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기다릴께

여수 돌산도

by 정안

누군가 말했다.

우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면 기차의 속도 때문에 따라오지 못한 우리 영혼은 기차역에서 우리를 기다린다고. 그래서 여행을 가면 아이처럼 그리 신나는 거라고.


범상치 않은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지낸 지 6개월이 넘었다. 코로나는 그렇게 우리 생활의 중심에서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확진자가 줄고 조금은 희망을 가지던 7월에 떠났던 여수가 무색하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8월 15일 폭발한 코로나로 일상이 멈춰 버렸다.


멈춘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아직은 별로 없다.

그저 사람을 만나는 사교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외식도 안 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뿐이다. 또 하나,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EBS "세계 테마여행"과 "한국기행"을 보는 것이 요즈음 유일한 낙이다.


며칠 전에는 알프스 여행 편이 나왔는데 보면서 어찌나 좋던지 어디든 갈 수 있었던 평범했던 날들이 얼마나 축복이었나 새삼 느꼈다.


밤바다 하면 여수가 떠오르는 건 노래 때문일 것이다.

지난 7월 퇴근하고 밤기차를 타고 여수에 갔다. 펜션에서 아침에 눈을 떴는데 누워서 바다가 보였다. 신기했다.


위로처럼 펼쳐지는 길.

집을 나서면 보이던 수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없다. 고요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두고 우리가 서울로 모이는 것은 생존과 관련된 것들이다. 일자리, 건강과 편리함에 대한 필요, 문화...


나 또한 둘째가 대학에 들어가면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오랫동안 결심해 왔건만 직장이 가깝고 교통이 편하고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퇴직하면 떠나리라 생각만 하고 있다.


걷다 보니 초록의 풍경들이 펼쳐지고 분명 여름인데 바닷바람이 불어 덥지가 않다.



왼쪽에 푸른 바다를 끼고 걷는 길. 말없이 걷는다.

발바닥으로 느껴져 오는 아스팔트 혹은 흙의 감각을 느끼며 그저 걷는다. 때때로 사진을 찍고 쉬면서 물과 간식을 먹고 보이는 자연을 이야기한다. 도시였다면 우리는 사무실 이야기, 누구누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나의 직장은 특성상 오래 근무한 직원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많이 안다. 이름, 개인사, 직장에서의 평판 등... 그래서 직장단위의 모임에 가면 자연스럽게 직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뭐 그런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화제로 삼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소위 뒷담화....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자. 뒷담화는 당신에 대한 신뢰를 앗아간다"

늘 새겨두려 애쓰는 말이다.


바다를 보며 그 푸르름과 어두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멀리서 보는 바다는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저 바다가 두렵다. 그 깊은 속을 알 수가 없다. 때때로 자연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감염병도 태풍도 폭우도



걸으면서 여러 마을을 지났다.

이곳은 코로나를 모르는 듯 평화롭다. 도시와는 다르게 걷는 동안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냥 바다와 바람, 산과 길이 있을 뿐이다.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은 우리가 너무 특정한 곳에 모여 살아서 생긴 것이라고도 한다. 거리두기는 일상에서 늘 필요한 일이었다.



햇살은 뜨거워지고 걷는 일이 힘들어질 즈음 기적처럼 나타난 카페.

조용한 어촌 마을에 하얀 2층짜리 건물이 서있었다. 생경하면서도 어찌나 반갑던지. 한적한 카페 2층에서 차를 마시고 한참을 있었다. 바다를 향해 있는 푹신한 소파와 눈앞에 펼쳐진 여름날의 풍경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바라본다. 바라보면서, 바라보는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한강-희랍어 시간)

카페에서 보낸 오후는 여수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다.



계동마을부터 13km를 걸어서 향일암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평지를 걷는 게 좋은 우리는 향일암에 오르지 않고 돌아왔다. 버스를 탔는데 계동마을에는 가지 않는다고 한다. 중간에 내려 걸어갈 생각이었는데 친절한 아주머니 덕분에 여수 시내까지 가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정말 자세히 가는 길을 알려주셨는데 중간에 내리면 걸어가기 힘드니까 여수시내까지 가서 계동마을 들어가는 버스를 타라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그 친절한 안내를 물리칠 수 없어 돌산도를 도는 버스를 타고 여수 시내에서 내렸다. 인사를 하고 내리려 했는데 주무시고 계셔서 그러지 못했다. 간단히 장을 보고 택시를 타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의도하지 않게 아름다운 돌산도를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저녁을 먹고 숙소 앞바다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파도소리만 들리고 바람은 선선하다.

우리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파도소리를 듣는 그런 시간이...


밤바다를 간절히 그리며 왔지만 정작 그리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멍하니 바다를 보며 파도소리를 듣거나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찔끔찔끔 맥주를 마시며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좋았다.



다음날 여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기차역에서 내 영혼을 만나 일상으로 돌아왔다.

코로나와 이별하고 다시 떠날 수 있게 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집과 사무실만을 오가는 지루하고 힘든 일상

"걷지 못해 다리가 썩겠네..."푸념도 하지만 함께 힘을 모은다면 반드시 이겨내리라 생각한다.

이 시간에도 코로나로 분투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위로를 전하며

우리 모두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