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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다락 Aug 09. 2020

너무 늦은 기쁨



얼마 전 볼만한 영화를 뒤적거리다 아주 오래된 전쟁영화를 보게 되었다. 처음엔 무엇이 나를 그렇게 오래된 영화로 이끌었는지 알지 못했다. 


상영 시간이 무려 세 시간에 가깝다는 것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전쟁영화인데도 액션 장면도 전투 장면도 전혀 없었다. 반세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영화라서 이야기 전개 속도도 무척 느리고,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배경 음악도 거의 없어 긴박감은 오로지 플롯에 의지한 영화. 


그런데 신기했던 건 보면 볼수록 한 장면 한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거였다. 나는 누군가의 무릎에 누워 졸음을 참아가며 그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인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을 듣고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걸 보면 그때가 열 살 전이었던 것 같다.



 저건 봤던 장면이었지. 그때 저 사람들은 왜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아, 저 장면이 나올 때는 잠들었나 보다. 내가 이렇게 긴 영화의 뒷부분도 봤단 말이야? 진짜 졸렸을 텐데.  



영화에 몰입하면서도 순간순간 있는지조차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 그림일기를 펼친 것처럼 오래전 기억이 솟아났다. 심지어 그때 가졌던 궁금증도 떠올랐다. 다리 폭파 장면 하나가 그렇게 멋진 건가?  


영화는 다 보고 난 후의 만족감이 무척 컸다. 내가 전쟁영화를 좋아하나? 아니다, 나는 딱히 특정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영화 자체에 인간의 여러 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깊이와 재미가 있었다. 


아, 이제 알겠다. 엄마가 저 영화를 무척 좋아했구나. 그래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기대감을 가지고 봤던 것이겠구나. 그래서 어렸던 나는 기를 쓰고 졸린 걸 참으며 이해도 안 되는 영화를 보려고 했던 거구나. 나는 엄마와 영화 취향이 똑같구나! 


너무 기뻤다. 지금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이 영화를 가지고 흥분에 겨워 수다를 떨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다음에는 이런 영화를 함께 보러 가자고 신나게 약속을 잡을 텐데. 


서양인은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한다는 말을 듣고 ‘무기를 들고 식사를 하다니 그 사람들은 야만인인가 보다’ 생각했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로 나에게 서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었던 엄마. 


고등학교 안 보내겠다는 외할머니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외할머니 가게의 금고를 털어 제일 비싼 교복을 해 입고 외할머니 앞에 나타났다는 엄마.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두꺼운 세계문학전집 100권을 사놓았던 엄마(아마 당신이 읽고 싶어서였겠지만). 


이렇게 기쁘고, 두근두근하고, 슬프고, 그리운 느낌을 주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 따뜻했던 손과 나지막한 목소리와 푸근했던 무릎 때문에 졸음이 폭포처럼 밀려와도 눈 비비며 볼 가치가 있었다. 


기억의 우물에서 건져 올린 장면 하나하나가 이전에는 내가 몰랐던 엄마의 즐거움 하나를 이제야, 이제야 알게 해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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