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색체는 빛의 고통이다.”
대문호 괴테가 한 말입니다. 나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빛에게 고통이 있다면 바로 어둠이라고 생각했는데, 빛의 고통은 오히려 아름다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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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만물이 빛의 고통이 없으면 제 색깔을 낼 수 없듯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도 고통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만물이 색채를 지닌다는 것은 바로 고통의 빛이 있다는 증거이며, 제 삶에 고통이 있다는 것은 바로 제가 인간으로서 건강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증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인생에서 찾아오는 시련을 싫어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자신만은 피해가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고통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고, 결국 언젠가는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믿음은 마흔을 넘어서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삶 속에서 마주하는 고통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다. 그것은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삶의 일부처럼 언제든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내게도 고통은 수시로 찾아온다. 살아가는 마흔 해 동안 아픈 시련을 꼽으라면 두 손으로 헤아려도 부족하다. 경제적인 궁핍의 시기가 있었고, 연애의 아픔이 있었으며, 친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깊은 상처도 있었고, 불현듯 찾아온 외로움에 몸서리치기도 했으며, 가족의 질병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픔은 ‘내 인생 최대의 시련'이라 여겨지며 나를 힘들게 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은 모두 다 추억 속에 묻혔다.
위에 소개한 문장을 쓴 정호승 시인을 나는 그가 쓴 시가 아니라, 산문집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유독 ‘고통’을 주제로 한 시와 산문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그의 삶이 수많은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가 시인으로 살면서 ‘고통’이란 주제를 얼마나 깊이 있게 끌어안았는지를 알게 한다. 이는 그가 한 말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시는 고통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꽃”이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고, 최근 출간된 그의 책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서 본 “신은 가끔 인간에게 빵 대신 돌멩이를 던지는데, 어떤 이는 그 돌을 원망하여 걷어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지고, 또 어떤 이는 그 돌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짓는다”는 표현이 인상 깊다.
이 모든 것이 시인에게 고통은 극복이 대상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임을 알게 한다. 나 역시 ‘고통’이라는 주제는 편치 않다. 스스로에게 정말 이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앞으로도 내 앞에 설 고통을 불편하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 본다.
아마도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빛의 고통이 주는 아름다움’은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더불어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산고의 고통을 통해 태어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빛은 고통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어머니가 받아들인 고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쩌면 나도 고통 앞에서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아픔이 결국 빛이 되어, 나를 한뼘 더 성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끝으로 유대인 수용에서 살아남아 로고테라피를 창시하고 『죽음의 수용소』라는 대작을 남긴 빅터 프랭클의 말로 끝맺음 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에 대한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