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미술관

뮤지엄 산 그리고 어느 카페

by 정안

강원도 원주 산속에 "뮤지엄 산"이라는 미술관이 있다.

2013년 5월 개관했고 한솔그룹 창업주가 수집해온 소장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시작한 미술관이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로

플라워 가든, 워터가든, 명상관(2019), 스톤가든, 제임스 터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뮤지엄 산(SAN)은 이중적 의미이다

산(山) 이기도 하고 Space, Art, Nature의 약자이기도 하다.


평일이라 한산했다.

날은 적당히 흐리고 습기 많은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기분 좋은 여름날이었다.



매표소가 있는 웰컴센터

흐린 날씨에 산안개가 가득하다.

잔디로 이루어진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산꼭대기가 바로 앞이다.

등산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산 위에 올라와 있었다. 좀 횡재를 한 느낌...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왔을 거리를 시원한 차 안에서 스르르 올라왔으니 횡재 맞다.



표를 사서 들어가면 플라워 가든이 나온다.


빨간색 설치작품은 마크 디 수베로의 "제라드 먼 리 홉킨스를 위하여"이다.

시인 홉킨스의 소네트 '황조롱이(The Windhover)'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일종의 정크 아트다.


이 작품은 바람이 불면 조금씩 움직인다고 한다. 시 '황조롱이'에는 '우리 주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이라는 부제가 있다. 바람을 조절할 줄 아는 황조롱이를 인간을 이끌어가는 그리스도에 비유한 것이다.


플라워 가든에는 80만 송이 붉은 패랭이꽃과 180그루의 하얀 자작나무가 있다고 한다.


담쟁이 덩굴은 살아 오르고 패랭이꽃은 시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의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온다.



하얀 자작나무와 수국이 있는 길.

고등학생때 학교 나무 밑에서 읽었던 "갈매기의 꿈",

그때 운동장 가장자리에 한가득 피어있던 수국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명언을 남긴 갈매기 조나단은 나에게 알 수 없는 아릿함으로 남아 있다.



물정원(water garden)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 "아치 웨이"이다.


밤이면 이런 모습이 된다고 한다.



숲과 물과 건축

그리고 길 끝에서 만날 무엇

단순함은 우리를 추억과 상상으로 이끈다.



물과 숲이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미고,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전시관을 보며 노아의 방주를 떠올렸다.



물에 비친 제 얼굴에 반해 그 물로 들어가 버린 나르시스처럼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내는 물속을 골똘히 보고 있다.


우리가 매일 보는 거울은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보다 30% 정도는 더 예쁘게 보인다고...



전시관 옆 계단은 돌이 많은 강바닥처럼 맑은 물이 조용히 흘러내리고 그냥 편안해진다.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1994년)

과거와 현재, 문명과 예술의 결합을 보여준다. 90년대 중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절정에 달했고,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는 그 후 10년간 작품 활동을 하다 2006년 세상을 떠났다.


바닥은 투명한 대리석이어서 마치 작품이 물에 비친 것 같다.

천창으로 빛이 들어와 가능한 일. 백남준과 안도 타다오가 만나는 지점이다.



신라고분을 모티브로 한 9개의 돌 언덕이 있는 안도 타다오의 "돌 정원(stone garden)"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조각품을 감상하며 산 공기와 햇살,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다.


스톤 가든에는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부정형의 선', 토니 스미스(Tony Smith)의 '윌리(Willy)', 헨리 무어(Henry Moore)의 '누워있는 인체'가 있다.



돌 정원에서 바라본 산 아래 길

그냥 찍었는데 안개 덕분에 원근감 있는 사진이 되었다.



돌 정원에 피어있는 수국과 나무는 돌을 뚫고 나온 듯하다.



전시관 2층에서 바라본 돌 정원

조지 시걸(George Segal)이 만든 '두 벤치 위의 커플'이다.

의자 등받이를 사이에 두고 엇갈려 앉아 있는 두 사람,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종이박물관에서 상영하던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저울이 수평을 이루면 죽은 자는 부활한다고 믿었다"


문득 법원의 로고인 정의의 여신 "디케"의 저울이 떠올랐다.

그들은 얼마나 죽은 자를 부활시켰는가

약한 자에게 더 엄정하고 잔혹한 칼을 들이대지는 않았는지 묻는다.



미술관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산속 카페로 향했다.

뮤지엄 산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니 산속 조그만 마을에 이런 카페가 나왔다.



주인장이 6년 정도 가꾼 정원이라고 한다.



조그만 땅을 사서 심고 또 심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조금씩 넓혀 갔을 정원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았다. 정원에서 천천히 차를 마시며 한참을 있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고 살랑이는 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는 평화로운 오후였다.




나는 사랑한다.

장미와 수국과 이름 모를 꽃과 자작나무와 걸을 수 있는 길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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