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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Sep 27. 2021

나를 떠나지 않을 나


라섹을 했다. 내게는 오랜 숙원사업과도 같은 일이었다.


“빨간 점을 응시하세요.”


의사의 말에 간절하게 의지한 채 동그랗고 붉은 불빛을 바라보았다.


눈을 뜬 상태로 수술의 과정을 모두 지켜봐야 하는 낯설고도 고독한 경험. 처음 느껴보는 감각 위로 생경한 볼거리가 재생되었다.


“차갑습니다.”


처치가 끝난 안구에 뇌가 얼어 붙는 듯 시린 냉각수가 부어졌다. 그야말로 눈동자가 파도에 씻겨 흘러갈 것만 같았다.


“네, 좋아요. 잘하셨어요.”


칭찬을 받고 누웠던 자리에서 상반신을 일으키자마자 내 세계는 달라져 있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화질로 뻑뻑하게 재생되던 영상의 해상도를 HD로 변경한 느낌.


나는 어릴적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모든 사물은 구름처럼 뭉뚱그려져 경계가 희미했고, 사람의 얼굴에 눈과 코와 입술의 개수가 제멋대로 생성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면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아 있었다. 부모님은 ‘눈이 안 좋아진다’며 내 행동을 만류했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그 시절의 나를 기꺼이 텔레비전 앞으로 소환했던 웨딩피치와 핑구, 호호아줌마를 보다 더 정확하게 시청하기 위해서 나는 점점 더 거리를 좁혀야 했다.


십대에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엄마는 지금 안경을 쓰면 얼굴이 미워진다며 렌즈를 권유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내 돈으로 안경을 샀다. 몇 번이나 압축한 안경알은 무거웠지만, 퍽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아무리 좋은 렌즈를 사용해도 안경을 썼을 때만큼 시원하게 보이진 않았다. 렌즈를 끼고 있으면 종종 눈이 피로해서 어지럼증을 느끼곤 했는데 그것이 반절 이상 해소되었다.


그 때의 나는 그것이 최선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라섹을 하고 새 각막을 얻게 되기 전까진.


시력이 나빴던 유년시절은 내게 옥의티를 남겼다. 친구들, 선생님, 학급 아이들, 급식 아주머니, 내가 좋아했던 소년들. 나를 스쳐간 그들의 얼굴이 어느 한 지점씩 비워진 채 기억났다.


그래서 나는 길에서 만나는 얼굴들을 쉽게 알아보거나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와 같은 이유로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며 언니들에게 맞기도 했다.


심지어는 그 언니들의 얼굴 역시 잘 떠오르지 않는다.


뽀얗고도 불분명하게. 곰곰이 떠올려봐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낱말 퍼즐의 빈 칸같은 의아함을 늘 곁에 둔 것처럼 두루뭉술하게 그렇게만 내게 남았다.


어쩌다 한 번쯤은 못 견디게 궁금했다. 그들의 얼굴과 그들의 현재. 어떤 음식이 당길 때처럼 아주 문득, 호기심이 찾아들기도 한다.


한 번은 집요하게 그들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나의 삶에 가해자였던 사람들. 누구는 결혼을 했고, 누구는 아이를 낳았다. 누구는 향초 공방을 열었다. 그런 사실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길을 지나가다가 보게 된대도 알아보지 못할 사람들이 되었다. 나의 흐린 기억과 시간의 흐름이 더해진 까닭이었다.


차라리 다행이기도 할까.


나를 괴롭히던 과거의 불행이 선명하면, 지금을 놓치며 살게 된다.


그 말을 반쪽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변태(變態)의 과정을 거쳐 결국 내가 제일 잘 들여다보게 된 것은 내 얼굴이다. 늘 함께하던 거울 속 새침한 여성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었던 며칠간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른 이들을 흘려보내는 것을 안타까워 하느라, 정작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내 눈으로 담지 못했음을 망각했구나.


한 철 인연이었던 이들을 위하느라 나를 위한 선택에는 서툴렀음을 깨달았다.


비로소 앞으로는 나를 중심에 두고,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손님은, 나를 떠나지 않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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