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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Apr 20. 2023

21세기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지니, 너 없는 동안》(이은정,이정서재)를 읽고


안녕? 지니! 나는 ‘편지요정’이라고 해. 인간계에서는 나를 그렇게 부르곤 하는데, 요정계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는 나의 존재를 잘 모를 거야. 요정 신입인 내가 요정계에 입문한지 천년이 넘은 너에게 반말을 하는 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너도 알지? ‘선배’니 ‘신입’이니 하는 말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말이란 걸. 그러니 우리는 그런 걸 따지지 않기로 하자. (책을 보니 동안이도 너에게 처음부터 반말하더라 뭐.)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너의 존재를 알았어. 어릴 때 네 이름을 들었지. 알라딘 램프 속에 살면서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이라고. 어른이 된 후에는 너보다 램프 이름을 더 많이 듣고 불렀어. ‘알라딘’이라는 내가 ‘라딘이’라고 부르는 인터넷 서점이 있거든. 맞아. 네가 등장하는 《지니, 너 없는 동안》(이은정,이정서재)도 그곳에서 구입을 했어. 책이 도착한 건 좀 됐는데 내가 책을 읽은 건 지난주였어.   

  

사실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하이디’가 부른 ‘진이’라는 노래를 떠올렸어. ♬진이 너 없는 동안에 난 한 번도 널 잊은 적 없고♬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말이야. 그 후, 띠지에 ‘21세기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났다’라는 카피를 보고는 네가 AI 쯤 되는 줄 알았어. ‘시리’같은 그런 애 말이야. 그런데 넌, 진짜 ‘램프의 요정’ ‘지니’였더라! ‘엄지손가락’만하고, 팬티 한 장을 입고, 요란한 털모자를 쓴 분홍색 생명체 지니!   

  

네가 주전자에서 나와 동안이와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동안이는 무슨 소원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지. 그런데 뭐라고? 불행만 들어줄 수 있다고? 동안이가 아닌 타인이 불행해지는 소원만? 헐 – 그런데 말이야, 나는 궁금했어. 동안이가 누구의 불행을 빌게 될지. 그 ‘불행한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면 동안이는 어떻게 될지 말이야. 그래서 쉬지 않고 책을 읽었어.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거든.     


책은 진짜 재밌었어. 지니 네가 ‘불행한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나는 네 명의 친구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는 게 좋았어. 동안이는 동안이 나름대로, 설아는 또 설아 나름대로, 고은과 부단도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 ‘강요’와 ‘속박’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깊이 고민하고 더 나은 것을 위해 한 발씩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깊이 깊이 감동하기도 했지.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어. ‘쳇! 이런 청소년이 어딨어? 이런 애들은 소설에나 있는 거야!’라고. 그런데 말이야 지니야. 나는 그런 아이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해. 세상이 뭐라해도 자신만의 철학으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아이들 말이야. 나도 그런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고 (내가 인간계에서 활동한 일들을 조사 해본다면, 내가 그런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나는 이 글을 쓴 이은정 작가도 동안과 설아, 부단과 고은 같은 아이들을 현실에서 만났을 거라고 생각해. 작가는 아마도 그 아이들을 통해서 어떤 희망을 보았고, 소설 속에 그들을 등장시켜서 세상에 밝은 빛의 가루를 뿌리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이은정 작가가 그동안 써온 책들과 ‘다른 결’을 갖는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하나의 결만 갖고 사는 건 아니니까. 이 또한 이은정 작가의 ‘또 다른 결’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이은정 작가가 다음에도 ‘평생 소설책 한 권도 완독한 적 없는 사람이 완독할 만한 소설’을 또 써주었으면 좋겠어. 너는 ‘불행한 소원’만 들어주는 요정이 되었지만, 요정계에 ‘민원접수’라도 해서 내가 바라는 이 소원은 들어주기 바라. 


잠깐, 너 아직 ‘거기’(에필로그 참고)있어서 민원접수도 못하는 건 아니지? 너도 요정이니까 아무리 ‘거기’에 있더라도 이런 일은 처리할 수 있다고 믿어 볼게.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일게. 우린 다음에 또 만나자. 안녕. 

    

2023년 4월의 어느 날, 지상에 있는 편지요정이 씀.     


《지니, 너 없는 동안》(이은정,이정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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