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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밤풍경 : 개선문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by 정안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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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샹젤리제 거리 횡단보도 중간에서 자신의 뒷배경이 개선문이 되게 하는 인생사진을 건지고자 신호가 바뀔 때마다 열심히 오고 갔다.


난 "다 부질없는 짓. 지금 이 순간을 눈으로 보는 게 제일이야" 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지켜보는데 묘하게 사람들과 거리모습이 어우러져 점차 하나의 풍경이 되어갔다. 좁은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서서 교대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과 천천히 지나가는 차에서 나오는 불빛들,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 샹젤리제 거리의 상점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 마음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없었다면 평범한 거리였을 그곳이 생기를 품고 나에게 다가오는 경험은 특별한 것이었다.


개선문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지하에 있는 매표소로 내려가서 뮤지엄 패스를 보여 준 뒤 입장 할 수 있다. 좁고 기나긴 나선형 계단을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올라가면 하나의 공간이 나온다.


그 작은 공간에는 개선문의 역사를 말해주는 그림이나 사진,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고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개선문 아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에투알 개선문

개선문이 있는 샤를드골 에투알 광장은 12개의 방사형 대로가 별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별이라는 뜻의 에투알 광장이라고 불린다. 그대로 중 하나가 샹젤리제 거리이다.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나풀 레옹 황제의 명으로 장 살그랭과 장 아르망 레몽이 설계해서 30년의 건축과정을 거친 후 나폴레옹 사후에 완성된 개선문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


프랑수아 뤼드가 전면에 조각으로 장식해 놓은 '1792년 용사들의 출정'(일명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이 많이 알려져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 이웃의 왕정국가들이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전쟁을 선포하자, 마르세유 등 지방에서 의용군이 일어난 것을 기리기 위한 작품이다. 개선문 안쪽 벽에는 각 전투에 참가했던 600명의 장군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샹젤리제 거리 등 12개의 대로를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파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운데 에펠탑 야경을 볼 수 있는 방향에 사람들이 가장 오래 머문다.


서쪽 신도심 지구인 라 데팡스 지역의 신개선문은 날씨가 좋으면 볼 수 있는데 파리의 현재와 과거를 잇는 상징성과 대칭적 구도를 비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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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바닥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참전 용사들을 위한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그 위에는 꺼지지 않고 항상 타오르는 '영원한 불길'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프랑스혁명일인 7월 14일에 군사 행렬을 하고 11월 11일에는 무명용사의 묘비 앞에서 군사들을 기억하는 행사가 있다.


마침 우리가 간 날이 11월 11일이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명용사의 묘 주위를 에워싸고 오랜 시간 동안 행사를 하고 있었다. 화려하거나 떠들썩한 행사는 아니었는데 굉장히 엄숙해서 기억에 남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샹젤리제 거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이어지는 길로 샹젤리제는 ‘낙원의 뜰’이라는 뜻이다. 전체 1.88km 거리 양쪽에는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 같은 가로수가 울창하다. 개선문 쪽은 화려한 상점들이 대부분이고 콩코르드 광장 쪽은 커다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파리의 부자들과 정치인, 예술가들이 이곳에 저택을 지어 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레스토랑과 고급 상점, 화랑들이 들어서고 유명한 노천카페도 생기면서 번화가가 되었다.


프랑스인들에게 샹젤리제 거리는 축구 경기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모이는 곳 중 하나이다. 1840년 나폴레옹 유해가 이 거리로 지나간 다음부터 ‘승리의 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은 이 거리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복잡한 장소라는 이유로 잘 가지 않아서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시람 대부분은 관광객이다.


12월 크리스마스 주간이 되면 길 양쪽 상점과 가로수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불꽃 장식의 야경이 펼쳐진다. 거리 곳곳에서 자유로운 공연이 열리고 사람들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샹젤리제 거리 전체가 거대한 축제의 장이 되는 것이다.


겨울의 낭만 가득함을 느끼고 싶다면 크리스마스 주간에 샹젤리제를 걷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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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상충하는 두 개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아릿하고 평화로운, 오래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여행의 기억이라는 하나의 세계와 상식을 넘어서는 온갖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조용하고 꿋꿋하게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과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


나는 그 또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고 그 또 다른 세계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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