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 이즈 본'을 보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래 영화 보고 잘 우는 편은 아닌데, 같이 본 친구가 훌쩍거려서 그런지 오래간만에 영화 보면서 펑펑 울었다. 마음 놓고 울어본 일도 오랜만이라, 끝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여운에 잠겨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사실 단조롭고 안전하게 전개된다. 사실 브래들리 쿠퍼의 감독으로서 능력이나 레이디 가가의 연기, 영화 사운드트랙 이외에는 좋은 점수를 줄 만한 별다른 요소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연민이 들어서, 그들의 사랑을 추모하지 않으면 사운드트랙을 듣다가도 질질 짤 거 같아서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Tell me something, girl
유명 밴드의 보컬인 잭슨(브래들리 쿠퍼 역)은 공연을 마치고 근처 바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앨리(레이디 가가 역)의 공연을 감상하게 된다. 그녀의 공연이 꽤나 인상적이었는지 대기실까지 찾아가 대화를 건넨다. 직접 곡도 쓰고 피아노도 친다는 이야길 듣고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술 한 잔 할지 제안한다. 둘은 경찰들이 자주 찾는, 늦게까지 운영하는 바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잭슨을 알아본 경찰 한 명이 시비에 가까운 발언을 한다. 잭슨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좋게 좋게 대꾸를 해주는데, 이를 참지 못한 앨리가 한 방을 날리고 나서야 짧은 해프닝(?)이 종결된다. 명색이 피아노를 치는 사람인데 주먹을 날려서 앨리의 손이 퉁퉁 부을까 봐 잭슨은 마트에서 붓기를 가라앉힐 얼음이며 붕대를 산다. 앨리는 잭슨이 어쩌면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지,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게 굴 수 있는지 궁금해하지만 그는 그저 웃고 만다.
마트 앞 주차장에서 철퍼덕 앉아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던 앨리는 그를 보며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잭슨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주면서 자기 공연에 오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이게 웬 횡재냐며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갈 법도 한데, 앨리는 직장에 나가야 한다며 거절한다. 사실 직장은 핑계고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그녀의 아버지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그녀는 재능이 있지만 스타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식의 발언을 내뱉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마저 응원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그녀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잭슨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매니저를 보내 공연장에 오라고 설득한다. 이 또한 거부하며 잭슨과의 시간을 백일몽이라 생각하는데, 다행히도 직장 상사에 형편없는 대우에 자극을 받아 일을 때려치우고 잭슨의 공연장으로 달려간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잭슨의 모습에 감탄하던 중 그가 앨리에게 다가와, 어제 불렀던 그 노래를 살짝 편곡했으니 같이 부르자는 제안을 한다. 용기를 내어 앨리는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고 이를 시작으로 잭슨의 투어에 앨리가 동행하게 된다.
You found the light in me
Lovers in the night. Poets tryin’ to write
We don’t know how to rhyme but damn we try
But all I really know You’re where I wanna go
The part of me, that’s you will never die
- Always remember us this way 중
둘의 공연 후, 그의 옆에서 매니저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이복형 바비(샘 엘리어트 역)은 앨리에게 그렇게 공연하는 잭슨의 모습을 본 것은 오랜만이라고 말한다. 사실 잭슨은 꽤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먼저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알콜 중독을 겪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인기도 식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투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 둘은 서로가 서로의 뮤즈가 됐고 잭슨도 점점 안정적으로 변해간다. 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지먼트에서 앨리에게 계약을 제안하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둘의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앨리는 어쩐지 잭슨이 자신을 질투하는 듯하고 잭슨은 그녀가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로 변했다는 생각에게 말다툼을 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서로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기에 결혼까지 하는데, 여전히 앨리는 스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고 잭슨은 저물어가고 있는 참이었다. 그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은 채로 앨리는 그래미에서 신인상 후보로 지명받았고 잭슨은 그래미 추모 공연의 보컬도 아닌 기타리스트로 나서게 된다. 이 비참함을 티 내는 것조차 비참했을 그는 다시 술과 약에 빠지고 그 상태로 무대에 올라선다. 겨우겨우 공연을 마치고 앨리의 수상을 축하해줘야 했는데, 그만 그녀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순간 옆에서 방뇨를 하고 만다.
어떻게 앨리에게 영광스러운 순간에 네가 이런 망신을 줄 수 있냐며, 앨리의 아버지는 분노하며 술에 쩌든 잭슨을 샤워실에 밀어 넣는다. 놀라운 건 앨리의 모습이었다. 그에게 정이 떨어질 법도 한데,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울부짖는다. 이 장면에서 앨리의 잭슨에 대한 사랑이 어떠한지 와 닿았다. 그 사람의 치부마저도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하고 있구나-하고. 이후 잭슨은 한동안 알콜중독 치료센터에서 지낸다. 면회를 온 앨리에게 아이처럼 펑펑 울며 당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용서를 구한다. 도리어 그를 위로하며 오히려 자신은 당신이 집으로 안 돌아올까 봐 걱정된다며, 기르는 강아지 찰리와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오라고 격려한다.
I'm not moving on
치료를 마친 후, 돌아가신 아버지 문제로 크게 다퉈 한동안 사이가 멀어졌던 바비가 그를 집으로 데려다준다. 차에 내린 잭슨은 머뭇거리며 형에게 얘기한다. 사실 아버지가 아닌 형을 닮고 싶었다고. 바비는 잭슨이 알콜 중독에 걸리고 불안정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 아버지를 원망하고 저주한다. 그런 아버지가 뭐가 좋다고 그를 그리워하는 동생이 이해되지 않았고 섭섭했다. 그를 키운 건 자신이었으니까. 머리카락이 모두 희끗해져서야 사실은 동생이 아버지가 아닌 자신을 닮고 싶어 했다는 말을 듣고 눈가는 잔뜩 붉어진 채로 감정을 억누르는 바비의 모습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그가 얼마나 헌신했을지, 동생을 아꼈는지 느껴져서. 집에 돌아온 잭슨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곡을 쓰고 피아노를 치고 찰리와 마당에서 뛰놀고, 앨리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그런 일상. 힘들게 돌아온 잭슨에게 당장 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한 앨리는 매니저에게 유럽 투어에 잭슨을 데려가고 싶어했지만 이를 거절당하자 투어를 취소하겠다고 한다. 미국 투어의 마지막 날, 매니저는 잭슨을 찾아가 심하게 비난한다. 네가 저지른 실수를 수습하느라 개고생 했고 너는 다시 술을 마시게 될 텐데, 그때는 앨리 인생에 네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아, 이때의 잭슨의 얼굴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오직 관객만이 안다는 게 화가 날 정도였다.
잭슨은 면역력이 없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니 앨리의 매니저는 그에게 총을 건네준 거나 다름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앨리는 유럽 투어 대신 미국에 남아 새 앨범을 준비할 거라며 그에게 거짓말하고 오늘 밤 같이 공연하자고 제안한다. 앨리가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고 자신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생각에, 공연장에서 앨리가 자신을 기다리던 그날 밤 하지 말아야 할 결정을 내린다. 다시는 그 누군가와도 사랑할 수 없고 예전처럼 노래할 수 없기에 영원히 그녀를 떠나기로. 그 시간 공연장에 있던 앨리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남편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응원을 부탁하며 공연을 마친다. 나는 서로에 대한 응원이 이토록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지, 그 다름이 너무나도 비극적이었다. 잭슨의 자살로, 남겨져버린 사람의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앨리에게 그못지 않게 상처 받은 바비는 '너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닌 잭슨의 잘못이다'며 위로한다. 그리고 앨리는 그의 팬들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 공연을 열어 잭슨이 자신을 위해 만든,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곡을 부르며 영화는 끝난다.
마무리하며
잭슨이 정말로 개차반에 가까운 인간이었다면 이렇게 슬펐을까 싶다.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고 앨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까, 그리고 앨리가 자신의 결정에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후회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니까 크게 울컥했었다. 인생 선배를, 뮤즈를, 연인을 한 명만 잃어도 삶의 일부가 나가떨어지는 기분이 들 텐데 앨리에게 잭슨은 그 모든 것이었다.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끌어주고 영감을 주고 사랑을 주었던 상대였다. 늘 콤플렉스였던 코를 예쁘다고 그것만 보였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사람을 상실한다는 게 늘 마음 한편에 채울 수 없는 구멍이 났다는 말처럼 들려서. 밤 11시 극장 앞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