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령 Jul 24. 2020

여러 우물 얕게 파기

책에서 얻은 영감으로 머릿속 정리하기

대학교 2학년 때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으면 주위 친구들에게 본인에 대해 물어보라는 글을 읽었다. 다음날 만난 친한 친구에게 나의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을 말해달라고 했다. 

내 친구는 크게 고민하지 않은 채 '실행력은 뛰어나나 지구력(지속력)이 부족하다.'라고 표현했다.

7-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히 남아있는 이 말은 지금까지도 나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실행력이 뛰어나다는 건 귀가 얇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귀도 얇고, 결정을 하고 나면 왜 그 결정을 내려야만 했는지에 대해 합리화하길 좋아한다.

예를 들면, 대학교 때 유럽 여행을 위해 1년을 휴학하고 일자리를 찾던 중 호주 워홀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어차피 돈 벌거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자! 며 나의 뛰어난 결정에 감동하고는 그날 바로 비자를 신청했다. 그리고 결정한 날로부터 채 3주가 지나기 전에 호주 시드니로 출국했다. 

또, 이번 봉쇄령 기간에 카메라도 있겠다, 중학교 때 아이돌 영상 편집하던 경험을 살려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냅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봉쇄령이 끝난 후, 일에 시작하자마자 '그냥 확 그만두고 좀 더 쉴까?'라는 생각을 한 날로부터 2주 만에 자발적으로 백수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가장 큰 단점은 지구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시작은 잘하는 데 오래 지속하지를 못한다.

유튜브는 6개의 영상 제작 후 나 몰라라 한지 4달이 넘어가고 있고, 다시 잘해보자고 시작한 블로그는 글을 안 쓴 지 한 달이 넘어간다. 체중 감량을 위해 시작한 운동은 한 달을 넘기기가 어렵고, 심신 안정을 위해 구입한 뜨개질 용품은 구석에 처박힌 지 1년이 되어간다. 


한 우물을 깊게 파지 못하고 여러 우물을 얕게만 파다 보니, 눈에 띄는 성과나 실력 향상을 얻기가 어렵다. 

특히나 자존감이 낮을 때는 '나는 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지?'라는 생각에 마음속 깊숙이 땅 파고 들어가기 일수다. 물론 많은 경우, 아직 나에게 맞는 걸 찾지 못한 걸 뿐이라며 자기 위안으로 끝이 나지만. 


못할 게 없을 것 같던, 실패해도 금방 일어날 수 있었던 20대 초와는 달리 갈수록 도전하기가 힘들다. (딱히 가진 것도 없지만) 그나마 갖고 있는 것마저 다 잃어버릴까 봐 무섭고, 어차피 안될 거라며 스스로에게 한계를 긋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이를 먹고 있음에 슬퍼진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비록 홈런을 날리지 못하더라도 온 힘을 다해서 크게 휘두르고 싶다.

- 전지영, 책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전적으로 제목이었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무너져서 힘든 시기에 마음을 잡고 퇴사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준 책이 2권 있는데, 그중 바로 한 권이 책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이다.

(참고로 다른 한 권은 '오늘의 좋음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습니다./오지혜 지음'이다.)

책을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배우는 것도 많았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는데, 특히 인용한 부분에서 여운을 깊게 받았다. 


퇴사를 한 가장 큰 이유는 '휴식'이었다. 일을 구해야 한다는 초조함 없이, 내 하루를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다는 여유를 갖고 싶었다. 

내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그동안 미뤄뒀던 새로운 일들을 시작했다. 처음엔 시간대별 할 일을 정해놓고 생산적으로 하루를 채우려고 했지만 스트레스를 받자마자 멈췄다. 무엇보다 나의 우선순위는 몸과 마음의 안정이니까. 

확실히 일을 할 때보다는 게으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동안 미뤘던 휴식을 즐긴다 생각하며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매일 글쓰기, 영상 편집 기술을 심도 있게 배우기, 코딩 기초 강의를 들어보기 등 아직까지 꾸준히 하는 일도 있고 하다가 그만둔 일도 있다. 그렇게 나에게 맞는 루틴을 만들고 심적인 여유가 생기니, 배우고 싶은 일들이 많아지고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여전히 새로운 우물을 얕게 파는 쪽이지만, 이렇게 여러 우물을 파다 보면 내가 꾸준히, 심도 있게 배우고 싶은 우물을 하나쯤은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Personal Polic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