 보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기억할, 그 옛날 서울의 유명한 고등학교에 다닌 것은 물론 공부도 겁나게 잘해서 나중에는 보란 듯이, 둘 다 서울 법대에 들어갔다.

가문의 영광, 시골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형제가 모두 서울법대생이라니!


그 뒤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의 무지렁이 부모가 자신의 살과 피를 쥐어짜듯 필사적인 노력으로 뒷바라지를 했음은 물론이다. 두 아들은 가난한 부모와 누이들의 모든 희망의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훗날, 그들은 결국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 사람은 진짜 법조인이 되었고, 또 한 사람 역시 서울 법대라는 변명의 여지없는 스펙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열여섯에 남의 집에 버려진 큰 누나에게는 평생 그 남동생들이 세상에 다시없는 자랑거리요, 자부심이 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거름 삼아 그토록 풍성하게 열매 맺게 되었을 지라도, 누나는 언제나 진심으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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