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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Sep 03. 2023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것은 볼품 없지만...

_흐린 날의 천변 산책

오늘은 날이 흐리다.

어제 제법 늦더위에 허덕였는데, 그래서일까 오늘은 더위도 지친듯, 이른 아침 천변 하늘이 흐리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어머니의 퇴원을 앞두고 나는 기분이 좋아졌었다.

그래서인지 마침 연락온 친구를 만날 마음의 여유도 생겼던가보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길, 라디오에서 잔나비의 노래가 나왔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가수의 나른하고 몽환적인 목소리와 그럴싸한 멜로디가, 숨겨져있던 아슴하고 아릿한 내 젊은 한때를 떠올리게 다.


저녁.

퇴원을 앞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지막 면회를 하러갔던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갑자기 안좋아지셨다.

계속 잠만 주무시고...많이 힘들어하시네, 너 안 왔다고 너만 찾으시네...

가지말라고 계속 고개를 저으신다....


토요일 아침, 많이 힘든 상황을 넘겼다고 한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조절중이며 피검사를 하고, 비위관일지언정 정상적인 유동식을 급여하던 것도 다시 중단되었다. 대신 여러가지 링거가 추가되었다.


나는 의사의 퇴원승인과 더불어, 요양원에 입소준비를 기쁘게 부탁했었다.

욕창방지를 위해 미리 체위변경도구와 욕창방지 방석 등도 구입하여 준비해둔 상태였다.

에어매트를 가져다테니 미리 전동침대에 설치해달라고도 얘기해두었었다.


그러므로 몹시 당황스럽다.

이제 곧, 최상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한동안이라도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나의 욕심이었을까.


ㅡㅡㅡㅡㅡ

오늘 아침 산책코스를 완주하며, 천변의 나무들, 잎이 지고 앙상하게 말라죽어가는 나무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저 나무도 한때는 새싹을 틔워가며 뜨거운 여름을 늠름하게 견디며 풍성한 가지를 뻗어가며

초록을 뽐내었을 것이다.

그 뜨거웠던 시절은 부질없이 흘러가고 이제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쓰러질듯 허물어질듯 애처로이 서있다.


나의 어머니,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로 세상에 태어났으나
아름답고 뜨거워야할 당신의 청춘마저 저당잡힌 채,
오로지 그 자신에게 짐지워진 끝없는 운명의 굴레만을
묵묵히 감내하며 걸어온 이제는
그토록 볼품없는 육신만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남겨져버렸다.
 

내일 오전, 의사에게서 전화가 올것이고 이즈음 돌변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지금 분명한 것은 월요일 퇴원은 불가할 것이라는 점.

일요일인 현재로서는 주치의도 없어서, 갑작스러운 상태변화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까.....


이렇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어머니의 고통을 아무도 함께 해줄 수 없다는 사실만이 서글프다.





그땐 난 어떤 마음이었길래
내 모든걸 주고도 웃을 수 있었나
그대는 또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 모든걸 갖고도 돌아서 버렸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다짐은, 세워올린 모래성은
심술이 또 터지면
무너지겠지만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그리운 그 마음 그대로
내맘에 담아둘거야
언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남몰래 날려보겠소.
눈이 부시던 그 순간들도
가슴아픈 그대의 거짓말도
새하얗게 바래지고
비틀거리던 내 발걸음도
그늘아래 드리운 내 눈빛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_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J7klzJ9au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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