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트업 오답노트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은 1%도 되지 않으며, 35세 미만 청년들이 창업한 사업체의 평균 생존 기간은 2.3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저는 창업한 지 2년 8개월이 지났고, 아직 폐업하지 않았습니다. 생존했으나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어요.
어릴 적 첫 창업을 했을 때는 일이 왜 잘 풀리는지 몰라 두려웠는데, 이번 창업에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두려웠어요. 야심 차게 준비한 계획들이 계속해서 어긋났고, 공동 창업자에게 실망하고, 사기를 당하고, 대행사와 법정 소송을 벌이며, 건강에도 적신호가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 외부적인 요인보다도 더 저를 흔들었던 것은 제 경력과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었어요. 수 만 시간 동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배운 것들이 왜 통하지 않는지,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법을 배우기 위해 들어갔던 글로벌 대기업에서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닌지, 혹은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없는 사람인지 매일같이 자문했습니다. 왜 안되는지에 대해 분석을 하다 보면, 스스로를 공격하고 자기반성에 빠지곤 했어요. 솔루션이 직관적이지 않고,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며, 저를 포함한 팀의 역량과 구성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부족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신생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능력이나 돈, 네트워크보다 '운'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브랜드를 제대로 세우는 데에는 수년이 걸립니다. 자원이 부족한 신생 기업은 물론이고,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도 마찬가지예요. 세계 최고의 브랜드 전문가들이 모여 우수한 제품을 론칭하고 처음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브랜드를 홍보하더라도, 여러 번의 피봇 끝에 운이 찾아와야 의미 있는 소비자 반응이 나타나고 브랜드가 비로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능력과 제품력,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운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힘과 끈기가 중요해요. 끈기를 통해서만 운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타트업에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 강력한 동기가 동료에게 실망을 하고, 소송에 휘말리며, 건강을 잃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피봇해나 갈 끈기를 주고, 운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끈기가 태도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강력한 동기가 나타내는 결과이자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찾아오는 어려움에 맞서고 돌파해 나가려면 지속 가능한 힘이 필요합니다. 태도는 새로운 경험에 따라 쉽게 변화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면, 동기는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내적 추진력으로 지속적인 노력과 행동을 이끌어냅니다. 결국, 우리가 겪었던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나 솔루션의 퀄리티, 팀의 역량보다도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2년 8개월 동안 수억 원의 수업료를 지불하며 중요한 교훈들을 얻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몇 가지를 다르게 해보고 싶어요.
1.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가 분명한 일을 선택하기.
사업은 불확실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일의 추진력을 얻고, 빠르게 제품을 론칭하고 싶은 마음에 할 수 있는 일, 어떻게 해야 할지가 명확한 일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지속 가능한 추진력은 강력한 동기와 열정에서 나옵니다. 다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왜 해야 했는지가 분명했던 일을 선택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 일을 할지를 아는 사람들보다는 ‘왜’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솔루션을 고민할 것 같습니다.
2. 실패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실패 비용 줄이기.
자원도, 자본도, 브랜드 인지도도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핵심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겪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에요. 따라서, 어떻게 실패를 할지를 디자인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소비자 조사를 진행하고, 제품 수천 개를 주문하고, 브랜드 스토어와 마케팅 플랜을 만들고 수 천만 원을 들여 홍보를 하며 실패를 하는 것이 아니라, 론칭 전 간단한 제품 프로토타입을 기반으로 테스트 광고를 집행했다면, 실패의 시간적, 재정적, 심리적, 조직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을 거예요.
3. 화제가 될 실행보다, 화제가 될 문제에 집중하기.
잘되는 제품은 예쁘지 않아도, 노출이 적어도 성공합니다. 진정으로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의 본질은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알아보거든요. 이런 제품들은 외관이 훌륭하지 않고, 고퀄리티의 크리에티브가 없고, 마케팅 비용도 거의 쓰지 않는데도 고객이 스스로 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오답 노트에 실패 경험이 추가되었습니다. 오답노트를 만들 때의 핵심은, 문제를 다시 복기하고 다음번에는 다른 접근으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어려웠던 2년 8개월이 담긴 오답노트의 한 페이지가 다음에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늘 용기와 영감을 주는 Charlie Mackesy의 그림으로 마무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