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당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덮치기 시작할 무렵 나는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다. 집단 감염이 있기 전부터 어느 지방에서 집단 감염이 있던 시기까지 그 당시 나는 서울 도심 한 곳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 바이러스가 혹시나 나한테 옮길까 봐 말이다. 그래도 서울은 조금 안전했다. 초기에만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 지도가 있어서 확진자 동선이 노출되어 있었고 초기 감염자 수가 몇 명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나 보다. 그래도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컸었다.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조치가 내려졌고 콜센터가 있던 회사에서 시킨 어떤 조치 때문에 나의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있는 시기였다. 다니던 헬스장은 갈 수가 없었고 잡혔던 약속은 전부 취소했다. 술집이나 음식점들도 가기 꺼려졌다. 그래서 나는 집에만 있었다. 마스크를 사려면 줄을 서야 한다고 했으나 일찌감치 용산역 약국에서 샀던 마스크 100장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공적 마스크가 풀리기 시작했고 회사 지하 약국에서 매주 3 장식 구매가 가능했다. 마스크가 부족한 사람에게 나눠주려고도 했으나 하지 못했다. 바이러스 감염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 불안감은 회사를 이직하게 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지방의 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그 안도감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회사 내에 퍼졌고 전원이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대상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내가 피하고 싶었던 바이러스가 이 먼 고향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혔다. 정확히는 근처까지 와서 다시 피해 갔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방역수칙을 잘 지켰다고 해야 하나. 사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나름 확률적으로 좋았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도 이야기한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누구의 탓도 아닌 바이러스가 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피하려고 노력했으나 피하지 못했다. 결국 마주하고 있고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처음엔 불편함이 불쾌함으로 바뀌고 의구심이 불신으로 바뀌고 그다음은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는 요즘이다. 바이러스를 탓하고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바이러스에 대항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 바이러스는 우리 인간들이 해결할 일이니 서로가 조금 더 연대해서 버텨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의구심이 확신으로 변하게 되었다.
걸릴 뻔했던 코로나 바이러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좀 더 확신이 든다. 검사할 때 내 콧속으로 들어오던 면봉 때문에 아팠던 고통의 몇 배를 느끼기 싫다. 걸리지 않도록 좀 더 견디고 조심하고 잘 지키고 서로를 응원해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