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는 섬진강

더운 날 무작정 걸어보자

by 정안

도시를 떠나 무작정 걸어 보자는 심정으로 섬진강에 갔다.

여름의 섬진강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물 댄 논에 심어 놓은 모가 하늘과 산과 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답다.

이 작은 식물들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고 자라서 가을이 되면 우리에게 밥이 되고 삶이 될 것이다.



계란꽃이라고도 하는 개망초꽃 , 분홍 낮 달맞이꽃, 노란 낮 달맞이꽃, 꽃양귀비가 어느 집 담장 밑에 피어 있다. 6월에 피는 꽃들이다.



밭에는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때마침 기차가 지나간다.

곡성역과 가정역을 오가는 관광 꼬마기차이다.



기찻길 옆 곳곳에 금계국이 한창이다.

초록속에 포진해 있는 노란색이 풍경에 생기를 더한다.



습지가 나온다.

물을 기반으로 자라고 있는 수많은 식물들을 보며 새삼 물이 생명이구나 생각했다.



섬진강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섬. 진. 강. 이 세 글자로 충분하다.



다리를 건너 걷기 시작했다.

날이 흐렸다 햇빛이 나왔다를 반복하고 너무 더워서 바지를 걷어 올리고 땀을 흘리며 걷는다.

그래도 초록과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 걸을만하다.



섬진강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 걸었다.

그늘로 들어가면 시원하고 나무가 우거지지 않은 길은 덥다. 작은 그늘도 감사하다.

여름에 걷는 것은 확실히 체력을 필요로 한다. 잘 먹고 물도 많이 마시면서 걸어야 한다.



걷다가 너무 더워서 다리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니 물 바람도 불고 조금씩 시원해진다. 멀리서 올갱이를 잡는 사람이 보인다. 물속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멈춤 사진 같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같은 자세였다.


언젠가 구례구역 앞 허름한 식당에서 먹었던 올갱이 수제비가 생각났다.

먹으면서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던 그 수제비, 담백하고 깊었던 맛.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간편하게 돈으로 사서 누리고 있음에 문득 미안하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쨍쨍한 더위속을 한참 더 걷다가 밥을 먹기 위해 겨우 찾아 들어간 식당, 식사가 안된다고 해서 음료수를 마시며 우리가 걸어온 강 건너편을 바라본다.


두가천 옆에 있는 한옥카페 두가헌도 보인다. 전망이 좋은 곳이다.


음료수를 마시며 주인아주머니와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눴다.


아저씨가 바로 앞 섬진강에서 참게며 물고기를 잡아와서 식당에서 매운탕을 팔았었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늘 잡아와서 먹었었는데 아저씨가 돌아가신 후로는 먹을 수가 없다고... 식당도 딸이 이어받았는데 딸이 닭요리만 할 줄 알아서 매운탕은 이제 안 판다고 하신다.


말씀하시는 아주머니 얼굴에 쓸쓸함과 그리움, 촉촉해지는 눈가가 언뜻 보였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지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옆에서 무심히 핸드폰만 보고 있던 아들과 주방에 있던 딸의 모습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찡했다.


익숙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가족과의 이별이 주는 깊은 상실감... 언젠가는 찾아올 그 시간이 갑자기 두려워졌다.


구례구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기차 시간까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카페 창에 걸린 등과 바깥 풍경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반짝이는 강물 위로 해가 진다.

돌아갈 시간인 것이다.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섬진강에서 보낸 하루는

일상을 살아갈 힘의 원료로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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