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망스의 노래를 듣는 저녁
대부분의 이별은 마음이 아닌 머리가 먼저 정한다.
이 사람에게서는 미래를 볼 수 없다. 그의 반복되는 실수가 지겹고, 그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것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이 관계에서 먼저 물러나기로 했다.
마음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단호하게 뒤 돌아 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서글픈 일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얼굴로, 목소리로 나를 붙드는 사람을 보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번 한 번만 더 내게 애원한다면, 조금만 더 진심으로 잡는다면 그만 이별을 물러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식혔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고 한들 그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의 문제,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 이 관계의 쟁점이었다.
나이를 먹고 연애가 쉬워질수록 ‘사랑은 맞춰가는 것’이라는 말이 종종 우스워진다.
애초에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흔한 다툼 없이 아주 안온한 연애가 지속되기도 한다.
그들은 두 사람의 사랑이 무척 특별하고 희귀하게 느껴질 테지만, 그것은 그들이 같은 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너무 달라서 작은 것에도 의견차이를 보이며 때로는 불처럼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이 폭발하면, 다른 사람은 조금 물러나 줄줄 알아야 할텐데 둘 다 팽팽한 낚싯줄처럼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몰아세우게 된다. 그 사람을 잘 알기에 그 사람이 상처 받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여자 사람 친구 때문에 자주 트러블을 겪었던 남자는 여자와 싸운 뒤 괜히 여사친과 만남을 가졌다.
내가 화나서, 내가 서운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면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또 다른 날의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개봉한 신작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는 그 흔적이 그대로 쌓여 있는 상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그쳤던 일, 그 사람을 울린 일, 싸우다가 저도 모르게 해 버린 날 선 말들.
그런 것들이 내면에 축적된다.
더 이상 그 관계는 완벽하게 맞물릴 수 없다.
서로의 눈치를 보고, 이해할 수 없을만큼 서로를 이해하려 든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자신을 탓한다.
그렇게 관계가 망가져 가는 것을 나는 너무 자주 보았다.
어느 순간 나는 연애를 계산한다. 흔한 말처럼 이십대 초반의 순수하고 맑은 감정에서 많이 걸어 나오게 되었다.
나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어른이 된 나는, 관계가 너무 많이 썩어 곪아 버리기 전에 절단해내는 방식을 택한다.
젠틀한 이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말한다. 바닥까지 드러내는 게 왜 나쁘냐고. 불처럼 사랑하는 게 왜 철없는 소리냐고.
내가 주저하게 되는 것은 결국 사랑의 정도일까.
그 사람을 ‘그렇게까지’는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왜 힘들까.
내가 벌려 놓은 이별을 앞에 두고 나는 여전히 담담한 척 하루를 산다.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억지로 끼니를 챙겨 먹는다. 자려고 누우면 머리까지 불덩어리가 되어버려 앉아서 쪽잠을 잔다.
그리고 시간이 아주 많이, 순식간에 지나가주기를 바란다.
내가 어서 괜찮아지기를 바란다.