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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Dec 11. 2024

19.어느날, 요양원 일기_9

_97세, 불굴의 생명력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 가장 주의해야할 일은 낙상이다. 물론, 낙상은 요양원에서만 주의할 게 아니다. 나이 7,80세가 넘어가면 뼈가 약해지게 마련이 아닌가. 신체활력이 떨어지니 움직임도 줄어들고 운동량도 감소하여 매일 헬스클럽에서 의도적으로 근육운동을 하지 않는 한, 근육량은 줄어들고 결국 잠시잠깐의 부주의한 순간에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주희(가명)어르신은 27년생_올해 연세 97세,

작고 왜소한 체구의 할머니이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까맣게 염색된 머리때문에 나이를 확인하기 전에는 언뜻 70~80대로 보일 정도였다. 살집 없는 체형으로 스스로 거동하실 만큼 몸이 가볍고 말씀도 잘 하셨다.

올해 2월에 입소하셨다는데, 매일 오전의 각종 프로그램에 스스로 걸어 나오시어 참여할 만큼 요양원 생활에도 잘 적응하셨다. 주 증상은 알츠하이머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 대화를 해보면 그 증상이 그리 두드러지거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주희 어르신은 연세에 비하면 무척 정정하신 편이에요!


선임자의 설명에 내가 물었다.


아, 그래요?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보기엔 많아야 80대 초반...?


나의 질문에 선임자가 서류를 보여줄 때에야 어르신의 나이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100세가 다 돼가는데, 어떻게 저렇게 짱짱하고 꼿꼿하신 거죠??


타고난 장수유전자가 있기도 할테지만, 그동안 본인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날 오전, 그날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그전부터 자발적으로 이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은 걸어서, 그렇지 못한 분들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여 거실의 테이블 앞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자리를 잡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희 어르신은 안 나오시나요?

오늘은 그냥 쉬시겠다고 하셨어요.


대체로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시는 주희 어르신이 그날따라 불참을 원하셨다고, 어느 요양보호사가 알려주었다.


의사소통이 되든 안되든, 스스로 거동이 되든 안되든 모든 어르신들을 무작정 일으켜세워 프로그램시간이라며 끌고 나가는게 아니다.


언제나 그날의 일정을 말씀드리며 참여를 하시겠는지 여쭙는다.

물론, 가능하면 한 분이라도 더 참여하여 동료들과 교류하고, 신체적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독려하지만, 지나친 강요는 하지 않는다.

어르신들도 어느때는 조용히 쉬고 싶을 때가 있고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싶을 때도 있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날, 주희 어르신은 '그냥 쉬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늘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시기에, 하루 정도는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한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의 의사를 존중해드렸다.


네, 어르신, 그러면 오늘은 쉬시고 내일은 꼭 참여하셔요!


응, 알았어.


그날의 수업은 아마도 만들기 수업이었을 것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거실 테이블에 빙둘러 앉은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를 포함한 요양보호사들이 함께 만들기를 시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저쪽, 복도 끝에서 주희 어르신이 나타났다.

혼자 있자니 심심하다 싶었는지, 주희 어르신이 씩씩하게 걸어나오고 계셨다.


어, 주희 어르신 나오시네요!


그렇게 누군가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했고, 어르신은 빙둘러앉은 사람들을 보자 더욱 마음이 바빴는지 어쨌는지, 우리들 근처로 바삐 걸음을 옮기던 끝에 갑자기 비틀, 하며 그대로 고꾸라져버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다.


어머나!! 어르신----!

아이쿠 어쩌나!


출처:노인건강사업 - 낙상예방과 관련된 검사와 치료.. : 네이버블로그


갑자기 비상사태가 되었다.

언제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서로서로 경계하던 바로 그 일이, 요양보호사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그럼에도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한 찰나에,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아이고, 나 죽네~~

어르신, 괜찮으세요?

아이고 나 좀 살려줘....나 좀....

어디가 아프세요? 가만히 계세요, 일단....


나중에 CCTV를 통해 확인했을 때, 바삐 걷다보니 신고 있던 슬리퍼가 바닥에서 미처 떨어지기전에 다시 발을 디디는 바람에 발이 꼬이며, 어르신이 제풀에 고꾸라진 것이다.무방비상태로 앞으로 체중이 쏠리며 고꾸라지며 한쪽 고관절을 바닥으로 심하게 부딪힌 탓에, 어르신은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꼼짝도 못한 채 신음을 토해냈다.

마침 그 현장에 있었던 나역시 어르신이 넘어지는 뒷모습을 하릴없이 지켜보게 되었다.

그 순간, 우리 모두 가슴이 덜컹했음은 물론이다.

누가 밀거나 과실에 의한 낙상이 아니고, 어르신 혼자서 걷다가 넘어졌다고 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에게 즉각 이 상황이 알려졌고, 잠시후 119구급차를 타고 어르신은 병원으로 향했다.


그후, 요양원은 한동안 어수선했다.

관리자들은 궁금해했다.


-왜 주희 어르신이 혼자 걸어나왔는가?

-왜 넘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는가?


어르신을 혼자 걸어다니게 했다는 사실이 우리의 과실이었다.

그날은 프로그램에 불참하고 그냥 침상에 누워 쉬겠다고 했기에 침상에 계신 것까지 확인하고 상황이 종료되었는데도, 그후에 마음이 바뀐 어르신이 스스로 걸어나온 것까지도, 관리 소홀의 단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넘어지는 순간에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넘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기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누구도 손을 쓸수가 없었음에도 과실이 되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굳이 따지자면, 어르신 혼자 복도끝에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한 요양보호사 우리들중 누구라도 달려가서 단 몇 걸음이라도 부축해드렸어야 했다.

순간의 방심이 한 어르신의 일상을 망쳐버린 것이다.


만약, 그런 상황에 다시 또 직면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날 그 짧은 순간에는 아무도 그와같은 합리적인 판단을 빠르게 하지 못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병원에 간 주희 어르신은 결국 고관절골절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고관절골절 접합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본인의 과실로 인한 사고였다쳐도 관리자로서의 책임감을 떨칠 수 없는 원장님은 거의 매일 병원에 오가고 있었다.


출처: 강북 외상응급센터, 어르신 낙상사고 예방 : 네이버 블로그


97세의 나이에 그 수술을 견딜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의구심을 품었다.

어쩌면 수술 후 자리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대부분의 고관절골절 노인의 마지막 여정이 아니던가.


그 안타까운 주희 어르신의 사태에 대하여 요양원의 우리 모두는 마음이 쓰였고 불편하고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얼마후 들려왔다.


주희 어르신이 요양원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97세의 주희 어르신은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고관절골절 대수술을 견디어 냈을 뿐아니라 잘 회복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다! 인간의 생명력, 의지력이란!

우리는 모두 어르신의 귀원을 기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한편으로는, 다시 돌아온다 해도 예전처럼 활동할 수 없으리라는 막연한 예상을 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가 모두에게 힘든 나날이 되리라는 걱정도 앞섰다.


마침내, 119구급차를 타고 떠난지 두어달 만에 주희 어르신이 다시 돌아왔다.

기저귀를 착용하게 되었고, 의사로부터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침상에서 절대안정을 강력권고받았다.

그러나 어르신은 그 모든 권고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돌아온 첫 날부터 스스로 화장실에 다니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어르신, 이제부터는 기저귀에다 볼일 보세요. 저희가 다 치워드릴테니까, 걱정마시고요....

싫어! 화장실에 갈 거야!

아직 완전히 회복되신게 아니라 당분간 특히 안정하셔야돼요, 아드님도 기저귀 쓰시라고 했잖아요....

내가 가겠다는데, 왜 그러는 거야? 갈 수 있어...


어르신은 그날부터 화장실 문제로 요양보호사들과 갈등을 빚었다.

절대안정이라는 병원의 소견에 따라 기저귀를 착용하고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으나, 주희 어르신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기저귀교체시간이면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졸랐으며, 안 된다고 거부당하면 몰래 혼자서 기다시피 하면서도 화장실에 갔다.

처음에는 그런 일들을 보호자인 아들에게 알리고, 아들은 절대로 안 된다는 의견을 보내오고, 요양보호사의 협박 아닌 협박 속에서도 어르신은 의연하고 꿋꿋하게 화장실에 다녔다.

그러자, 아들도 지쳐가고 우리들도 지쳐갔다.


그럼 알았으니,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해주세요....


아들은 더이상 어머니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우리들도 어르신을 화장실로 모시고 다니게 되었다. 물론 기저귀는 착용한 상태이지만, 일부러 기저귀에 볼일을 보지 않기에 어르신은 꼬박꼬박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정말 대단하시다!

어르신들은 일단 고관절이 부러지고 나면 저렇게 회복되는게 불가능하던데, 주희 어르신은 정말 대단하셔요!

의지력이 정말 굳으시네요.


주희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많은 생각을 했다.

사는 날까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것같았다.

화장실에 다니는 것 외에도 조금 시간이 흐르자, 어르신은 휠체어를 타고 프로그램에 한번씩 다시금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화기를 충전해두고 옆에 끼고 계셨는데, 누군가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 있었다.

요양원에 다시 돌아온 뒤로 보호자인 자녀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듯했는데, 내가 근무하는 동안에는 한번도 그 전화가 울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한 번씩 전화기가 충전돼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잠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때도 전화기를 꼭 들고나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달이면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어르신이 지금쯤은 지팡이를 짚고 스스로 걸어다니시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여기까지 글을 써두었던 바로 어제, 나는 오랜만에 요양원에 찾아갔다.

1월부터 다시 근무를 하기 위해 한번은 가봐야 했다.

내가 없는 몇달 사이에 새로운 어르신들이 입소하셨고, 근무자들도 여럿 충원되어 있었다.

엊그제 주희 어르신에 관한 글을 써둔 터라, 나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에게 물었다.


주희 어르신 잘 계세요? 그전보다 더 많이 나아지셨어요? 이제 걸어다니시려나?


당신이 보여주었던 인간의 생명력과 불굴의 의지력을 떠올리며 어르신의 안부를 물었을 때, 동료는 말했다.


주희 어르신, 돌아가셨어요....

네에? 정말로? 왜....열심히 걸으시려고 노력하시고 화장실에도 다니려 애쓰셨는데....

식사를 너무 안 하셔서, 나중에는 체력이 너무 떨어지니까........결국은 돌아가시는 거죠....


내가 있을 때도, 어르신은 식사를 정말 강력히 거부하시곤 했다. 다치기 전에는 그래도 밥을 드셨으나, 병원에서 돌아온 뒤로는 죽 또는 미음을 드셨는데, 그나마도 매끼니마다 한두 술 뜨는게 전부였다.

그때마다 식사전쟁을 치렀다.


어르신, 약 드셔야 하니까 입맛 없어도 조금만 더 드세요...그렇게 안 드시면 안돼요...

먹기 싫어...입맛이 없어...안먹어.....저리 치워....


내가 식사담당을 할 때도 늘 이런 식이었고 다른 근무자들이 담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각하게 한 술도 안 뜨고 거부할 때도 많아서 형식적인 식사가 끝나면 식이보조음료를 드려야 했는데,

단백질음료인 뉴케어 1팩도 다 비우지 않으셨다.....

결국, 강제급여를 위해 비위관을 삽입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보호자는 뜻밖에도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 아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어떤 결단을 내렸던가 보다.


비위관을 꽂아 식사를 하시게 한들, 얼마나 더 사실까, 97세이면 충분히 사셨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얼마뒤, 주희 어르신은 끝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들으며, 나는 마음이 아파왔다.

어쩌면, 그때 고관절 골절상을 입지만 않았더라면 어르신은 충분히 100살까지도 누리실 수 있었을 것이다.

주희 어르신이 그사이 좀더 회복되셨을까 기대했던 나는, 불과 서너 달 사이에 그 외에도 여러 분들이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얘기를 들으며,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요양원은 새로운 시작이 아닌 생의 마지막을 향해 놓인 승강장이 아닐까 싶다.

여러가지 노환에 시달리며 아무도 돌보아 줄 이 없는 집보다는 그나마 매일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는 곳이지만, 결국 이곳은 각자의 생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 시작이 곧 명백한 끝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요양원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지루하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하루하루일지라도
그 하루하루가 어르신 본인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할 것인지,
내가 짐작하는게 가당키나 할 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나는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97세까지 살았으나 충분히 살았다고 감히 얘기해도 될까,
그렇게 시체처럼 누워만 있느니 차라리
이제 그만 안식을 찾으셔도 되겠다, 고 짐작해도 될까.....

어르신들의 나이가 되어 저 낯선 침상에
누워있게 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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