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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Nov 02. 2022
전쟁시(詩) <늙은 몸>
전쟁시 시리즈 #1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내 조형물 ⓒ 최우현
늙은 몸
최우현
비척 말라 건조한, 나는 늙은 몸이다.
주인은 힘겹게 나를 끌어당겨
뜨거운 욕탕 안으로 가라 앉혔다.
탕은 먼저 들어온 어린 몸들의 환호로 물결친다.
어린 몸들은 피부막이 터질 듯 팽팽하다.
나는 젖은 미역처럼 일렁거렸다.
이내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주인은 노인답지 않게 열기를 잘 참지 못했다.
그가 말했다. 바람이, 바람이 필요하다고.
나는 내 안에 있는 바람을 소소히 일으켰다.
주인은 아기처럼 졸기 시작했다.
이 바람은 춘천에서 왔다.
주인은 학도병이었다.
72년 전 여름, 열여덟 홍안의 소년은
올록볼록 작은 섬으로 가득했던 소양강변에
울며 서 있었다.
주인은 3일 밤낮을 긴장으로 보냈다.
나는 시큰시큰한 신호로 그를 위로하곤 했다.
나는 몸인 까닭으로, 어려운 이념 용어는 알지 못한다.
다만 온 힘을 다해 피고름을 밀어내고 염증을 달래며
죽음의 목구멍에 걸려있었을 뿐이다.
소양(昭陽). 고향의 젖물 만이 뜨겁게 타오르는 상처들을 닦아줄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던가. 내 안에 바람이 태어났던 건.
아니, 바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에는 색(色)이 없다.
아니, 바람은 존재한다.
어느 한 날 주인은 크게 울었다.
주인의 삶은 그리 환대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저, 바람의 색에만 관심이 있었다.
'휘오오' 바람은 늘 그렇게만 대답했고
그럴 때면 주인은 강박적으로 흉터를 매만졌다.
어린 몸들의 환호로 뒤덮인 욕탕에서
주인은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마도 그는 오늘 다시 학도병이 될 예정인 듯하다.
바람이 소소히 나를 휘감는다.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에서 촬영한 소양강(근화동 일대)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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