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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n 08. 2024

2.새로운 전망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또다시 애써서 들어갔던 세탁공장, 그다음 도시락소분업체에서도 또다시 못견디고 뛰쳐나가려는 나 자신을 보며 한없는 자괴감에 빠졌다.....


면접보는 재미라도 붙인 것일까, 싶었다.

면접을 보러 가면 다들 나를 채용하고 싶어 조바심내는 표정을 은밀하게 감지하는 게 즐거운가?

겨우, 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그런데서나 확인하려고 쫒아다니는 것인가 싶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나름 최선을 다해, 이번에는 정말 잘 해보자는 확고한 결심 또한 반복적으로 다짐했다.

열악하고도 힘겨운 무한반복의 육체노동에 마치 남은 생을 모조리 쏟아붓기로 결심하기라도 한 것처럼 흔들림 없이 묵묵하게 하루하루 8시간의 근로를 견디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아, 나도 제발 저렇게 한달, 두달...1년, 10년차 베테랑이 되고싶다!!!!!


내가 마음 속으로 얼마나 간절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를 아는 이들이 보기에는 그저 조금 해보다가 끈기없게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얼치기일 뿐일 것이다.


그래서, 3주만에 다시 옮겨앉은 도시락소분업체에서는 정말 잘 견뎌보려 왜 노력을 안 했겠는가 말이다.

그동안 고통을 감내할 의지력 부족때문에 뛰쳐나왔던 경우와 달리 이번에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인격모욕적인 태도로 갈궈대는 것이야말로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알고보니, 1년전에 입사한 젊은 외국인 여성 이주노동자도, 나보다 1주일 전에 입사한 내 또래의 신입도 나처럼 똑같이 한동안 눈물을 쏟으며 매일매일 때려치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는, 저 부팀장이 초짜를 가르치는 근본적인 태도가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나도 당연히 견디어 내야 하고 시간이 흐른다면 끝내 적응될 것이 자명해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오랜시간을 앞으로 버텨낼 결심을 하기도 전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것은 틀림없는 패자의 변명이다.

나는 상처입은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다음날 또다시 베인곳을 또 베이는 고통을 무한히 감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새로운 결심을 마음먹었던 것이다.



도시락소분업체에 들어간지 일주일 쯤되었을 때, 오후 퇴근 무렵 요양원에서 불현듯 연락이 왔다. 어머니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졌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것이다. 그들은 내 대답에 따라 병원으로 옮길 준비도 할 자세였다.....잠시 그들의 다급한 설명에 혼란을 느끼던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요양원에 다시 돌아가기까지, 대형 종합병원에서 겪었던 치료(급성담낭염)를 위장한 혹독한 인간실험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두번다시 그렇게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사실을 상기했다.

어머니는 이미 90세, 시달릴만큼 시달리며 치료는 끝났지만 결국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였다.

대형병원 응급실에 달려가봤자, 산소를 투여하고 숨이 멎지 않도록 온갖 연명장치를 갖다붙이며 생명연장의 쾌거를 위한 노력의 대상물이 될 뿐이다.


언니와 나는 어머니를 그냥 요양원에서 안정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며칠 후 어머니는 다시 살아나셨다.

요양원 요양보호사와 간호사들이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기구정도만 코로 연결한 채 수분을 공급하며 지켜보았다. 그러자 뜻밖에도 어머니는 다시 또렷하게 말씀을 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내가 날마다 괴로워하며 도시락업체를 왕복하는 동안.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가 싶던 며칠만에 어머니는 또다시 SOS를 보냈다.

우리는 또다시 황망할 걸음으로 어머니 곁으로 모여 들었다.

그때, 요양원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등 요양원 어르신들의 돌봄과정에 익숙하고 경험많은 이들이 조심스레 입을 모았다.


...이번에는 힘들것 같아요....병원에 간대도 특별한 조치는 없을 것이고, 저런 상황이면 남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듯해요...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동생이 황급히 돌아와 곁에서 일주일을 지킨 끝에, 어머니는 길고도 힘겨웠던 이승에서의 삶을 끝내셨다.

그사이 어머니의 동생들과 조카들, 손주들도 곧 멀리 떠나갈 당신께 작별인사를 고했다.

.

.

.

그런 일들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새로운 결심을 굳혀갔. 


도시락업체 팀장과 사장에게 퇴사의사를 처음, 그런 뜻을 밝혔을 때 그들은 나에게 조금더 견디어볼 것을 진심으로 권했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안팎으로 그토록 복잡한 상황을 견딜 인간이 못되는 듯싶었다.

나름 뻔뻔하고 강하다고 생각해왔으나, 역시나 소심하고 민감한 나자신을 자각할 뿐이었다.



더이상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굳어갈 즈음, 나는
새로운 전망을 찾기로 했다.

내 어머니가 마지막 5~6개월여 시간을 보낸 곳이며,
하루하루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 안절부절하며
주1~2회씩 드나들었던 요양원_요양보호사들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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