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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령 Aug 20. 2020

고양이의 외출을 허용하기까지

뉴질랜드와 한국의 반려동물에 대한 문화차이

**  글은 절대 고양이의 외출을 추천하는 글이 아닙니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반려묘에 대한 문화가 다르다는 , 그리고 그로 인한 저의 심적 갈등을 적은 글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국에서 절대 절대 절대 고양이의 외출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



한국의 수의사들의 유튜브를 봐도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외출을 할 필요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고양이가 집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뉴질랜드는 문에 캣 도어가 흔하게 달려있을 만큼 고양이의 외출이 당연한 나라다.

뉴질랜드에서는 고양이의 가장 중요한 본능은 사냥 본능이기 때문에 나가서 쥐도 잡고, 새도 잡고, 각종 벌레도 잡아가며 본능을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루나를 데려온 병원에서 루나가 백신을 다 맞을 때까지는 외출을 시키지 않는 걸 추천한다고 해서 약 2달간은 집고양이로 키웠다. (수의사도 고양이의 외출을 당연시한다는 말이다.)


루나를 데려온 이후에 외출을 시킬 것이냐 말겠이냐로 남자 친구와 오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의 걱정거리는 루나가 나가서 집에 잘 돌아올 수 있을지, 루나보다 큰 강아지나 고양이들한테 공격당할 가능성 그리고 로드킬 이렇게 3가지였다.


남자 친구는 일단 루나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따뜻한 잠자리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이 집 밖에 없다는 걸 우리가 그동안 루나에게 보여줬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또, 7년째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남자 친구네 형네 커플과 10년 넘게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동네 사람들의 예를 들며 저렇게 하루 종일 외출을 시키는 데도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무엇보다 남자 친구는 우리 마음 편하자고 루나를 하루 종일 혼자 집에만 가둬두는 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결정은 나에게 맡겼다.


루나는 태어나서 한 달 만에 우리 집으로 왔고 약 두 달 동안 집안에서만 머물며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또한 잠도 내 옆에서만 자고 고양이가 엄마한테만 하는 Kneading (일명 고양이 꾹꾹이)를 나에게 꾸준히 하고 있었으니 우리 사이에 강한 유대감이 있었다. 또, 대부분의 뉴질랜드 사람들은 고양이에 호의적이라는 것과 당시 우리 집이 차도와는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만 조심하면 로드킬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서 루나의 외출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당시 뉴질랜드와 유럽에서 온 많은 친구들이 나의 마음속 갈등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목걸이를 맨 날, 19년 1월 23일


백신을 맞기 전날 루나의 목에 작은 벨과 내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를 걸었다. 위에 사진에서 보다시피 당시 너무 작았기 때문에 목걸이의 끝부분을 많이 잘라내야 했었다.

참고로 고양이가 나뭇가지나 철에 걸렸을 경우 목걸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목걸이와 고양이의 목 사이에 두 손가락이 넉넉히 들어갈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백신을 맞고 난 후 뒷마당에서 루나가 첫 산책을 했다.

항상 루나가 못 나가게 급하게 닫다가 문을 활짝 열어두고 밖에서 나오라며 이름을 부르자 주춤하더니 나와서 이곳저곳 냄새를 맡던 루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 2-3주 동안은 남자 친구나 나와 함께 뒷마당에서 30분에서 1시간씩 외출을 하다가 중성화를 시키고 난 이후부터는 혼자서 원할 때 산책을 할 수 있게 캣 도어를 열어두었다.


루나의 첫 산책 날, 19년 1월 24일


외출을 시키자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지키고 있는 규칙은 밤에는 집에서 머문다는 것이다.

해가 지면 캣 도어를 잠그고 아침에 출근할 때 캣 도어를 열어 낮동안은 원하는 만큼 외출할 수 있게 허락했다. 처음엔 밤에도 나가고 싶어서 문 앞에서 울더니 2-3일 지나자 익숙해져 갔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루나는 다치거나 하지 않았고, 밖에 있다가도 우리가 집에 도착하는 차 소리가 들리거나 뒷마당에서 이름을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왔다. 무엇보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집안 곳곳에 흠집을 내고 공격성까지 보이던 루나가 외출을 하고 난 뒤로는 훨씬 후련해 보이고 행복해 보였다.


'에너지를 쏟아낼 만큼 집에서 열심히 놀아주면 되지 않느냐!'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집에서도 열심히 놀아주고 있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하루 종일 집안에서 우리만 기다렸을 루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차라리 우리가 외출했을 때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놀다가 저녁에 함께 집에서 있는 게 모두에게 낫다고 생각했고 그게 당연한 뉴질랜드에서 키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조하자면 한국에서는 루나를 절대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올 초에 새로운 동네로 이사 왔다. 현재 사는 곳으로 오기 전에 임시 거처에서 6주가 지냈어야 했는데, 그때는 루나의 외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전에 살던 동네와 너무 멀어서 루나가 혹시 나갔다가 예전 집을 찾아가려고 하는 게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현재 사는 곳에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루나의 백신 날이어서 새로운 동물병원에 등록도 하고 건강검진도 함께 받았다. 우리는 이사 오고 2주 정도 후에 외출을 시킬 예정이었는데 수의사님이 한 달 정도는 집 안에만 머무는 것이 좋다고 권유하셔서 루나는 한 달간 집고양이로 살았다. 자유롭게 밖에서 대소변을 해결하다가 모래 화장실을 사용하려니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루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지금도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은 때가 있다. 루나가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돌아왔을 때, 집 주위에 뜬금없는 개들이 돌아다닐 때, 루나가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때 등..

특히 우리가 현재 사는 집 주위에는 산책로가 있어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간혹 사람이 많이 없는 지역이라고 목줄을 풀고 마음대로 뛰 다니게 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집 주위에 있던 루나를 쫓는다거나 할 때가 있어서 그럴 때면 주인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한다. 엄연히 사유지이므로!


다른 단점은 루나가 대소변을 밖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대변으로 건강상태 확인이 불가하다는 점이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면 캣 도어를 열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밤새 화장실을 못 가고 참았을 루나를 위해서 가능한 규칙적인 시간에 캣 도어를 열고 닫으려고 한다.

아직도 집에 모래 화장실이 있는데, 외출을 시작한 이후로는 집안에 있는 화장실 사용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루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고 우리와 오래 있어줄 것이란 믿음 아래 우리는 오늘도 캣 도어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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