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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가 되고싶다 Dec 19. 2020

[2] 며느라기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남편이 쓰는 '며느라기와 현실' Ep2.

큰집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늘 시댁 어르신들의 생일과 안부를 챙기셨다.


1년에도 몇 번씩 가족행사에 

참석(투입)하(되)셨다.


아버지와 함께 네 식구가 차를 타고 가기도 했지만,

가끔은 어머니 혼자 큰 가방에 짐을 가득 싣고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터미널까지 가서

'큰집'이라 불리는 시골 행 버스를 타기도 하셨다.


큰집에 도착한 어머니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친척 어르신들께 가볍게 인사를 드린 후

어머니에게서 건네 받은 짐을 '옷방'에 옮겨두고

다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안방'으로 갔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에서


부엌은

어머니와 형수님, 큰어머니, 여자들만 출입 가능한

맛있는 '수제 음식'이 가득했던 곳.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 쉽사리 나올 수 없는 곳이었고,


옷방은

친척들의 옷가방과 옷가지가 수북하게 쌓여있던 방. 그리고 피곤한 남자분들이 휴식을 취하는 방.


안방은

항상 큰아버지가 근엄한 자세로 앉아계셨고  TV에서는 늘 재미없는 지역 뉴스가 들려오는


그런 공간이었다.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두 아이를 챙기며 큰집까지 내려와서 온몸의 피로가 채 풀리시기도 전에, 아니 그 피로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 쌓인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부엌에 계신 큰어머니, 형수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레 고무장갑을 집어 올리시고는


곧바로 설거지를 시작하셨다.


어머니 앞에는 항상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었고 그 설거지가 끝나갈 때 쯤이면 내가 먹은 간식 그릇, 내가 마신 물컵, 누군가 사용한 그릇이 어머니의 싱크대로 향했다.




무지(無知)


나는 몰랐다.

미처 몰랐다.


난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고

아니 사실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부끄럽게도

난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실까..에 대한

일말의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그 상황이

누군가를 거쳐 우리 어머니에게 이어졌듯,


미래의 내 아내에게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어린시절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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