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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Mar 04. 2024

엄마와 아들의 성장 편지

청소년의 햇살, 2024년 2월호 

     

『소년기』 라는 책이 있다. ‘아동기의 후반’이라는 뜻을 가진 이 책은 열네 살 아들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작품이다. 얼핏 보면 ‘청소년과 엄마가 주고받은 편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편지는 조금 특별하다. 청소년기에 있는 남자 아이가 편지를 썼다는 것도,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은 곳이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일본이었다는 것도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편지는 1944년 5월 10일, 열네 살 소년 이치로가 엄마에게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쉼 없이 공습경보가 울리는 도쿄에 살던 가족은 전쟁의 위험을 피해서 시골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한다. 소개(전쟁 중 공습이나 습격을 피해 사람과 자원을 분산하는 일)의 일환으로 결정한 일이지만, 엄마는 아들에게 도쿄에 남고 싶은가를 묻는다.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아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한 엄마의 배려였다.


이치로는 도쿄에 남기를 원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놓고 싶지 않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떠나기를 바라는 엄마에게 자신의 대답이 상처가 될까봐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엄마의 마음도 충분히 알고 있으며, 떨어져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다고. 그러나 자신은 도쿄에 남아 공부도 하고, 혼자 독립적인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 편지를 받고 엄마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리고 떨어져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함께 준비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편지는 이치로가 홀로 도쿄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이치로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편지에 적는다. 자신의 눈에 들어온 세상, 집에서 책만 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 가족들을 위해서 식량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엄마에 대한 걱정,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종이 위해 적는다. 엄마 또한 이치로에게 무엇이든 터놓고 이야기 한다. 이치로가 궁금해 하는 것들과 자신이 처한 상황 등을 솔직하게 알려준다. 이런 엄마의 ‘열린 마음’은 이치로에게 ‘더 없는 기쁨과 우월감마저 느끼게’했고, 그것을 통해 두 사람은 더 단단하게 결속되었다.      


이치로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이치로의 엄마는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도 ‘삶을 바라보는 진지한 태도가 있다’고. 겉으로는 불성실해 보이고, 거칠어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목숨을 걸 만큼 진지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치로의 말을 경청했고, 아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치로의 엄마는 알고 있었다. 청소년기에 ‘이해받고 존중받는다는 것’이 그들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것을.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는 아이들도 고민과 반성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두 사람의 편지는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이 어떤 응원과 지지를 바라는지, 부모는 어떻게 그들을 살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나는 그 해답을 이치로가 쓴 편지의 한 대목에서 발견했다. 


‘저도 매 순간 나만의 진리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저라는 전차가 탈선으로 사고가 날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전차가 고장 나지 않게끔 어머니가 잘 정비해 주세요. 그렇다고 브레이크를 밟지는 말아 주세요. 운전은 제가 할 테니 어머니는 선로를 봐 주세요. 튼튼한 선로를 만들어 무사히 종점까지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p169)     


청소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운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들이 가는 길을 잘 살펴주는 일. 그것이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성장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 <청소년의 햇살> 2024년 2월호에 기고한 글


『소년기』 (하타노 이소코 지음, 정기숙 옮김, 우주소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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