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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Aug 12. 2021

너의 결말이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아

미운 아기 오리가 듣고 싶었던 말

내 속으로 낳았지만, 나는 널 정말 모르겠다.


엄마의 말. 자라는 내내 내 어린 가슴에 인이 박여 있었던 그 말을 엄마는 어쩌면 기억도 못 할 것이다.


엄마와 언니 둘, 오빠 둘.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 엄마는 내 쪽을 못마땅한 듯 쳐다보았다. 내 앞접시 가득 쌓인 오이를 보는건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백조’가 된 딸내미를 보는건지 당최 시선의 끝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오이를 싫어한다. 오이의 알싸한 향도, 물렁함과 바삭함이 공존하는 식감도, 거친 표면도 모두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형제들이 모두 좋아하는 김밥을 엄마가 대량생산 할 때면 나 홀로 오이를 골라내 입에 넣기 바빴다.


이번에도 수북히 산처럼 쌓인 오이가 엄마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다른 언니, 오빠들은 생전 하지도 않는 편식을 혼자서만 요란하게 한다’며 엄마는 굳이 나를 쏘아댔다.


나는 ‘엄마야 말로 나를 위해 한두 줄 쯤은 오이가 없는 김밥을 싸줄 수는 없었냐’고 닿지 못할 원망만을 속으로 했다.


어차피 저 핀잔도 이 자리만 지나면 당분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생기고 난 다음, 내 인생의 첫 소망은 집에서의 독립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종종 타로카드와 사주를 함께 봐주는 천막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놀러가곤 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사주를 읊어주고 나면 꼭 듣는 말이 있었다.


집에서 독립하라, 엄마와 최대한 멀리 살아라.


어릴 때엔 그 사주 결과가 못내 서글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있었다. 늘 나에게 엄격한 잣대를 세우는 엄마를 충족시키고 싶었던 마음. 착한 딸이 되어 엄마의 고단함을 나누고 싶었던 마음. 그런 것들이 내부를 장악하던 때였다.


너는 대체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니.


언니, 오빠들 반만이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하던 서슬퍼런 말들의 까닭은 늘 단순했다. 온 식구들은 직모인 데에 반해 나만 악성 곱슬을 가지고 있었다. 먹어도 살이 안 찌는 형제들과는 달리 나는 조금만 긴장을 놓으면 바로 살이 붙는 체질이었다. 교과서 적인 공부를 잘 해내는 자매들, 교과서 외적인 부분에 재능이 있던 나.


나의 의지가 아닌, 나의 모든 것들이 엄마에게는 ‘틀린 점’ 투성이였다.


빼다 박은 듯 엄마의 생김새와 분위기를 닮은 이들 속 나 혼자 하늘의 별이 된 아빠를 닮았기 때문일까?


재능이 뛰어난 탓에 젊은 시절 엄마를 많이도 외롭게 했던 아빠는 다섯 명의 오리 새끼를 덜렁 남겨둔 채 타국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생전에도 예술가의 명줄이 짧아야 작품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아빠. 그 말은 도화선처럼 아빠의 생명선을 절단내었고, 유작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 세웠다.


예술가 아빠에 잔뜩 데인 엄마는 자식들이 공무원이 되기를, 공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원고지에 바르게 써놓은 글자처럼 자식을 대했다. 본인이 정해놓은 규율을 완벽하게 지키며 성장하는 그들과 나는 분명한 괴리가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예쁨 받을 구석 하나 없던 내가 잘 다니던 회사까지 박차고 나와버렸으니, 오늘은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지 못하리라는 것 쯤 알고 있었다.


그런 나와 엄마 사이를 두고 큰 언니가 내 역성을 들어준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쟤도 나중엔 잘하겠죠. 괴짜들이 돈도 많이 번대요.


당장 엄마의 기분을 달래줄 지언정 내게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괴짜가 아니었다. 나중엔 ‘잘’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의 지표라면 나는 마침내 성공하지 못 한 인생을 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대단한 성공이 아니었다. 두루뭉술하게 다른 형제들과 어울리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기도 했다. 엄마의 차별은 그렇게 나를 평범한 것에 목매도록 했다.


기어코 얻어내는 특별한 행복이 아닌, 제 주제에 만족하며 사는 삶. 나는 그것만을 꿈꿨다.


세월이 흘러 나는 전공 분야에서 특출난 성과를 얻게 되었다. 대통령 표창을 받고 집에 오는 길, 엄마는 생전 처음으로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엄마를 닮은 형제들 사이에서 유독 아빠를 닮았던 막내딸. 그 딸이 분명 아빠의 재능을 물려받아 성공할 줄 알았다고. 그렇게 믿고 나에게 채찍질을 더 했노라고. 그 결과 이렇게 성공궤도에 오르지 않았느냐고. 엄마는 나를 칭찬하는 듯, 당신의 안목을 칭찬하고 있었다.


- 장하다. 내 딸.


나는 생전 처음 듣는 엄마의 칭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쾌감 대신 이질감이 온몸을 에워쌌을 뿐이다.     

‘백조’였던 딸이 백조(白鳥)가 되자 그제야 닿아온 관심과 사랑. 내겐 더이상 당신의 염려가 필요하지 않아졌는데.


엄마의 칭찬에 목이 탔던 아홉 살 언저리의 나에게는 조금도 가닿지 않을 감흥이 왔다.


그 말의 무게가 예전과 같을 수 없어서 슬펐다.


왜 나를 진작 안아주지 않았나요. 왜 내 뒷모습을 지켜봐주길 바랐던 날에도 당신의 창문은 늘 비어 있었던가요.


성공하지 않아도, 결국엔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은 인생이라고 말해줄 순 없었나요.


원망하기엔 너무 초라해진 엄마의 작은 어깨. 그 곳엔 날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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